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가장 밤이 긴 하루, 동지 팥죽의 미친 존재감!!

동지(冬至), 1년 중 밤이 가장 긴 날, 우리는 팥죽 먹고 호랑이는 장가가고

편집인

겨울 '동冬' 자에 이를 '지至'. '겨울이 지극한 상태에 이른 날'이라는 뜻의 동지(冬至)는 태양이 황경 270도의 위치에 있을 때이다. 이때엔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낮아 밤이 가장 긴 날이다. 양력으로는 12월 22일이나 23일 무렵. ……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날 태양이 죽고 새로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짓날의 긴 밤에는 전 세계적으로 태양의 재생을 상징하는 의례가 행해졌다. …… 동지는 음력으로 자월(子月)의 한때이다. 자월은 해월(亥月)에 사라졌던 양기가 다시 회복되는 달이다. 그래서 동지가 되면 화(火)기운을 상징하는 붉은 팥죽을 먹었다. 이 풍습에는 추운 겨울 동안에 양기를 안으로 잘 비축해 두었다가 봄여름이 되어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 류시성·손영달 지음, 『사주명리 한자교실 갑자서당』, 265쪽

24절기 중 22번째 절기인 동지. 다른 절기들은 해당일에 치르던 풍습이 많이 사라져 그 존재도 모르고 지나가는 일이 허다하지만, 동지는 '팥죽' 덕분에 지금도 '존재감'이 있다(역시 입에 뭐가 들어가야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 우리집도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동짓날 팥죽은 빼놓은 적이 없다. 하지만 어렸을 땐 팥죽보다는 단팥죽이 좋았고, 엄마 성화에 못 이겨 먹더라도 그 안의 새알심만 건져 먹곤 했다. 중국에서는 동지에 교자류를 먹고, 일본에서는 유자를 띄운 탕에 몸을 담그고 팥죽이나 단호박을 먹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팥죽하니 삼청동에 있는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이 떠오릅니다. 사진을 보니 머...먹고싶네요. 흑~


동지는 태양의 힘이 가장 약해지는 때이기 때문에 이 날을 무사히 보내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축일로 삼고 있다(크리스마스도 그 기원이 동지에 있다는 건 제법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고대에는 동지를 1년의 시작으로 삼았고, 우리나라에서도 '작은 설'이라고 불렀다. 해가 가장 짧은 날이니, 그 다음부터는 해가 점점 길어지는 날들이라 자연스럽게 한해의 시작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또 동지에는 "날씨가 춥고 밤이 길어 호랑이가 교미한다고 하여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 부른다"(한국세시풍속사전)고 하는데, 긴긴 겨울밤에는 역시 사람이든 호랑이든 가장 생산적인 일을 …….(흠, 흠, ( ..))

 아무튼, 이번에도 「농가월령가」를 보자. ‘11월령’의 동지 관련 대목이다.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一陽)이 생하도다
시식으로 팥죽 쑤어 인리와 즐기리라
새 책력 반포하니 내년 절후 어떠한고
해 짤라 덧이 없고 밤 길기 지리하다
공채 사채 요당하니 관리 면임 아니온다
시비를 닫았으니 초옥이 한가하다
단귀에 조석하니(짧은 해 저녁 되니) 자연히 틈 없나니
등잔불 긴긴 밤에 길쌈을 힘써 하소
베틀 곁에 물레 놓고 틀고 타고 잣고 짜네
자란 아이 글 배우고 어린아이 노는 소리
여러 소리 지껄이니 실가(室家: 집 또는 가정)의 재미로다
늙은이 일 없으니 기직(왕골껍질 등으로 짚을 싸서 엮은 돗자리)이나 매어 보세
외양간 살펴보아 여물을 가끔 주소
깃 주어 받은 거름(짚 넣어 만든 두엄) 자주 쳐야 모이나니

