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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글쓰기 특강 :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by 북드라망 2019. 11. 20.

『고미숙의 글쓰기 특강』  - 글 써야 산다



문빈(남산강학원)


나는 남산강학원&감이당이라는 공동체에서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고 있다. 이런 내가 신기한지 주변에서는 종종 묻는다. “글 써서 뭐하게?”, “작가 되려고?” 그러면 딱히 할 말은 없다. 맞는 말인 거 같아서다. 하지만 세속적으로는 보이기 싫다. 그래서 나는 “좋아서 쓴다”라는 말로 넘겨버린다. 이렇듯 글쓰기는 작가라는 직업과 강하게 밀착되어 있다. 나도 처음 글을 쓰고자 했을 때 책을 출판해야 한다는 무거운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인가? ‘나는 왜 이렇게 못 쓰지?’라는 자의식과 함께 친구들과 경쟁, 비교하는 마음이 수시로 올라왔다. 




그런데 곰샘(고미숙 선생님)은 『고미숙의 글쓰기 특강 :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에서 글쓰기가 ‘좋은 삶’을 살기 위한 실천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은’ 그런 삶! 물론 글을 쓰면 자연스럽게 책을 내고 작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곰샘이 말하는 글쓰기는 그것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왜? 글쓰기에는 ‘다른’ 좋은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산만함엔? 글쓰기가 즉효 약!


삶은 또한 늘 혼돈이다. 엔트로피 법칙이 말해 주듯이, 세상은 늘 무질서를 향해 간다. (......) 게다가 우리의 뇌는 늘상 재잘거린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뭔가를 떠들어 댄다. 그 생각들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천지분간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하여, 우리는 필연적으로 이 산만함을 맞서는 훈련을 해야 한다. (『고미숙의 글쓰기 특강 :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북드라망, 2019, 110~111쪽)


우리 일상은 늘 ‘번잡’하다. 생각과 욕망이 확확 바뀌는 신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를 만나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야식과 야동을 끊지 못하는 것이 그 증거다. 우리 삶은 이렇게 방만해지기 너무 쉽다. 여기서 자존감이 생길 리 만무하다.


이러한 ‘산만함’을 퇴치할 비장의 무기는 바로 ‘글쓰기’다. ‘글쓰기로 어떻게 욕망을 조절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조정이 된다.^^ 내 얘기를 해보자면, 공동체에서 처음 글맛을 본 건 작년 봄이었다. 1장 반쪽짜리 글을 완성하는 게 목표였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수렴과 집중”이 잘 안됐기 때문이다. 온종일 노트북 앞에 있었지만, 한 문단을 제대로 쓰지 못했던 적도 많다. 그러니 우선 “체력과 집중력”을 훈련해야 했다. 그때부터 자극적인 음식을 끊고, 매주 등산을 다녔다. 그렇게 신체를 바꾸고 나서야 글이 끝났다. 봄에서부터 가을까지 31번을 고쳐서 한 편의 글이 완성된 것이다.

글쓰기는 일상의 산만함을 조절해 주고, 일상에서의 수행은 글쓰기를 돕는다. 어떻게 이렇게 되는 걸까. 글을 쓰려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몰입하지 않으면 낱말이 사방으로 흩어져 버린다. 그것을 붙잡으려면 체력이 필수다. 그래서인지 글을 쓰면서 내 생활은 단순해졌고 몸도 튼튼해졌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불안함이 계속 남아 있었다. 글을 쓰는 재주가 이렇게 없어서야! 책을 출판해야 글 쓰는 게 의미 있는 거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왜 쓰는가? ‘글쓰기-니힐리즘’에 걸릴 판이다.

  


‘쓰면’ 달콤한 인생


쓰기는 읽기의 방향과 강/밀도를 전면적으로 바꿔 준다. 결코 니힐리즘 따위에 걸려들지 않는다. (......) 쓰기를 염두에 두면 읽기의 과정이 절실해진다. 읽기 또한 쓰기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고미숙의 글쓰기 특강 :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65쪽)


곰샘은 써야 “읽기의 방향과 강밀도”가 달라진다고 한다. 쓰기를 전제로 하지 않고 읽으면 ‘구경꾼’ 모드가 되기 쉽다. ‘구경꾼’의 자세로 읽으면 대충 넘어가는 부분도 생기고, 재밌던 부분도 뇌에서 금방 증발해 버린다. 그래서 읽기만 하면 결국엔 허무해진다. 반면, 쓰면 읽기의 역동성을 체험할 수 있다. 책을 두 번, 세 번 그 이상까지도 읽게 된다. 또 그 속에서 새로움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단어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느낀다. 쓰면 진실로 “읽기의 과정이 절실”해지는 것이다.


올해 나는 『동의보감』으로 글을 연재하면서 그것을 경험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완성해야 했고 어떻게든 글을 써내야 했다. 자연스럽게 글쓰기는 내 삶의 중심이 됐고 책을 읽고 또 읽게 됐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내가 책만 열심히 읽게 된 게 아니다! 놀랍게도 일상에서도 역시 활짝 열리게 됐다는 점이다.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질문들이 일상에서 이해가 되고, 일상에서 도무지 풀리지 않던 문제들이 책을 읽다가 갑자기 정리되는 경험을 했다. 그 순간 책은 문자로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불어 생활 곳곳이 텍스트가 되고 질문거리가 됐다. 이해할 수 없었던 친구의 마음을 책 속에서 발견하고 친구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의 변화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등산을 가는 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계절과 날씨, 나무와 식물의 변화를 관찰하고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쓰기를 전제로 한 읽기는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줬고, 일상에서 만난 텍스트는 책 읽기의 강밀도를 부여해 줬다. 

  

책과 자연 그리고 사람에 대해 궁금해하고, 그것을 읽으려고 할수록 그것들이 ‘나’와 연결돼 있음을 경험했다. 책이 곧 ‘나’ 자신이고, “내가 곧 세계가 되고 별이 되고 우주가 된다.” 이러한 연결 속에서 나는 친구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는 마음이 차츰 줄어드는 걸 느꼈다. 오히려 친구들의 글에서 감동과 전율을 체험했다. ‘이 글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정말 존경스럽다!’ 이처럼 글쓰기는 위계 짓는 나의 습관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친구를 배움의 태도로 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최고의 활동, 최고의 길

  

글쓰기가 좋은 건 알겠고 경험도 했는데, 또 막상 쓰려고 하면 사실 무척 괴롭다.^^ 자의식과 인정 욕망이 중구난방으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기 전까지도 심적 부담감이 엄청났다! 그러면서 글쓰기에 애초부터 소질이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나도 글을 술술 잘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고미숙의 글쓰기 특강』을 찬찬히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완전히 깨졌다. 만약 글을 쓰는 게 쉽고 간단했다면 내가 내 삶에 이 정도로 집중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사람과 세상에 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생겨났을까. 더불어 수많은 자극과 쾌락으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 있었을까. 아마 없었을 것이다. 글쓰기는 어렵지만, 그 어려움 덕분에 내가 산다!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내 삶의 구원이다. 글쓰기는 나의 삶을 꽉! 잡아주기 때문이다. 곰샘이 글쓰기를 “최고의 활동, 최고의 길”이라 칭하는 것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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