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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1024

[동화인류학] 만물을 생각하다 만물을 생각하다 우리는 라푼젤이었다 야생의 사고를 찬미하는 글을 쓰고 난 며칠 뒤 산책하기 위해 문을 열었다가 아파트 복도를 멋지게 비행하는 한 마리 말벌(로 추정되는 좀 큰 붕붕이)과 조우하고 말았다. 작은 녀석의 빠른 날갯짓이 어찌나 힘찼는지, 나는 선풍기를 안 끄고 나온 줄 알고 서둘러 집으로 되돌아가기까지 했다. 어찌어찌 열린 복도 창문 밖으로 녀석을 보낼 수 있었는데 다음이 문제였다. 현관문 바로 위에 녀석이 만들어 놓은 흙집이 있었던 것이다. 꺄아! 소리를 내지르며 둥순이와 둥자는 계단으로 내빼고 말았고, 나는 갑자기 패닉에 빠졌다. 그의 작은 하우스에 난 문이 너무나 정교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완벽한 원모양으로 안에 아주 아늑한 보금자리가 있음을 암시했다. 매우 안정적으로 지어진 건축물.. 2020. 8. 3.
[연암을만나다] 돌직구가 주는 것 돌직구가 주는 것 친구 어머니 중에 휴대폰에 남편을 ‘내면의 평화’라고 저장하신 분이 있다고 한다. 친구가 의아해서 왜 그렇게 저장했냐고 물었더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전화를 받기 전에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자는 마음이었다고 하셨단다. 어딘지 모르게 웃프다. 그런데 평소 우리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 기분 상하지 않게 돌려 말하는 데에 꽤 능숙한 것 같다. 우유부단하다는 말 대신 ‘착하다’라고 말하고, 이기적이라는 말 대신 ‘승부욕 있다’라고 애써 포장한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 똥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똥 싸러 간다.’라고 말하는 대신 ‘화장실에 잠깐 볼일 좀…!’라고 말하는 게 더 익숙하다. ‘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저절로 표정이 찌푸려지는 것처럼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느낌이 온몸으로 강하게 오기 때.. 2020. 7. 30.
[쿠바리포트] 신경 이야기 – 2편 신경 이야기 – 2편*신경 이야기 1편 보러가기 나는 움직인다, 고로 존재한다 인간은 동물이다. 우리는 이 간단한 명제를 두고 치고받고 싸운다. 이 한 문장을 도대체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화라는 나무의 곁가지에서 뻗어 나온 ‘호모 사피엔스’ 종(種)이라는 사실에 한 치의 의심 없이 ‘옳다’고 말하는 때는, 글쎄, 생물학 시험 때나 되려나. 그렇게 머리로는 외워도 가슴으로는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 아이패드를 블루투스 키보드에 연결해서 이 원고를 타이핑하고 있는 ‘나’라는 사람이 개, 쥐, 바퀴벌레, 물고기(따위)와 동질한 존재라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딱 봐도 내가 더 우월하지 않은가? 자고로 인간이란, 이 세계를 초월하는 ‘무엇’(그것이 신이든, 진화의.. 2020. 7. 28.
[연암을만나다] 배움은 생존이다 배움은 생존이다 학문의 길은 다른 길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 가는 사람이라도 붙들고 물어야 한다. 심지어 동복僮僕이라 하더라도 나보다 글자 하나라도 더 많이 안다면 우선 그에게 배워야 한다. 자기가 남만 같지 못하다고 부끄러이 여겨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면, 종신토록 고루하고 어쩔 방법이 없는 지경에 스스로 갇혀 지내게 된다. (박지원, 「북학의서」,『연암집(하)』, 돌베개, 65쪽) 이토록 무서운 말이 없다. 부끄럽다고, 지금 내가 못났다고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 스스로 갇힌 채. 그래서 연암은 학문에 다른 길은 없다고 한다. 나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누구에게든 묻고, 배워야 한다고. 그런데 일상에선 영~ 쉽지 않다. 이런 나를 인.. 2020.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