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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톡톡] 입덧, 공생을 위한 이니시에이션

by 북드라망 2015. 3. 19.


입덧, 공생을 위한 이니시에이션(Initiation)




함께’보다 ‘쇼핑몰’을 선택한 인간 


헤어조크라는 독일 감독의 <거친 창공 넘어(The wild blue yonder)>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매우 신선했다. 영화 맨 처음부터 외계인이 등장하며 말한다. 자신의 별이 사막화가 되어 지구에 왔다고. 하지만 지구에 새로운 세계를 건설했다가 망하고, 이제 지구인조차 살기 힘든 지구에 남겨졌다고. 한 마디로 지구 입주 계획이 실패한 것이다. 그런데 외계인은 자신이 한 짓을 똑같이 하는 지구인을 목격한다.


지구인도 사막화된 지구를 버리고, 다른 별을 찾기 위해 우주탐사를 시작한 것. 드디어 어떤 별에 도착했다. 공교롭게도 그 별은 외계인이 버리고 온 바로 그 별. 하지만 지구인은 그 별이 외계인이 버린 별인지도 모른 채 이상적인 식민지 건설을 위해 탐사를 시작한다. 그들이 상상한 이상적인 유토피아 모델은 ‘쇼핑몰’ 같은 곳으로 그곳에서 온갖 쾌락을 다 누릴 꿈으로 부풀어 있다. 이것이 새로운 우주 식민지 패러다임이라고 즐거워하면서.


별을 탐사한 사진과 정보는 지구로 속속 전송되었고, 새로운 식민지 건설의 가능성을 타진한 후 일단 지구로 돌아온다. 첨단 과학의 힘으로 ‘시간 터널’을 통해 지구로 오는 데 성공했지만, 지구는 자신들이 떠났던 그 지구가 아니다. 820년이 지나버린 지구에 도착하자 매우 당황하는 지구인들. 그들이 건설했던 문명은 흔적조차 없는 지구. 단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현장. 망연자실!


우주에 쇼핑몰을 세우려다가...


헤어 조크 감독은 인간이 자연과 우주와의 관계가 단절됐음을 꿰뚫고 있는 듯하다. 인간은 관계를 망각해 버리자 내 멋대로 살아도 지루해지지 않는 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쾌락이다. 식민지 유토피아 모델이 ‘쇼핑몰’이라는 발상은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로 변질됐는가를 보여준다.


내 몸 하나 편하자고 아니 거기서 더 나아가 쾌락을 위해 지구의 골수를 쪽쪽 빨아 먹는 것. 인간은 쾌락을 향해 질주하다가 지구가 살 수 없게 되자 반성은커녕 이제 시선을 우주로 돌려 다른 별까지 뜯어 먹으려고 한다. 공생의 지혜를 망각하면 첨단과학도 탐욕에 복무하게 된다. 헤어조크는 이 영화를 통해 그것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인간에게 ‘함께 산다는 것은 불편함을 넘어서는 과정’일 것이다. 혼자 살다가 누군가와 함께해야 함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불편이 혼자에서 함께로 모드 전환하는 신호임을 알아차리는 데 있다. 임신이란 타자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 첫 불편함이 입덧으로 드러난다. 그런 면에서 임신은 바로 공생을 몸으로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불편함을 거부한 대가


입덧하면 새댁이 헛구역질하는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임신 초기에 대부분 한다는 입덧! 동의보감은 입덧을 ‘오조(惡阻)’라고 말한다. 오(惡)는 ‘좋지 않고 깨끗하지 않다’는 뜻이고, 조(阻)는 ‘막힌다’는 뜻이다. 좋지 않은 기운이 몸을 막아서인지 입덧 증상은 구토하고 메슥거리며 어지럽고 음식을 싫어하거나 가리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런 증상은 보통 임신 60일 전후에 나타나는데, 임산부의 몸이 약할수록 심하게 겪는다.


이것은 혼자 살던 몸이 새로운 생명을 받아들이기 위한 일차 저항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저항을 받아들여 공생의 지혜를 모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즉, 입덧은 혼자의 몸에서 공생의 리듬으로 모드 전환하는 신호탄이다. 그러므로 동의보감은 입덧을 병으로 보지 않는다. 치료가 필요한 게 아니라 저절로 편안해지기를 기다리라고 말한다. 저절로 편안해진다는 말은 무엇일까. 아마도 입덧의 불편함보다 생명 생성의 기쁨을 느끼면 저절로 편안해지지 않겠냐는 뜻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현대의학에서는 입덧을 질병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개발했고, 그 약을 먹은 임산부가 대 비극에 처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950년대 후반에 독일에서 입덧 방지제로 탈리도마이드라는 약이 개발됐다. 전 세계 50개국에서 복용을 했고, 독일에서만 5,000명, 다른 나라까지 하면 12,000명의 기형아가 발생했다고 한다.


질병으로 보는 순간, 약이 필요하다.



약을 동물에게 주입하여 실험했을 때에는 별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약이 인체에 들어오면서 화학반응을 하여 구조 자체가 변형된 데에 있다. 변형된 약은 혈관을 생성하는 단백질과 결합하여 팔과 다리 등의 성장을 막았던 것. 입덧을 겪지 않고 아이를 낳으려던 꼼수가 결국 기형아를 생산하는 대참사를 낳은 것이다.


