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잘 모르겠지만 왠지 끌리는, 노자(老子)의 매력!

노자의 매력



지난 주 토요일, 노자를 원문으로 읽는 ‘토요서당’이 시작되었다. 도덕책(윤리책?)과 코에이사에서 나온 삼국지 시리즈(PC 게임^^;)에서 스쳐지나갔던 『노자』를 직접 읽게 될 줄은 몰랐다. 예전에는 한자가 정말 싫었다. 아는 한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천간(天干)과 지지(地支) 22글자도 최근에 외웠으니, 이정도면 한자 문맹이라고 봐도 충분하지 않은가. 이랬던 내가 한자에 관심을 갖게 되고, 심지어 원문으로 읽게 되었다는 점이 정말 놀랍다. (아무래도 전생의 은덕이 좀 있는듯! ㅋㅋ)


노자(老子)는 그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실존 인물인지 허구의 인물인지도 논쟁이 많다. 그런데 노자는 현명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늙은 선생을 의미하는 일반 명사이기도 하다. (이 얘기를 들으니 문득 <스타워즈>의 요다와 <쿵푸팬더>의 마스터 우그웨이가 떠오른다.) 우야튼, 우리에게는 원한다면 직접 노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것 또한 엄청난 행운 아닐까. ^^


게임 속 보물 중에 <노자>와 <장자>가 있었다! 이젠 현실에서 이 보물~ <노자>를 만난다! >_<



노자의 『도덕경』은 해설서가 무척 많다. 그런데 해석이 다 다르다고 한다. 이는 주석의 역사가 길기 때문이기도 하고, 노자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도는 뭐다~"라는 식으로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읽는 사람마다 그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셈이다. 주석가로 유명한 사람이 바로 왕필이다. 왕필은 조조와 동시대 인물로 위나라 출신이기도 하다. 16세에 『도덕경』의 주석을 달고 21세에는 『주역』의 주석을 달았다고 한다. 천재들이 대개 그러하듯 왕필도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주석은 오랜 시간동안 길라잡이 역할을 해왔다. 우리가 시중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노자 해설본들에 왕필의 숨결이 담겨 있다고 하니, 어떤 의미에서 그는 아직도 살아있는 셈이다.


그러던 1973년, 비단에 쓰여진 『노자』가 발견되었다. (이 발견으로 학계에서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고 한다.) 20년 후인 1993년에는 대나무에 쓰인 죽간본이 또 발견되었다. 새롭게 발견된 이 두 버전이 모두 적용된 것이 바로 우리가 우응순 선생님과 함께 읽을, 진고응 선생님 버전이다. 이전에 나온 『도덕경』과 글자가 다른 부분도 있다고 하니, 이점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노자의 세계 속으로 출발해보자!


『도덕경』이라는 의미는 도(道)와 덕(德)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오늘은 책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야기를 살펴보겠다. 무척 유명하고 자주 인용되는 말이라고 하니 이번 기회에 외워두는 것도 좋겠다. 노자의 이야기를 한번에 이해하기는 쉽지 않으니 항상 가까이 두고, 외우고, 읽는 수밖에! ^^



01.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無, 名天地之始, 有, 名萬物之母. 故常無, 欲以觀其妙; 常有, 欲以觀其徼.

무 명천지지시 유 명만물지모. 고상무 육이관기묘 상유 육이관기교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차양자 동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교)를 제외하고는 자주 봤던 글자들이다. 하지만 해석은 잘 안 되는...게 바로 노자의 매력이라고 한다. ^^ 『노자』나 『논어』등에는 개념어들이 다 '도', '인' 처럼 한 글자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이 춘추시대 스타일이라는 점~ 여튼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은 "말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고 이름 지을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도는 세 가지의 뜻이 있다. 첫번째는 우주의 본체, 형이상학적 의미의 도이고 두번째는 운동의 규칙, 운동성의 의미이고 세번째는 덕(德)이라는 의미이다. 세번째의 도는 우리 눈앞에, 현실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첫번째와 두번째의 도가 존재론적인 개념이라면 세번째의 도는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개념인 셈이다. 고로 이 문장에서 '도'와 '덕'은 다르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도'라면 그것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을 '덕'으로 보기 때문이다.


공자가 말하는 '도'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고 한다. 공자의 '도'는 치국지도(治國之道)와 같은 표현을 떠올리면 되는데, 나라를 다스리는 등 현실적인 층위에서의 개념이고, 공자가 말하는 '덕'은 성인의 개인적인 인격을 의미한다. 글자는 같지만 노자와 공자가 다른 맥락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 느낌적으로도 도가와 유가의 스케일이 좀 다르다는 느낌이 온다. 후후;; 그래서인지 『장자』에서는 공자가 많은 까임(!)을 당한다.


無, 名天地之始는 "무는 천지의 시작을 이름하는 것이다"로 해석할 수 있으며 여기서의 무는 '도'이다. 무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에너지가 가득 차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有, 名萬物之母는 "유는 만물의 어머니이다"라는 뜻이다. 노자에서는 '여성성'이 무척 중요한데, 생성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이 문장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도의 속성이 무이기도 하고, 유이기도 한 것! 도에는 '있음'도 '없음'도 포함되어 있다.


