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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리포트

내가 쿠바에 왔다는 것을 가슴 깊이 실감한다

by 북드라망 2018. 6. 26.

쿠바 리포트 : 내가 쿠바에 왔다는 것을 가슴 깊이 실감한다


 

치니따로 살아가기


뉴욕과 아바나는 여러모로 다르다. 뉴욕은 무관심이 곧 예절인 도시였다. 메트로폴리탄 도시가 다 그렇듯이 인정(人情)이 부족한데다가, 워낙 다종다양한 외국인이 섞여 살기 때문에 외국인이라는 게 어떤 특이성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 뉴욕에 도착한 첫날부터 나는 그렇게 그 도시에 무심하게 녹아들어갔다.




그러나 아바나에서는 모든 것이 반대다. 나는 이곳에서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뜨겁다 못해 불에 타버릴 것 같다. 길을 걸어갈 때마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들. 이 시선을 감추려고 하지도 않는다. 아니, 쳐다보는 것은 그나마 낫다. 짖궂은 남자들과 마주치면 이 시선은 더 노골적으로 변하고, 이 시선은 끝내 나를 부르는 외침으로 바뀐다. “치니따(Chinita)!” 중국 여자라는 뜻의 ‘치나(China)’에다가 작고 귀엽고 예쁘다는 뜻인 접미사 ‘-이따(-ita)’를 붙인 단어다. 쿠바에서는 일본 여자도, 한국 여자도, 중국 여자도, 베트남 여자도, 몽골 여자도, 필리핀 여자도 모두 ‘치니따’가 된다. 처음에는 눈을 부라리며 짜증을 내거나 마음 좋게 웃으면서 ‘나는 꼬레아니따(Coreanita)’라고 맞장구도 쳐봤지만, 이제는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뉴욕에서 삼 년간 연마한 파워 워킹을 보여주며 남자들을 순식간에 지나쳐갈 뿐이다. 그러나 다음 블록에 진입하면 또 다른 남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겠지만 쿠바에서는 모든 남자들이 나이와 상관 없이 자신감이 충만해 있는 것 같다......


쿠바 역시 뉴욕처럼 역사적으로 여러 인종이 섞인 땅이다. 그러나 쿠바 인구에서 아시아 핏줄의 비율은 현저하게 낮다. 나처럼 100% 아시아인 외모는 찾아보기 힘들다. 몇 대만 내려가면 혼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흑인이 길을 걸어가면 한국인들도 빤히 쳐다보지 않는가. 흑인들이 한국에서 겪는 불편과 차별을 생각하면 차라리 쿠바 남자들의 칭찬(?)을 듣는 게 더 나은 일일지도 모른다. “Linda(예쁜이)!” “Mi vida(내 인생)!” “Mi amor(내 사랑)!”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학교에만 가면 정반대라는 것이다. 아바나에 있는 아시아인은 전부다 학교에 오는 것 같다. 수업이 있는 학교 건물 2층은 치니따와 치니또들 일색이다. 복도에서는 스페인어가 아니라 중국어가 들려온다. 니하오...웨이쎰머...니츠판러마...... 여기가 쿠바인지 중국인지 구별이 안 간다. 게다가 전부 다 내 또래거나 나보다 더 어리다. 아니, 쿠바에 이렇게 젊은 중국인들이 많단 말인가? 그 중 절반은 중국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어학연수를 온 경우이고, 나머지 절반은 쿠바에서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찾아온 학생들이다. 다들 스페인어가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쿠바에 온 것이다. 이중에는 이미 아프리카 콩고에서 6년 동안 일하면서 포르투칼어를 익힌 친구도 있다. 지금 나는 스페인어 중급반에 있는데 우리 반은 거짓말 안 보태고 전부 다 동아시아인이다. 몽골인 1명, 베트남인 1명, 한국인 2명, 그리고 중국인 9명.


아바나에 와서야 나는 중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라는 것을 뼛속까지 실감하게 되었다. 뉴욕에 있을 때는 중국 친구들을 일부러 피했었다.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며 영어가 아니라 중국어를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진심으로 룬핀에게 중국어를 배우지 않은 것을 통탄하고 있다. 앞으로 내가 세계 어디를 가도 중국인과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깨달은 탓이다. 우리 반 친구들에게 중국어 좀 배워볼까 생각 중이다. 요 근래 친해진 중국 친구에게 중국어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더니, 간절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중국인이 너무 많아서 스페인어를 못 배우겠어. 우리 스페인어로만 말하자.........제발.”

