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생존이다
학문의 길은 다른 길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 가는 사람이라도 붙들고 물어야 한다. 심지어 동복僮僕이라 하더라도 나보다 글자 하나라도 더 많이 안다면 우선 그에게 배워야 한다. 자기가 남만 같지 못하다고 부끄러이 여겨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면, 종신토록 고루하고 어쩔 방법이 없는 지경에 스스로 갇혀 지내게 된다.
(박지원, 「북학의서」,『연암집(하)』, 돌베개, 65쪽)
이토록 무서운 말이 없다. 부끄럽다고, 지금 내가 못났다고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 스스로 갇힌 채. 그래서 연암은 학문에 다른 길은 없다고 한다. 나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누구에게든 묻고, 배워야 한다고.
그런데 일상에선 영~ 쉽지 않다. 이런 나를 인정하면 될 일인데, 괜한 핑계를 대거나 못 본 척 무시하기도 한다. 물어보면 될 일인데, 입은 또 왜 이리 떨어지지 않는지. 주춤주춤. 몇 번을 우물쭈물하다가 용기를 낸다. 나에겐 이토록 어려운 길, 이 배움의 길을 거침없이 떠났던 사람이 있었다. 박제가!
이번 시즌 동고동락에서 박제가를 다시 만났다. 『연암집』을 읽으며 상상했던 박제가와는 사뭇 달랐다. 『연암집』에서는, 그저 양기 넘치는 청년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의 글을 직접 읽어보니 단호하고 무게감은 있지만, 힘 있는 사람이었다. 앞뒤모르고 달리는 청년이 아니라 매우 논리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었다.
『북학의』를 보면 더욱 그렇다. 중국의 수레, 농사기술, 기와, 붓, 과거제도 등을 아주 세심하게 관찰하고, 이를 왜 배워야 하는지 써놓았다. “그는 농잠農蠶, 목축牧畜, 성곽城郭, 궁실宮室, 주거舟車로부터 기와, 대자리, 붓, 자(尺) 등을 만드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눈으로 헤아리고 마음으로 비교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물어보았고,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배웠다.”(같은 책, 67쪽) 연암의 증언이다. 사실 연암의 『열하일기』보다 훨씬 더 자세하고 절절하다. 수레나 농사기술을 말하는 데, 절절할 게 뭐가 있을까?
『북학의』를 읽다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안타까움과 답답함. 그것을 넘어선 울분이 그의 글에 담겨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치스러운 것보다 소박한 것이 낫다며, 태어난 대로 살아가는 것을 예禮라 생각한다. 어찌 보면 지금의 삶을 긍정하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헌데 박제가가 보기에 이런 모습은 ‘배우지 않는 것’이다. 나무라는 게 아니라 배우면 삶이 나아지고,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데, 그걸 하지 않으니 답답한 것이다. 산이 많다며 수레를 지레 포기하지 말고 방법을 찾으면 될 일 이라고 외친다. 수레 축의 크기를 통일하면 도로에 수레길이 생기니 짐을 나르는 데 훨씬 수월해진다. 농사를 지을 때도 마구잡이로 씨앗을 뿌리는 게 아니라 적당히 간격을 두고 심으면 그늘이 생기지 않아 잘 자란다. 조금만 배우면 삶이 훨씬 나아질 텐데. 그래야 좀 더 사람답게 살 텐데!
박제가는 단지 문물이 좋아서, 신문물이니 들이자는 것이 아니었다. (‘중국빠’였으니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백성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랐다. 당시 조선백성의 삶은 생각보다 힘들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옷이 없어 발가벗고 다니고, 지푸라기를 이불로 삼을 정도였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힘들다 생각했을 수 있다. 지금도 이런 얘기를 하지 않는가. 먹고 살기 힘든데, 무슨 공부냐고. 박제가는 이 지점에서 조금만 힘을 내서 배우면, 좀 더 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울분은 백성의 삶의 모습에서 나온 것이었다. 백성들은 이렇게 살고 있는데, 선비들은 오랑캐에게는 배울 것이 없다고 말한다. 박제가가 품었던 답답함이 이해가 된다.
조선의 상황과 박제가를 알고, 연암이 쓴 「북학의서」를 다시 보면 박제가에게 ‘배움’은 단순히 알아가고 익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그에게 배움은 백성들의 생존, 그리고 자신의 존재(선비로서 어떻게 살 것인지)와 연결된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배우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연암의 이용후생(利用厚生)을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는 문물을 들여 백성의 일상을 이롭게 하자는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연암도 박제가와 같은 맥락 속에서 이용후생(利用厚生)을 말했을 것이다. 박제가를 만나면서 연암의 이용후생(利用厚生)도 나에게 새롭게 살아난 느낌이다. 삶의 편리성만을 좇는 지금과 단순하게 비교하면 안 된다. 당시의 기술과 편리는 삶에 필수적인 것이다. 배움은 백성에게도, 선비에게도 생존인 것이다.
글_원자연(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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