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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너의 숨소리가 들려?! 청궁혈을 눌러주세요~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0. 10.

워~ 워, 과속은 이제 그만

 


에너자이저, 백만 스물둘


이제 와 돌이켜보니 스무 살 이후, 내 삶은 과속의 연속이었다. 과유불급이라는데 뭘 하든 넘치고 지나쳤다. 하려고 마음먹은 일은 무엇이든 너~무 열.심.히. 했다. 대학을 마칠 때까지 공부도, 운동도, 연애도 열나게 했다. 졸업하고 1년 동안 임용고시 공부에 매진해서 교사가 되었다.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아이들 가르치는 데 필요하다 싶은 온갖 연수를 받으러 다녔고, 학급운영 자료집에 나오는 다양한 활동들을 아이들과 함께했다. 집단상담, 단합대회, 생일잔치, 뒤뜰야영. 학교 내 교사모임에, 지역 모임까지 해야 할 일들이 넘쳐났다. 그것들을 모두 해내느라, 거의 매일 잠들 때면 ‘완전 방전’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푹 자고 일어나면 또 다른 에너지가 솟았다. 힘세고 오래간다던 건전지 광고. 하나, 둘, 셋… 백만 스물하나! 근데 나는 그보다 하나 더 한다고 얻은 별명이 ‘에너자이저, 백만 스물둘’이다.  


헛... 진정 사람이 소화할 수 있는 스케쥴이란 말인가!!


딸을 낳아 키우면서는 아이를 건강하게 잘 키우고 싶어서 공동육아를 선택했다. 아이 키우기도 버거운데 청소, 방모임, 회의, 밤 마실까지…. 감당해야 할 것이 더 많아졌다. 학교생활은 여전히 바빠서 하루 종일 동동거리며 뛰어다녔다. 할 일이 산더미라 화장실에 갈 여유조차 없었다. 퇴근 시간이 넘어 방광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되어서야 겨우 화장실에 가는 게 다반사.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집에서 이사(운영을 담당하는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새벽 두세 시까지 회의가 이어졌다. 이사를 맡은 2년 동안 어린이집 터전을 옮기고 날이면 날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을 처리하면서 별명을 또 하나 얻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린다고 ‘경주마’.  


곧이어 학교에선 “교장은 학교에서 일종의 군주권을 갖는 존재”라고 말하는 최악의 관리자가 부임했다. 자기 별명이 ‘조폭 교장’이라는 걸 자랑스러워했다. 교장의 횡포를 차마 두고 볼 수 없어 2년간 맞서 싸웠다. 교육청과 인권위에 진정하고, 검찰에 고발하고 맞고소 당하고…. 막상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때는 힘들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학교를 옮기고 긴장이 풀리자,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자려고 누우면 ‘내게 남은 에너지라곤 하나도 없구나!’ 라고 느낄 만큼 진이 빠졌다. 이후 상태는 계속 나빠졌다. 하지만 아프기 시작했어도 ‘에너자이저+경주마’로 살던 습을 버리지 못하고 이전 방식과 속도 그대로 살았다. 그렇게 3년이 지나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어느 날, 하늘이 빙빙 돌면서 눈앞이 캄캄해지는데, 그 순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 이러다가 곧 죽겠구나!’  



너의 숨소리가 들려


어렸을 때부터 귀속이 간지러운 병이 있어서 툭하면 귀에서 진물이 나오곤 했다. 그런데 눈앞이 캄캄해지던 그 날 이후, 귀속에서 다양한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주 높은 삐~~ 소리, 찌~잉 또는 윙~하고 울리는 소리, 파도소리까지. 높고 요란한 소리들은 낮에 두통과 함께 찾아왔고 자려고 누우면 낮고 작은 소리들이 들렸다. 가뜩이나 기운 없고 피곤한데 소리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럴 때면 파도소리나 심장 뛰는 소리 같은 게 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는 왼쪽 귀에서 ‘쉬익~ 쉬익~’ 사람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허걱! ‘내가 귀신 소리라도 듣는 건가?’ 싶은 생각에 왈칵 무서워졌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돌아누워 보니 여전히 그 귀에서만 숨소리가 들렸다. 귀울이, 이명(耳鳴)이 시작된 것이다. 나를 겁먹게 만든 숨소리, 이명은 어떤 병인가?


사람이 욕심을 절제하지 않거나 일을 지나치게 많이 하거나 나이가 중년을 넘어섰거나 큰 병을 앓은 뒤에는 신수(腎水)가 마르고 음화(陰火)가 타오른다. 이 때문에 하루도 쉬지 않고 귀가 가렵고 소리가 난다.(…) 담화(痰火)가 있을 때는 귀가 심하게 울고, 신허(腎虛)할 때는 귀가 약하게 운다.