 


공부를 간절하게 만드는 학교


그렇게 간절한 얼굴을 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스페인어 공부에 간절하다. 나 뿐만이 아니다. 우리 반 친구들 모두가 그렇다. 우리가 특별히 공부를 좋아하는 건실한 학생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아바나 대학교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우리 반 선생님은 아무래도 일하기 싫은 것 같다. 벌써 코스가 3주 째에 접어들었는데 별로 배운 게 없다. 제 시간에 수업이 끝난 날은 단 한 번도 없다. 15분 일찍 끝내는 건 기본이고, 툭하면 야외 수업을 하고 (야외 수업은 보통 1시간이면 끝난다), 우리에게 PPT 발표를 시킨 날에는 발표가 끝나자마자 아직

수업시간이 1시간 반 남았는데도 우리를 집에 보냈다. 또 어제는 학교가 시간표를 바꿨다면서 (바뀐 시간표는 오늘부터 적용되는데도 불구하고) 45분 일찍 수업을 끝냈다. 우리는 얼 빠진 표정으로 교실을 떠났다. 스페인어를 아직 옹알이처럼 하는 내 중국 친구는 분기탱전하여 아주 또렷한 스페인어 발음으로 내게 말했다. “나는 더 공부하고 싶어(Quiero estudiar más)!” 



이런 교육 체계의 허술함은 우리에게 위기감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학교만 믿고 있다간 스페인어가 전혀 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뭐 하나라도 배우기 위해서 아파도 꿋꿋이 학교에 나오고 있다. 수업 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친구들도 꽤 된다. 나는 집에서 매일 수업시간에 쓰인 단어를 외우고 있다. 혹시 이게 학교가 택한 고도의 전략인 것은 아닐까? 자기주도적 학습을 하라는 교육 강국 쿠바의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걸까?


더 황당한 것은 수업료를 내는 것마저 아주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 사무실은 정해진 기간까지 수업료를 내지 않으면 당장 쫓아내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정작 수업료를 내러가면 오늘은 안 된다고 거절한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돈을 은행까지 안전하게 옮길 금고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그렇단다. 헐...... 모든 거래가 현금으로 이루어지는 쿠바이기에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덕분에 나는 240만원에 상당하는 현금을 벌벌 떨면서 몇 번씩이나 들고 다녀야 했다. 이후로도 문제는 계속 되었다. 학기가 시작하자 사무실에서는 10월 12일에만 (오직 그날에만!) 수업료를 낼 수 있다고 다시 공지를 냈다. 그래서 나는 그날에 맞춰 준비를 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는 학생 리스트에서 내 이름을 찾을 수 없다며 한 시간 동안 뺑뺑이를 돌리다가, 결국 내가 대학교 입학 준비생(Preparatorio)이라는 사실을 알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아, 준비생들은 언제 돈을 내는지 우리도 몰라. 아직 지시가 안 내려왔거든. 이번 주 금요일에 다시 한 번 사무실에 와봐.”


이렇게 돈 받기를 싫어하다니! 돈을 주겠다는데도 싫다니! 내가 쿠바에 왔다는 것을 가슴 깊이 실감한다. 모든 서비스가 느려도 돈 만큼은 번개같이 받아가는 미국과는 정말 딴판이다.

 

 

치니따이자 쿠바나


그렇지만 나는 코리아 치니따로서 스페인어 배우는 것을 꽤나 즐기고 있다. 이것은 영어를 배우는 것과 굉장히 다른 경험이다. 스페인어를 배우고 나서야 한국어에 얼마나 영어가 많이 섞여있는지 깨달았다. 가령, 영어로 호박은 펌킨(pumkin)이다. 사과는 애플(apple)이다. 생선은 피쉬(fish)이며, 닭은 치킨(chicken)이다. 이 정도 영어도 못하는 한국인은 찾기 힘들다. 영어 한 마디도 못하는 한국인이라도 뉴욕에서 레스토랑을 가면 그럭저럭 메뉴판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스페인어를 쓸 때는 어떤 연관성도 없이 새 단어를 무조건 외워야 한다. La calabaza, la manzana, el pescado, el pollo, el frijol, 어쩌구, 저쩌구...... 세상과 처음 만나는 아기처럼 나는 매일 새로운 단어와 마주친다. 내 방 냉장고에는 우리 집주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대화할 때 주워들은 새 단어들이 가득 붙어 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말을 못 알아들을 수 있을까? 그리고 제한된 스페인어로도 나는 어떻게 이만큼이나 소통하고 있는걸까? 모든 게 경이롭다. 뉴욕에서는 영어를 할 수 있어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늘 자의식이 웅크리고 있었다. 발음이 틀리거나 단어를 못 알아들으면 마치 내가 충분히 교육받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쿠바에서 스페인어를 못한다는 게 불편한 일일 뿐,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쿠바인들은 모두 치니따가 이 정도 스페인어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랄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르는 단어를 가르쳐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몇 번 따라해서 단어를 외우면 과분하고 따뜻한 칭찬이 돌아온다. “이야, 벌써 쿠바나(Cubana)가 다 되었구나. 금방 배우겠어.” 25년 전, 기억나지 않는 과거 속에서 나는 한국어 역시 이런 따뜻한 칭찬 속에서 배운 게 아닐까.

이곳에서 나는 치니따이자 쿠바나이며, 아기이자 이쁜이다. 이런 정체성 혼합은 뉴욕에서라면 불가능했겠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적응해가고 있다. 내 친구들이 자주 하는 말마따나 “우리는 쿠바에 있기 때문이다.(Porque estamos en Cuba).”

 

 

해완의 반 친구들 "아시아인 클럽에 가입한 거 절대 아님~~~~"



글_김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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