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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 이야기 ▽/북드라망의 책들

『니체 사용설명서』 지은이 인터뷰

by 북드라망 2022. 1. 17.

『니체 사용설명서』 지은이 인터뷰

1. 지난 5년 동안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강의와 세미나에서 니체를 읽고 쓰는 작업을 해오셨고, 2020년부터는 공부를 위해 아예 서울로 거처를 옮기시기까지 하셨는데요. 이렇게 선생님께서 니체에 푹 빠지시게 된 니체 공부의 매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선생님은 늘 사람 속에 있는 것 같아 참 보기 좋네요!” 또 다른 듯 같은 말로 “선생님은 사람들과 약간 떨어져 있는데 시선은 사람들을 떠나지 않네요!” 앞의 말은 대학원 후배에게서 들은 말이고, 뒤의 말은 여러 대학에서 30명 정도의 입학사정관들이 모여 열흘 남짓 해외(미국) 연수를 할 때 들었던 말입니다. 듣고 기분이 좋았고, 늘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당연히 공부도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고, 일도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니체에 푹 빠지게 된 이유도 다르지 않습니다. 니체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기에 참 좋은 텍스트입니다. 일단 니체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고, 또 니체를 읽고 쓰는 과정에서 재미있게 해 볼 수 있는 활동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효과가 참 좋습니다. 제가 지난 5년간 서울 감이당과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니체를 함께 읽으며 했던 활동들은 다양합니다. 정해진 텍스트를 혼자서 조용히 읽기. 그중 가장 감동적인 구절을 필사하기. 토론하기 전에 그 구절을 먼저 소리 내어 읽어보기. 더 나아간다면 그 구절을 암송하기. 또 더 나아간다면 그 구절을 씨앗문장으로 하여 짧은 글을 써 보기.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 문장을 활용하여 에세이를 써 보기 등이 가능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할 필요는 없고, 각자 현재 상태에 맞게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니체 세미나는 튜터가 일방적으로 이끌어가기보다는, 튜터는 설계를 잘하고 나머지는 참여하는 사람들의 힘에 맡기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렇게 훈련한 후에는 간혹 소풍, 가벼운 등산, 둘레길 걷기를 함께하며 암송대회를 여는 것도 가능합니다. 책을 통해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참 좋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도 어려운 철학책으로! 이것만으로도 이미 니체 참 멋지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사람들과 놀기에 니체가 참 좋습니다. 그러니 니체에게 푹 빠지지 않을 수 없었지요!
 

2. 선생님을 짓누르고 있었던 “정체 모를 역겨움이 니체를 읽고 쓰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하시면서 이 책을 쓰는 과정이 “명랑한 나로 바뀌는 과정”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역겨움이 사라진 명랑성이란 어떤 상태인지, 일상에서의 ‘명랑성 회복’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니체는 ‘몸 철학자’인 만큼 그의 용어를 생리학적으로 이해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역겨움은 그야말로 생리적인 현상입니다.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역겨움은 우리 몸에 맞지 않는 것이 내 몸속으로 들어와 있을 때 일어납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당장 맞지 않는 것을 토해 내거나 배설하는 것, 즉 비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을 늘 비우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뭔가 또 채워야 하는데 대부분 과거의 것으로 채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또 역겨움이 올라옵니다. 습관이 잘 바뀌지 않는 것이지요. 혹은 몸에 맞지 않는 것에 꾸역꾸역 적응하여 점차 무감각한 몸이 되기도 합니다. 이 경우 우리는 무디고 꽉 막힌 존재가 되겠지요. 이것이 니체가 진단한 현대인의 상태입니다. 이런 문제를 알고는 있지만, 해결 방법을 찾지는 못하고 있죠. 결국 현대인들은 현실의 생존을 이유로 억지로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니체는 이에 대해 독특한 진단과 처방을 합니다. ‘임신’의 비유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역겨움을 극복하는 길을 열어줍니다. 임신한 여인은 역겨움을 느낍니다.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새로운 것을 잉태하면서 느끼는 생리적 현상이죠. 니체는 몸에 새로운 무엇인가가 잉태되어 자라는 과정에서 몸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생리적 현상으로서의 역겨움에 주목합니다. 니체를 읽음으로 인해 생기는 역겨움은 나에게 새로운 인식체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때 느끼는 역겨움은 내가 새로운 존재로의 변신을 시작했다고 보시면 좋습니다. 니체를 만나지 않았다면 역겨움도 변신도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제가 니체를 만나 왜소함과 역겨움을 느끼고, 니체 읽기와 관련된 여러 가지 활동들과 쓰기를 통해, 명랑성을 회복해 가는 과정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니체는 우리에게 ‘모든 가치를 전도’하라고 말합니다. 니체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시킨 여인처럼 일상의 모든 가치를 만들어 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저의 경우 과거에 교육학 공부를 바탕으로 한 제도와 정책을 만들고 현장에서 실천해 보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올라온 역겨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역겨움은 제가 니체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저 저의 힘을 고갈시키고 스스로를 왜소하게 하는 힘으로만 작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니체라는 사상가를 만났고, 그의 글을 읽고 제 삶에 활용하고 나아가 ‘니체 사용설명서’를 쓰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사유체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니체라는 사상가는 저로 하여금 “명랑함과 건강함은 깨달음에서 온다!”라는 사실을 체험하게 했습니다. 좀더 추가한다면 ‘주역’과 ‘불교’ 공부를 통해 그 가설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공부 보살’이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 나름의 서원(誓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과거와 달리 어떤 목표를 이루겠다는 집념과 의무가 아니라, 내면에서 생겨나는 기쁨의 마음으로 사람들과 함께 고전을 읽고 쓰면서 저와 세상을 명랑하고 건강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일이 저에게 가장 좋고 또 저와의 인연으로 고전을 읽고 쓰는 활동을 하게 될 사람들, 나아가 세상에도 가장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큰 깨달음의 장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저도 세상도 명랑성을 회복해 가는 것이겠지요. 저는 50대에 시작한 지금의 공부를 통해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고전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고, 그 결실로 『니체 사용설명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어 간다면 저도 세상도 조금은 더 명랑해지리라 기대합니다.


