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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이글거리는 눈동자!? 눈에 불을 꺼주는 대릉혈!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9. 12.

대릉, 집 나간 마음을 불러오자!



목적지향적인 남자


내가 연구실에 처음 왔을 때, 그 아이는 뻘건 눈을 하고 있었다. 막 공부방을 나선 그 아이는 먼 데를 바라보고 있었고, 난 그 아이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젯밤에 술깨나 푸셨군. 공부하러 왔으면 공부나 할 것이지, 저렇게 눈이 뻘게질 때까지 술을 마셔? 이 동네도 술꾼들이 꽤나 있나봐.’ 그날 나는 그 아이를 술꾼으로 오해했다. <감이당 대중지성> 1학년 오리엔테이션에서 다시 만난 그 아이. 그때도 뻘건 눈을 하고 있었다. ‘뭐야, 원래 토끼눈이었어?’ 그랬다. 그 아이는 원래 토끼눈이었다. 오전에 반짝 괜찮았다, 오후가 되면 눈에서 노을이 지는 아이. 이름하야, 목적(目赤:빨간 눈) 지향적인 남자였던 것. 


나 : 너, 눈이 시뻘게. 요즘 너무 무리한 거 아냐?
목적남 : 어렸을 때부터 이랬어요. 그래서 얘들이 토끼눈이라고 놀리곤 했죠.
나 : 왜 그런 거야?
목적남 : 화기가 많은 것 같아요. 여름이 되면 멍한 상태가 돼요. 안 그래도 불기운이 올라오는데 날씨는 덥지, 완전히 미쳐버리는 거죠. 잠을 자도 각성상태니까, 잠을 잔건지 만 건지 해롱해롱해요. 눈곱도 주먹(?)만한 게 껴요. 정말이지 여름엔 저 북쪽 나라 시베리아 같은 데서 살고 싶어요. 
나 : 그래 그런가, 살도 많이 빠졌다. 얼굴도 핼쑥하고. 이제 가을로 접어들었으니 좀 살만하겠다.
목적남 : 그나마 좀 낫죠. 헤헤. 


목적남은 여전히 토끼눈을 하고 있었다. 세 시간의 세미나가 끝날 즈음, 오전에 깎은 수염은 거무튀튀하게 자라나 있었다. 우~ 양기작렬!  이즈음 도대체 목적남이 누군지 궁금하실 거다. 프라이버시(?)를 생각해서 실명은 밝힐 수 없다. 다만 힌트 하나 드리자면, 그의 일간은 병화(丙火)다. 그것도 병병(丙丙)병존. 화기작렬의 사주가 목적남의 상태를 그대로 말해준다. 오늘은 이 목적지향적인 남자를 위한 혈자리다. 정말? 어떻게? 궁금하면 따라오시라. 출~발~~


영희쌤의 힌트만으로 목적남을 짐작하지 못한 분들을 위한 사진 힌트 나갑니다~



목적남의 눈 : 비, 간, 심의 삼각플레이


목적남의 눈은 왜 빨개지는 걸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선 우선 ‘눈이 뭔지’ 알아봐야 한다. 『동의보감』에 눈은 오장육부의 정기가 모이는 곳이라 하였다. 몸의 모든 정기가 모여 눈을 이루므로 그 정기 어린 눈을 통해 사물을 볼 수 있다는 것. 한마디로 ‘눈은 정기의 총체’라는 말씀. 그래서 『동의보감』은 눈을 엄청 중히 여긴다.


뼈의 정기(腎)는 눈동자가 되고, 힘줄의 정기(肝)는 검은자위가 된다. 혈의 정기(心)는 핏줄이고 기의 정기(肺)는 흰자위가 되고, 기육의 정기는 눈꺼풀이 된다. (…) 눈에는 오장육부의 정기가 모인다. 눈은 영위(榮衛:영기와 위기)와 혼백이 늘 드나들고 신(神)과 기(氣)가 생겨나는 곳이다. (…) 눈은 심장의 지시를 받는데, 심장은 정신(神明)이 들어 있는 곳이다.