                  
─『동의보감』, 「외형편」, ‘이’(耳), 동의보감출판사, 549~550쪽

 

이명은 남들에게는 안 들리는 소리를 자각하는 증상이다. 내가 들었던 숨 쉬는 소리, 파도, 심장 박동, 삐~, 찌~잉, 윙~하는 소리 말고 매미소리나 종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북소리를 듣기도 한다. 이명에는 신허이명(腎虛耳鳴)과 담화이명(痰火耳鳴) 두 가지가 있다. 신허이명은 말 그대로 신장(腎臟)의 기운이 부족해서 오는 경우로, 보통 작고 낮은 소리들이 들린다. 담화이명은 몸 안에서 정체된 진액(痰)이 스트레스(火)로 인해 담화(痰火)로 변하고 이것이 위로 치받아 귀가 울리는 것이다. 비교적 높고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내 경우는 이 두 가지가 모두 나타난 것인데 ‘신수(腎水)가 마르고 음화(陰火)가 타올라’ 생긴 것이다. 그 근본 원인은 화(火)보다 물(水)에 있다. 신장에 있는 물기, 즉 신정(腎精)이 고갈된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오랫동안 지속적인 과열, 항진상태로 살아왔다. 날마다 쓸 수 있는 기운을 마치 치약 마지막을 짜내듯 남김없이 써버리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몸이 아프고 기운이 하나도 없다가도 ‘이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마치 스위치가 올라간 자동 기계장치처럼 힘이 펄펄 솟아난다.(이건 지금도 그렇다. ㅜㅜ) 그러니 남들이 보기에는 ‘백만 스물둘!’을 외칠 것처럼 보일 수밖에. 이 모든 건 내 신명(神明: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양기를 과도하게 불러일으킨 탓이다. 지나친 양기는 화기(火氣)가 되어 몸속의 물을 다 태워 버린다. 그렇게 되면 몸속의 물인 진액이 졸여져 담음(痰飮)이 되고, 그 상태에서 자꾸 몸과 마음을 혹사하면 담화(痰火)가 된다. 결국 신장(腎臟)이 허해지고, 신장과 연관된 귀가 가렵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게 되는 것이다.



귀울음 뚝! 그치게 하는 혈자리, 청궁(聽宮)


오밤중에 난데없이 귀신(?!) 숨소리를 듣게 된 이유를 알았으니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명치료에 효과가 있는 혈자리들은 수태양소장경의 청궁(聽宮)혈, 수소양삼초경의 이문(耳門)혈, 족소양담경의 청회(聽會)혈 등이다. 이 혈자리들이 왜 이명 치료에 쓰이는지, 어디에 있을지, 이름만 봐도 느낌이 딱 오지 않는가? 맞다. 짐작대로 청궁혈은 귀 한가운데 앞쪽 움푹 패인 곳에 있고, 청궁에서 1/2촌 위 움푹 패인 곳이 이문혈, 아래로 1/2촌  움푹한 곳이 청회혈이다.


청궁혈은 입을 벌린 상태 찾으세요!

이들 중 청궁(聽宮)혈은 수태양소장경이 끝나는 혈자리이면서 수소양삼초경과 족소양담경까지 3개의 경맥이 만나는 교회혈이다. 『침구갑을경』에 의하면 ‘청(聽)’은 ‘똑똑히 듣는다’는 것이고 ‘궁(宮)’은 ‘중요한 자리’이니 ‘음성를 똑바로 듣는 장소의 중심부’인 이 혈은 귀의 구조와 청력기능을 정상화하며 마음을 안정시키는 기능을 한다. 또한 소염(消炎)효과가 있어 급성중이염에도 쓰인다. 5푼 정도 직자로(直刺: 똑바로) 자침하는데 지압이나 마사지를 해도 상당히 효과가 있다. 『동의보감』에는 침은 3푼 놓으며 뜸은 3장 뜬다고 되어 있다.


이문혈, 청궁혈, 청회혈은 위치가 매우 가까운데 청궁혈은 입을 벌린 상태에서 그 자리를 정한다. 입을 벌렸을 때 귀구슬(耳珠 : 귓구멍 앞에 팥알만큼 도드라져 나온 부분) 앞에 생기는 쏙 들어가는 부분이다. 입을 벌리고 눌러보면 움푹 들어가지만 입을 다물면 사라지기 때문에 청궁혈의 위치를 잡을 때는 입을 벌린 상태에서 찾아야 한다.  


『침구갑을경』에 따르면 청력감퇴와 이명에는 청궁혈 외에 이문(耳門), 예풍(翳風: 귓불 뒤 아래 움푹한 곳), 중저(中渚: 손등 4, 5지 사이)혈을 쓰고, 귀에서 진물이 날 때는 합곡(合谷 : 손등 1, 2지 사이)과 예풍혈을 쓰고, 이농(耳聾 : 귀먹은 증상)을 치료할 때는 청회, 예풍, 회종(會宗:^^ 바깥 손목 위 3치)혈을 쓴다.


