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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796

고정된 용도가 없다는 것 고정된 용도가 없다는 것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대부분의 물건이 용도가 정해져 있다. 가령 책이라면 읽거나 냄비 받침으로 쓰거나 정도다. 그러나 아이들의 세계에선 용도에 제한이 없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무한한 쓰임을 얻는다. 우리집에 꽤 오랫동안 있었지만 '그림 그리기'라는 용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던, 색연필이 건축물의 소재가 되었다. 더 어릴 때는 혹시나 다칠까봐서 꺼내주지 않았던, 조금 뾰족한 색연필을 주었더니 그림은 안 그리고 탑을 쌓아 올린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책은 까꿍놀이용, 냄비는 머리에 쓰는 용도, 도미노 블럭은 바닥에 쏟는 용도.... 베르그송이나 들뢰즈가 순수생성이라는 개념을 창안할 때도 이 녀석들을 참고한게 틀림없지 싶다. 그리고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 2019. 12. 27.
아빠의 장난, 딸의 장난 아빠의 장난, 딸의 장난 아빠는,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다. 보름만 있으면 한국 나이 마흔이 되는 이 시점에 와서도, 매일매일 장난을 친다. 딸에게도 치고, 아내에게도 치고, 자기 자신에게도 친다. 정말이지 이 아빠는 장난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그나마 나이를 이만큼 먹어서 때와 장소는 가리게 되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때도 없고 장소도 없었다. 인과응보라고 했던가. 응분의 댓가 따위 결코 나에겐 오지 않으리라 여겼지만, 자식이 생길 줄이야. 내 자식은 아빠만큼 장난을 친다. 괜히 와서 설거지하는 아빠의 엉덩이를 두들기거나, 화장용 붓 같은 걸 가지고 와서 간지럼을 태우거나, 소파에 누워있는 아빠의 콧구멍에 손가락을 집어 넣는다거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장난을 걸어온다. 며칠 전엔 크래커를 먹.. 2019. 12. 20.
[연암을만나다] 눈구멍이나 귓구멍에 숨어보겠는가 눈구멍이나 귓구멍에 숨어보겠는가 몇 달 전, 나는 매일 고민을 했다. 퇴근 후 연구실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적당히 일했을 때는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연구실로 향했지만, 낮 동안 일에 시달렸을 때는 좀 쉬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공부방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좋기도 했지만… 왠지 사람을 만나는 게 피곤한 날도 있었다. 하지만 난 결국 잠깐을 들르더라도 최대한 연구실에 가기로 했다. 그 이유는 집에 있는 내가 아~주 맘에 들지 않아서였다. 퇴근 후 나는 쉰다는 핑계로 집에 들어가서 과자 한 봉지를 뜯으며, 망상과 영상의 바다에서 수영을 했다. 그러다 보면 금세 10시~11시가 되었다. 그럴수록 더 피곤했고, 기분도 더 다운되었다. ‘차라리 그냥 연구실에 갈걸.’ 후회만 남았다. 재밌지도 않고 유쾌하지도 않은.. 2019. 12. 19.
[천의고원읽기] 파괴하고 다시 재건하고 파괴하고 다시 재건하고 평균수명이 약 90세라고 가정했을 때, 나는 이제 겨우 삼 분의 일을 살았다. 초, 중,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했지만 공부가 영~ 적성에 맞지 않았던 터라 대학은 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마냥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친구들이 대학에 다니는 동안 나는 인력개발원이라는 학원에서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기술을 배웠다.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군복무까지 해결(!)하고 20대 초반을 마무리했다. 20대 중반부터는 본격적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고,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며 현 직장에 정착한 지 어느덧 7년을 넘어가고 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소위 말해 ‘꿈의 직장’이다. 8시 30분 정각에 출근하여 5시 30분이면 칼같이 퇴근한다. 친구들이 공무원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상사와의 불.. 2019.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