─ 『동의보감』, 「내경편」, ‘안’(眼) 법인문화사, 603쪽


보시다시피 눈은 온몸의 정기가 다 모여 있어, 몸과 마음이 상호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몸의 정기가 혼란되어 잘 돌아가지 못하면 갑자기 이상한 것이 보이고, 정신과 혼백이 서로 어울리지 못하면 미혹된 것이 보인다. 그래서 눈은 마음의 창이다.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 오장육부의 정기와 마음이 상호작용하여 그대로 드러나는 곳. 아,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만 같다. 사실 내 눈도 피곤할 때가 많다. 흰자위에 핏줄이 터지고 뻑뻑할 때가 다반사니까. 그렇다면 목적남과 나의 오장육부에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또 그 마음은 무슨 마음일까? 눈의 정기는 오장육부의 정기가 모인 것이지만 특히 비장의 작용과 밀접하다. 왜냐하면, 비장은 오장육부, 12경맥, 365락(絡:경맥에서 갈라진 곁가지)의 혈기를 모두 받아 위로 올려보내 눈을 밝히기 때문이다.


오장육부의 정화(精華:깨끗하고 순수한 부분)는 모두 비(脾)에서 받아 눈으로 주입된다. 그러므로 비위(脾胃)를 조리하면 기가 상승하여 정신이 맑아진다. (…) 심사(心事)가 복잡하거나 음식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일을 지나치게 하면 비위가 허약해진다.


─ 『동의보감』, 「내경편」, ‘안’(眼) 법인문화사, 606쪽


비장이 허하면 오장의 정기가 다 기능을 잃게 되어 ‘밝게 하는 기’(精氣)를 눈으로 올려 보내지 못한다. 눈은 혈맥이 모인 자리라 특히 혈의 영양식, 정기가 필요한데 이게 안 올라오면 눈도 흐릿, 정신도 오락가락하게 된다. 이처럼 눈은 정기도 필요하지만 혈기도 필요하다. 그래서 눈은 혈을 주관하는 심장과, 혈을 저장하는 간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심은 몸에 혈액을 운행시키는 중추기관이고, 그 기는 혈액을 운행시키는 원동력이다. 간은 혈액을 저장하고 혈류량을 조절한다. 이렇게 심과 간이 서로 협조하여 생리적인 혈액순환을 완성시킨다. 혈액순환의 결과, 눈이 혈기를 받으면 눈은 광채를 환하게 비춘다. 이렇듯 눈의 환하게 비춤은 화(火)의 작용이다. 이제 눈에 미치는 화의 작용을 알아보자.   



목적남의 목적(目赤) : 간과 심의 불기둥


심은 마음의 안정과 중심을 잡는 군화(君火)의 장부다. 마음이 고요하고 안정되어 있으면 상화(相火)가 심의 명령을 받아 작용을 대신한다. 이것은 생리적인 혈액순환을 상화가 대신한다는 말씀? 그렇다. 심장의 바깥을 에워싸고 있는 심포락(心包絡)의 모든 혈맥과 상중하초의 삼초기(三焦氣)를 실질적으로 운행시키는 화(火)가 상화다. 하여 상화는 심포락(心包絡)의 작용과 함께 혈맥이 눈을 영양할 수 있도록 작용한다. 그런데 지나친 일이나 운동으로 혈맥이 손상되면 혈은 열을 낸다. 열이 눈으로 치밀어 올라 발산되면 눈에 핏발이 서고 붓는다. 모두 상화가 치솟아 생긴 것이다. 그렇다. 목적남의 목적(目赤)은 상화의 불기둥이었다. 


상화가 치솟는다는 것을 달리 말하면 심화와 간화가 왕성해졌다는 거다. 이렇게 되면 심화가 극심해져 혈을 졸인다. 몸 구석구석 공급되어야 할 피는 모자라고 심양(心陽)은 쌩쌩 돌아가고. 순환은 하는데 피가 모자라 헛바퀴를 돌리는 격이다. 이렇게 되면 심장이 벌렁거리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나중에는 심양도 손상되어 혈액의 운행이 무력해지고 담이나 어혈이 심맥을 막아 기혈 운행에 장애가 발생한다. 그러면 심장 박동이 실조되어 협심통(狹心痛:심장통증)이나 흉협통(胸脇痛:가슴과 옆구리통증)이 생긴다



마음도 따라서 심(君火)이라는 중심을 잃고 불안해진다. 여기에는 허실의 차이가 있다. 실(實)은 열사, 담화(痰火)가 심신을 요동하여 신(神)이 저장되지 못하는 것이고, 허(虛)는 심혈이 부족해 음이 양을 수렴하지 못함으로써 신이 떠올라 불안해진 것이다. 또 다른 화, 간화가 극에 달하면 간화상염(肝火上炎)이 된다. 간의 양기가 지나치게 일어나 머리가 터질 듯이 아프고 얼굴이 붉어지고 눈이 충혈된다. 마음은 조급해지고 화를 잘 내고, 갑자기 귀에서 소리가 나거나 잘 들리지 않는 증상이 나타난다. 심하면 몸에 경련이 일어나고 팔다리가 수축하기도 한다.  