『동의보감』 ‘이’(耳)에서는 “횟수에 상관없이 손으로 귓바퀴를 문지른다.(…) 이렇게 하면 신기를 보해주고 귀가 먹는 것을 막아준다”는 수양법이 나와 있다. 평상시에 귀를 수시로 마사지하라는 것이다. 이때, 똑바로 앉은 상태에서 엄지손가락을 귀 뒤에, 둘째손가락을 귀 앞에 대고 귀를 잡는 것처럼 하면서 2~3분간 위아래로 문질러 주는 게 효과적이다. 그다음에 가운데 손가락으로 귀 주위를 돌아가면서 문지르는데 이명이 있는 경우라면 귀 앞부분에 있는 청궁, 이문, 청회혈을 꼭꼭 눌러주면 더 좋겠다.


또한 이명의 원인이 신허(腎虛)인 경우라면 귀를 마사지하면서 족소음신경의 태계혈(신정(腎精)의 신(神) 태계혈)과 용천혈(전신피로, 온천? 용천!)을 지압해주어 신장의 기운을 북돋아 주면 금상첨화. 높고 요란한 소리가 들리는 담화이명인 경우에는 치솟는 화기를 잡아주는 수궐음심포경의 단중혈(호흡, 비울수록 편안하다)을 함께 눌러주면 증상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흰 날갯짓(習) 바꾸기


두 가지 이명이 다 들렸던 나. 높고 요란한 소리는 주로 낮에 들렸는데 이때는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귀속이 부은 듯하면서 먹먹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낮고 조용한 소리가 들리는 건 주로 밤이었는데 기운이 쪽 빠지면서 머리가 어지럽고 잠이 잘 오지 않고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렸다.


‘이대로 살다가는 곧 죽겠구나!’ 충격을 받았던 2011년, 앞으로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우연히 곰샘 강의를 듣고 ‘감이당’을 찾아왔다. 의역학 강좌를 들으면서 아픈 내 몸을 돌보고 건강을 되찾을 지혜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확 꽂혀 감이당 대중지성을 신청했다. 1학기 첫 에세이를 쓰면서 내가 왜 이렇게 죽도록 달리며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문제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글을 쓰면서 뒤틀리고 굳어버린 생각과 욕망들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이 마음을 풀어내는 것이 먼저라는 걸 깨달았다. 


남들은 내게 종종 묻는다. “대체 못 하는 게 뭐예요?” 그럼 난 대개 이렇게 대답한다. “겸손한 척하는 거요. 제가 그거 빼곤 하려고 맘먹은 건 잘하는 편이에요.” 상대방은 내 말에 허걱~! 한다. 허나 하고 싶은 일이라 열심히 했고, 그렇게 해서 잘하게 된 걸, 내가 생각해봐도 잘하고 있는데 “아유~ 저는 못해요”라고 가식을 떨란 말인가. 상상만 해도 우웩~ 비위가 상하니 이를 어쩌랴. 그래서 나는 ‘자기 긍정’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더해 배우는 거, 성취하는 걸 유난히 좋아한다고만 알았다. 


낡은 습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익히기 위해 무한 날개짓!!


그런데 2학년이 되어 같은 주제로 에세이를 쓰면서 깨달았다. 강력한 성취동기와 열의가 ‘스스로를 불만족스러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도달하고 싶은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내 모습 사이에 벌어진 틈, 그 간격은 나를 갈등하게 하고 그것을 메꿔 보겠다고 미친 듯이 내달리게 해왔다는 것을. 하나라도 더 가지고 쌓아두려는 마음, 들끓는 탐욕이 내 몸의 물기를 말리고 온몸의 뼈와 근육을 졸이고 나를 다 태우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니 아플 수 밖에. 양명이 말한 ‘배우는 사람이 가져야 할 진실하고 절실한 마음’, 사마천이 내게 전해 준 ‘간절함’은 무엇을 더 가지고 덧붙이려는 사욕이 아니었다. 자신의 욕망들을 하나하나 비추어 보고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중(中)을 잡으려는 필사의 노력, 내가 가지고 있는 병통을 덜어내고 비워내는 것이 정말 자기에게 좋은 것임을 아는 지혜가 거기에 있었다. 


늘 지나치게 에너지를 쏟아내는 습관이 나를 병들게 했다. 이걸 깨닫고 나서 달라져야겠다고 결심했지만 불기운을 조절하면서 쓴다는 게 참 쉽지 않다. 습(習)이란 글자는 ‘아기 새가 처음 날갯(羽)짓을 배울 때 하도 열심히 파닥거려서 흰 빛(白)으로 보인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나의 과열 역시 오랜 시간 동안 그토록 열심히 노력(?)해서 몸에 밴 습관이다. 그러니 그걸 바꾸는 데 시간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이번엔 급하게 달려들어 단숨에 끝장내겠다고 덤비지 않을 생각이다. 너무 신나서 또 마구 에너지를 써대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가슴을 두드리며 “워~워! 이제 그만 진정해~”라고 말해줘야겠다. ^^  


고은주(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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