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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6

[토용의 서경리뷰] 주공, 통치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주공, 통치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토용(문탁 네트워크) 천명은 변한다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무왕은 하늘과 땅의 신에게 제사를 올려 주나라가 승리했음을 고한다. 주나라의 탄생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사에서 왕을 비롯해 많은 주나라 귀족과 신하들은 감격과 흥분을 느꼈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낯빛을 드러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주공이다. 주공은 승리에 도취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웅장하고 화려한 제사를 올렸던 상나라의 고귀한 귀족들이 주나라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자리에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다. 천명이 바뀐 결과이다. 그것을 본 주공은 아찔했다. 지금 주나라가 천명의 주인이 되었지만 언제든 주나라도 상나라처럼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천명은 영원하지 않다. 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나라.. 2026. 4. 8.
[토용의 서경리뷰] 주공, 왕인가 신하인가 주공, 왕인가 신하인가 토용(문탁 네트워크) 주공의 등장 꽤 오래전 ‘성균관스캔들’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한복 입고 찍은 청춘로맨스물이었는데, 그 드라마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따로 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금등지사金縢之詞’를 찾으러 돌아다녔는데, 그게 뭔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기 때문이다. 금등지사는 영조가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해서 남긴 글로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며 후회하는 내용이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 영조가 바로 공개하지 않고 후세에 남길 것을 명하면서 사도세자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 보관하게 했다고 한다. 정조는 이 문서를 공개하면서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고 복권을 했다. 이런 사연이 있어서인지 정조와 관련된 책, 영화, 드라마에서는 픽션까지 더해져 금등지사가 자주 다뤄지고 있다. 금등지사는 억.. 2026. 3. 4.
[내인생의주역시즌3] 따름의 자유, 나의 천리를 따른다는 것(2) 따름의 자유, 나의 천리를 따른다는 것(2) 기원전 11세기, 중국에선 주(周)무왕 희발이 상(商)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 주(周)나라를 건국했다. 하지만 무왕은 건국 후 2년만에 사망했고 그 아들 성왕이 아홉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당시는 아직 새로운 왕조의 건국 열기가 식지 않았을 무렵이었고, 주무왕과 함께 주나라 건국의 일등공신이었던 주공(周公)은 가장 유력한 잠재적인 최고 권력 후보였다. 더구나 주공은 향후 수천 년간 중국 정치 제도의 근간이 되는 봉건제도를 설계한 인물이었을 뿐 아니라, 크고 작은 나라들을 직접 주나라에 편입시키며 명실상부한 제국의 건설을 주도했다. 요컨대 주공의 업적은 아버지인 주문왕이나 형인 주무왕에 비추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사실 시세를 따른다는 명분을 따른.. 2024. 2. 21.
이 사람을 보라 : 모든 섭정의 시조, 주공(周公) 이 사람을 보라 마차의 주인이 되기보다 마부가 되려 했던 사람, 주공(周公) 공자는 자신이 노쇠했음을 탄식하며 이렇게 말한다. "오랫동안 내가 꿈에서 주공을 다시 뵙지 못했도다!" 아마도 공자가 가장 존경한 인물은 주공(凋公)일 것이다. 공자는 찬란한 주나라의 문화를 숭상했으며 사람됨을 평가할 때도 “주공같이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더라도 교만하고 인색하면 그 나머지는 볼 게 없다," 라고도 했다. 공자는 주공처럼 자신의 능력을 다하여 군주를 보좌하고, 그 나라를 세련된 문화를 가진 문명국으로 만들려는 꿈이 있었다. 주공이 대체 누구길래 공자의 롤 모델이 된 것일까? 사마천은 「주본기(周本記)」에서 "성왕의 나이가 어리고 주(周)가 막 천하를 평정하였으므로 주공은 제후들이 주를 배반할까 두려워 마침내 섭.. 2015.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