대체로 눈에 병이 드는 것은 열로 인해 화가 치솟아 생긴다. 목적남의 목적은 간화와 심화로 발생하는 증상 중 참으로 가벼운 증상에 속한다. 치료법은 심과 간에 있는 열을 내려주고, 혈을 고르게 하며, 기를 잘 돌아가게 하면 끝이다. 치료법이 이렇게 간단한데 우린 왜 매번 여기에 발목이 잡히는 걸까? 그건 아마 화라는 놈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기 때문일 거다. 잡혔는가 하면 어느새 타오르고, 타오르는가 하면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쳐 몸과 마음을 잡아먹는다. 그렇다면 우린 이 족쇄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걸까? 너무 낙담하지 마시라. 여기 대릉이 나가신다. 



‘목적’지향적 삶에서 ‘대릉’지향적 삶으로


대릉의 ‘대’는 높고 큰 것이다. ‘릉’은 언덕이다. 높고 큰 언덕, 대릉은 손바닥을 지나 높은 언덕 아래 있다. 주먹을 움켜쥐고 손목을 약간 뒤로 굽히면 두 힘줄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그 사이의 오목한 곳이 대릉이다. 형상으로 이름을 얻었다. 근데 또 다른 해석도 있다.


고대에는 제왕을 장사지낸 곳을 ‘릉’(陵)이라 했다. 그 죽음을 ‘침식’(寢息)이라고 높여 부르고, 그 무덤을 ‘침궁’(寢宮), 그 장례를 ‘봉안’(奉安)이라 했다. ‘릉’의 뜻을 종합하면 편안히 누워 잠을 자는 곳. 이름 그대로 몸에 적용하여 대릉을 찌름으로써 편안히 잠들게 한다고 하였다. 이름에 혈의 효능까지 새겨져 있다. 화가 치솟아 불안한 마음으로 번민의 밤을 보내는 이들에게 편안한 잠을 선사하는 혈자리. 그렇다. 언어를 제대로 아는 것. 이것이 어쩌면 문리(文理)가 트이는 지름길일지도 모르겠다. 


혈자리 대릉은 수궐음심포경의 수혈(輸穴)로서 오행상 토(土)에 속한다. 또 심포경의 원기를 간직하고 있는 원혈(原穴, 원혈에 대해서는 ‘태연’을 참조하세요.)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대릉은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잡아준다. 심기가 울체되어 소통되지 않는 불안한 마음을 잡아준다. 심포경의 원혈이니 마음작용에 크게 쓰이고, 중심을 잡아주는 토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이다. 


마음(心)에 치우치고 넘친 것은 화의 속성처럼 훨훨 타올라 자기를 소진시킨다. 몸은 뜨겁고 눈은 뻘겋게 달아오른다. 달아오른 불은 머리까지 올라와 두통이 생기고 망상이 피어오른다. 망상과 함께 밤이 깊어간다. 언제 잠을 잘꼬? 불안과 함께 불면의 밤은 하루하루 더해간다. 몸이 삐쩍 마르고 정신은 흐리멍덩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망상. 이 고리를 끊으려면 화기를 조절해야 한다. 이보다 먼저, 화기가 치솟는지 치우쳤는지 알 수 있는 토의 기운이 배양되어야 한다. 이것은 자신의 몸 상태를 자각하는 것이 먼저다. 주자는 이를 ‘구방심’(求放心), 곧 ‘집 나간 마음을 불러오기’라고 하였다. 방심은 시쳇말로 일종의 ‘비자각 상태’, 멍한 정신 나간 상태다. 이런 자기의식의 망각 혹은 비자각 상태를 극복하고 생생한 자기의식으로 돌아오기가 구방심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아차! 내가 정신을 어디다 두고 있었지?”하는 자각이면 충분하다. 이 순간적이고 즉각적인 성취. 이런 자각이 지속되면 내면의 밝은 기운이 회복된다. 마음의 중심, 토가 배양된 것이다. 이때 우리는 ‘목적’지향적 삶에서 ‘대릉’지향적 삶으로 변신한다. 그렇다. 집나간 마음을 불러올 땐 잊지 말자. 손목 한 가운데 대릉을! 토의 중심력을! 


이영희(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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