3. 이 책에는 니체를 읽고[讀], 쓰고[用], 쓰는[書] 과정이 담겨 있는데요, 특히 글쓰기가 “나를 다른 존재로 변형”시키며, “위대한 건강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책의 본문에도 적었지만, “내가 변한 딱 그만큼 니체가 읽힌다.”라는 말을 가져오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말은 하이데거가 니체에 대해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출판한 책에서 한 말입니다.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 저는 “바로 이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말은 ‘니체가 어렵다’, 혹은 ‘니체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거북하다’고 말했던 과거의 저(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그 돌파구를 명백하게 말해 줄 수 있는 키워드였습니다. 그렇다고 이 말을 대단한 말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니체와 같은 사상가의 책을 ‘읽고[讀], 쓰고[用], 쓰는[書] 이유’는 지금의 나를 고착시키는 데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책 읽기를 자신을 고착시키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니체는 절대 읽힐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니체를 자신의 삶에 활용할 수도, 니체를 쓸 수도 없겠지요. 따라서 니체를 공부한다는 것은 나를 바꿔나간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 욕심 낼 필요도 없고, 욕심을 낸다고 될 일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니체를 통해 나를 한번 바꿔보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니체를 읽을 수 있게 되고, 동시에 니체를 내 삶에서 잘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가 ‘위대한 건강으로 가는 길’이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없는 말이라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글쓰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고, 실제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 건강을 해치거나 관계가 깨지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니체를 읽는 것[讀]이 한 사상가의 글이 내게 들어오는 활동이고, 니체를 활용하는 것[用]이 내 몸 안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이라면, 니체를 쓰는 것[書]은 내가 세상과 능동적으로 소통하는 것으로 이해해 볼 수도 있습니다. 니체의 표현을 빌리면 글쓰기는 내가 ‘강자의 자리’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최고의 수단입니다. 니체를 읽고 활용하는 것을 통해 변화된 것이 내 안에 정체되지 않고 세상과 자연스럽게 소통되고 또 그 소통을 지속할 힘을 가질 수 있다면, 나는 늘 새롭게 생성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글쓰기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민감한 감각과 언어, 나아가 윤리를 다듬는 활동입니다. 글쓰기의 성과로 당연히 글이나 책이 남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나의 감각과 언어, 나아가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새롭게 생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글쓰기는 위대한 건강으로 가는 길이 맞습니다.


4. 책 제목이 『니체 사용설명서』입니다. 니체를 사용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또 이 책을 읽는 우리도 사용할 수 있을까요?

‘니체 사용설명서’라는 연재 제목은 니체를 통해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가장 장 담아낼 수 있는 큰 그릇입니다. 이 책의 1부는 이론적 논의라 좀 길고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 점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다른 이론서들에 비해서는 쉽게 읽힐 것입니다. 어떤 철학서를 읽든지 어느 정도의 사유 훈련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니체를 읽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사유 훈련을 제 나름의 방식으로 써 본 글입니다. 


2부와 3부는 ‘생활 철학 에세이’를 염두에 두고 쓴 글입니다. 오래된 유행어이지만 “아직도 에세이집 한 권 없으세요?”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도 어느 지인으로부터 들은 말인데요. “주변에 책 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죽겠어요.”라고 비명을 지르더군요. 책 출판이 산에 있는 나무들에게 미안한 일일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을 성가시게 만드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그 책이 나의 삶을 ‘성찰’하고 변신하여 새롭게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된다면 제게도 대자연(우주)에게도 그것은 ‘큰 순환’을 만들어내는 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이당에서 공부하고 있는 제가 욕심을 낸다면, 이 책으로 인해 “아직도 고전 사용설명서 한 권 없으세요?”라는 말이 유행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이 책은 니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학자적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분석하면서 읽고 해석한 책이 아닙니다. 그런 책은 매우 많습니다. 이 책은 제 삶에 니체를 어떻게 활용했는가에 방점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 책은 중년의 어느 한 남자가 니체를 ‘읽고, 쓰고, 사용하며, 명랑성을 회복한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그렇게 읽어 주셨으면 좋겠고, 조금 더 기대한다면 앞으로 많은 분들이 ‘고전 사용설명서’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분의 삶도 명랑하고 건강해질 것이고 세상 또한 그렇게 될 테니까요. 그럼 나무들도 좋아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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