"일양(一陽)이 생하도다"란 부분이 흥미롭다. 해가 가장 짧은 날이니, 음양으로 따지면 음기가 가장 치성한 날이 동지일 터. 그런데 바로 그때 하나의 '양'(陽)이 생겨난다. 어떤 한 기운이 극한에 달하면 반드시 그 아래 다른 기운이 움트고 있음을 자연은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단지 가장 안 좋은 상황 혹은 가장 움츠러든 상황에 희망이 있다는 가르침만 주진 않는다. 오히려 움츠러드는 이 시간이 없다면 펼쳐지는 시간도 불가능하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안으로 수렴하는 시간. 그러니까 우리가 뭐든 배울 때, 가령 악기 같은 걸 배울 때 그 분야의 가장 잘 나가는 뮤지션처럼 폼을 잡고 싶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건 지루하도록 단순한 리듬 혹은 음절의 무수한 반복이다. 그야말로 눈감고도 칠 때까지, 건드리기만 해도 저절로 나올 때까지 하는 것. 이런 수렴 시간 없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자신을 바라는 마음을 두고 '도둑놈 심뽀'라고 하는 걸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동지는 자월(子月)에 배속됩니다. 우리 눈에 띄진 않지만 자월은 음이 줄어들고 양이 시작되는 때입니다.


끝으로 "동짓날 긴긴 밤" 하면 제도교육을 마친 사람의 머릿속에 가장 떠오르는 그 여자,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일찍 세상에" 왔던, 지성과 가무의 대명사(실제로 미모는 하지원처럼 예쁘진 않았다고 한다....^^;;), 황진이 언니의 시조를 소리 내어 읽어 보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동짓날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사주명리 한자교실, 갑자서당 - 10점
류시성.손영달 지음/북드라망


설정

트랙백

댓글

  • 무지개 2011.12.22 09:46 답글 | 수정/삭제 | ADDR

    삼청동 그 집하면 단팥죽과 쌍화탕이죠..ㅋㅋ 저 어릴때도 동지 팥죽은 단팥죽에 비해 비인기 종목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그 맛이 그리운걸 보니 저도 나이를 먹는가 봅니다.^^

    • 북드라망 2011.12.22 10:24 수정/삭제

      무지개님도 그 집에 다녀오셨나봅니다. ^^
      저도 어릴 때 동지 팥죽에서 새알만 건져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팥이 맛있는지 잘 몰랐는데, 요즘은 좀 알 것 같네요. 하하하;;;;

  • 팥므팥탈 2011.12.22 09:55 답글 | 수정/삭제 | ADDR

    "해 짤라 덧이 없고 밤 길기 지리하다"는 구절에서
    '왜'라는 물음이 절로 나네요.
    아..밤이 짧은 저는, 요즘 사람 ㅠㅠ

    • 북드라망 2011.12.22 10:27 수정/삭제

      팥므팥탈님의 밤은 짜...짧군요;;;
      예전에는 TV도 없고 책 읽기도 수월하지 않았을 것 같고, 스마트폰·게임도 없고.....(윽!) 왠지 밤이 더 길게 느껴졌을 법 합니다요. 하지만 그땐 또 그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하하;;

  • 아임팥 2011.12.22 13:58 답글 | 수정/삭제 | ADDR

    거리에 나가보니 동지에는 팥죽이라며, 팥을 팔아제끼려는(?) 광고가 눈에 많이도 걸립니다. 이제 이런 절기 같은 게 '상품 구매력'을 자극하는 용도로밖에 안 쓰이는 것 같아 어쩐지 씁쓸하다가... 이런 글을 보니 참 좋네요.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에 참 무지한 것 같습니다.

    • 북드라망 2011.12.22 14:58 수정/삭제

      저도 점심때 팥죽 먹으러 죽집에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른 곳을 갔지요. 흑~
      절기의 흐름을 어떻게 잘 탈 수 있을지~ 북드라망 24절기 이야기와 함께 해욧!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