물론 제약 회사의 무리한 신약 개발이 빚은 결과지만, 이 사건에서 핵심은 입덧을 병으로 보는 관점이다. 병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치료하려는 욕망이 생기고, 그것을 이용하여 제약회사가 약을 상품화할 수 있었다. 산모는 곧바로 소비자가 되었고, 몸에서 일어나는 증상을 알려고 하기 보다는 불편함을 없애려는 유혹에 걸려든 것이다. 이것은 몸의 리듬은 전혀 바꾸지 않은 채, 생명을 낳겠다는 탐욕의 결과이다.



동의보감이 보는 입덧의 원리


앞서도 언급했듯이 동의보감은 입덧을 생명을 탄생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았다. 우리 몸은 12개의 보이지 않는 기운인 경맥의 네트워크이다. 오장육부와 연결된 12경맥은 임신 초기에는 태아를 기르기 위해 기운을 안으로 집중한다. 예컨대 외부와 네트워크 하기 보다는 내부의 생명체를 만드는 데 주력하자는 심산이다.


몸은 36.5도를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균형을 잡는 중이다. 그 와중에 태아까지 만들어야 하니 몸은 휘청거린다. 우선 몸은 아이를 만드는데 집중하게 되면서 평소에 자신이 썼던 기운의 재배치가 일어난다. 이때 몸은 절전형 체제로 다시 세팅되고 음식물을 차단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음식은 내 몸을 유지하는 에너지원이지만 그것을 소화하려면 그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음식냄새를 맡으면 역겹게 해서 음식이 몸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즉, 소화시키는 것보다 아이를 만드는데 온 에너지를 기울이는 전략인 것이다.


또한, 경맥이 태아를 기르는 데만 집중하기 때문에 대장과 위장의 경맥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다. 그리하여 기운이 고여 축축하게 된다. 고인 물은 탁해져서 썩게 되는데, 이렇게 탁하고 정체된 물을 담음이라고 한다. 이런 담음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피와 충돌하여 음식을 역겹게 만들거나 바로 토하게 한다. 결국, 생명을 만들기 위해 기운을 집중하다 보니 담음이 생기고, 그것이 피와 충돌하여 입덧, 즉 오조를 만드는 것이다.


입덧은 생명을 탄생하기 위한 과정이다,


생각해보면 태아는 몸 속에 등장한 타자이다. 임신 초기에는 태아와 담음이 모두 낯선 존재지만, 10달 후에는 나와 연결되고 우주와 연결된 생명체가 탄생한다. 그리고 남은 담음인 오조는? 임신 중 내 몸 속에 있는 담음은 오조였고, 그것이 출산하면서 남은 썩은 혈이 흘러나오게 되는데 그것을 ‘오로(惡露)’라고 한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오조에서 조가 ‘막힌다’는 뜻이라면 오로에서 로(露)는 ‘이슬’로 오조가 밖으로 나오면서 물방울로 변해 붙여진 이름이다.


동의보감에서 몸속에 생긴 이슬은 빨리 몰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축축한 물기가 기혈의 순환을 막기 때문이다. 오로는 출산을 하는 동시에 태아와 같이 빠져나온다. 그러니까 내가 낳는 것은 아이만이 아니다. 아이를 만들기 위해 감수해야 했던 담음인 오조도 같이 낳는 것이다. 하나는 움직이는 생명체이고, 하나는 썩은 핏덩이. 이 핏덩이를 보고 더럽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 덕분에 아이가 태어났음을 아는 것이야말로 생명을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정리하자면 입덧은 생명을 낳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지 피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입덧이 너무 심하다면 몸이 허약하거나 담음의 과도한 생성을 원인으로 보고 처방을 한다. 담음을 없앨 수는 없지만, 최소화하게 되면 그런대로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다. 하여 동의보감에서 제안하는 처방은 구토를 멈추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담음의 생성을 최소화하는 데 방점이 있다.



입덧, 나를 성숙하게 하는 이니시에이션(Initiation)


몸의 원리를 탐구하다 보면 우리가 원하는 것만 쏙 가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아이를 얻기 위해서는 담음의 생성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임신만이 인간이 생산하는 유일한 활동이라고 여기는 것은 협소한 생각이다. 매 순간 나를 다르게 생성할 수 있다면 우리는 늘 다른 나를 생산하는 동시에 오조를 계속 만드는 중인 것이다. 그러니까 임신도 담음도 오조도 오로도 내가 사는 동안 공존하고 겪어야 할 과정이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하지 않고 원하는 것만을 얻겠다는 욕심이 탈리도마이드라는 약을 만들고 대 비극을 빚은 것이 아닐까.


다시 헤어조크 영화로 돌아가 보자. 820년이 지난 지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인간이 만든 문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막화되었던 지구는 다시 원시 지구가 되어 푸른 생명체로써 호흡하고 있다. 인간이 지구의 골수를 아무리 빼먹어도 지구는 여전히 생명의 순환장 안에서 생생불식(生生不息)하고 있는 것이다. 관계를 망각한 인간의 몰락은 가능해도 지구는 건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헤어조크는 인간의 오만함을 꼬집는 것이 아닐까.


생생불식하는 지구처럼~



아무튼, 인간이 지구를 아무리 괴롭혀도 지구는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다. 인간도 항상성을 유지하려면 공생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를 비우고 불편함을 받아들이겠다는 넉넉한 마음. 그래야 함께 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임신은 공생을 훈련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그중에 입덧은 공생의 통과의례 같은 역할을 한다. 어떤가. 입덧이 나를 성숙하게 하는 ‘이니시에이션(initiation)’이라니 입덧이 고맙지 아니한가.



글_박장금(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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