故常無, 欲以觀其妙는 "그러므로 항상 있는 무로써 천지에 존재하는 도의 오묘함을 보려고 해야한다"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항상'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한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常有, 欲以觀其徼는 "항상 있는 유로써 천지에 존재하는 도의 끝을 보려고  해야한다"로 해석할 수 있다. 를 통해 (徼)을 봐야 한다는 뜻이다. 즉, 우리가 가진 유로써 세상을 넓게 보라는 의미가 담긴 문장이다.


此兩者, 同出而異名는 "이 두 가지는 같은 데서 나왔지만 이름만 다를 뿐"으로 여기서 두 가지는 무와 유이다. 같은 데란 무엇일까? 도에서 나왔다는 의미이다.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는 "두 가지를 함께 일컬으면 현"이다. 여기서의 현(玄)은 캄캄하거나 검다는 뜻이 아니라 오묘하다[妙]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도가(道家)를 현가(玄家)라고 부르기도 한다. 玄之又玄는 "오묘하고도 또 오묘하며"라는 뜻이고 衆妙之門는 "많은 묘한 것들이 나오는 문이다"로 해석하되 여기서의 중묘는 '도'라는 의미이다. 뭔가 설명을 듣는데도 확 잡히지 않는 이 오묘함~ 그래서 한 번만에 읽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첫번째 편을 읽고 가장 인상에 남은 글자가 바로 현(玄)이다. 그동안은 하늘 천(天), 따지(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 『천자문』에 나오는 세 번째 글자로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오묘한 뜻이 있었다니. ^^


심지어 자주 등장하는 글자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꼭 이 의미를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오늘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6편에서는 현빈지문(玄牝之門)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여기서의 현빈은 아쉽게도 우리가 아는 김태평씨가 아니다. 하지만 어쩐지 친근하게 느껴지는 건 그의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일까? 여하튼 중요한 것은 앞으로 우리는 노자가 말하는 현묘함을 우리 나름대로 부딪치며 만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도덕경』에서 펼쳐질 것인지 기대된다. 다른 건 다 까먹어도 검을 현(玄)을 '까맣다'로 해석하진 말자. '오묘하다'로 해석하기! 그것이 오늘 글에서 꼭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말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고 이름 지을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無, 名天地之始, 有, 名萬物之母. 故常無, 欲以觀其妙; 常有, 欲以觀其徼.

무 명천지지시 유 명만물지모. 고상무 육이관기묘 상유 육이관기교

무는 천지의 시작을 이름하는 것이다 유는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항상 있는 무로써 천지에 존재하는 도의 오묘함을 보려고 해야한다

항상 있는 유로써 천지에 존재하는 도의 끝을 보려고 해야한다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차양자 동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이 두 가지는 같은 데서 나왔지만 이름만 다를 뿐 두 가지를 함께 일컬으면 현이며

오묘하고도 또 오묘하며 많은 묘한 것들이 나오는 문이다.



마케터 M


어쩌면 '현'이 이토록 강렬하게 기억나는 건 현빈의 사진을 넣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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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우보당 2014.02.20 10:27 답글 | 수정/삭제 | ADDR

    천부경을 보는 듯 하네요

    • 북드라망 2014.02.21 09:44 신고 수정/삭제

      『천부경』을 찾아보니 전문이 81자로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이 나오는 경전 중의 하나라고 하네요.
      『천부경』이 『노자』의 영향을 받았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도 여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 무관왕 2014.03.06 04:56 답글 | 수정/삭제 | ADDR

    육갑(六甲)질도 가지가지
    우리가 흔히 병신(丙申) 육갑(六甲)질이라 하면
    대뜸 쌍욕이라거나 고상하게 「육두문자(六頭文字)」 쓴다고들 하거나 할 터이지만

    「육갑(六甲)질」이란
    마치 머리가 여섯 개나 달린 것처럼 혼란스러운 짓거리를 일삼는 바를 일컫는 바이고
    「육두문자(六頭文字)」로서도 마찬가지로서
    머리를 여섯 개나 달아준 「六書之法의 상형문자ㆍ가차문자ㆍ지사문자ㆍ회의문자ㆍ전주문자ㆍ해성문자」로서 만들어졌다 하는
    육서지법의 육두문자에서 전도병합된 이두문자의 漢文漢字를 칭하는 바이기에 육서지법의 漢字사전으로서 漢字를 배우면 배울수록 육갑(六甲)질을 배우는 바와 같고 결국에는 병신(丙申⇒柄臣⇒病身) 육갑(六甲)질밖에 할 일이 없게 되는 줄도 모르면서 오히려 쌍욕이라고 되받아침으로서 그 순간은 모면할 수는 있을지언정 이미 漢字에 눈과 귀가 멀어버렸다는 사실은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하게 하는 그것이 바로 漢字의 마력이자 육서지법의 마력인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으로서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道可道非常道/도가도비상도
    육갑 ◇ 도(道)라고 할 수 있는 도는 널리 알려진 도가 아니고,
    직역 ◇ 道다운 道는 常道가 아니고 (도교의 道만이 常道)

    名可名非常名/명가명비상명
    육갑 ◇ 명(名)이라 할 수 있는 명도 널리 알려진 명이 아니다.
    직역 ◇ 名다운 名은 常名이 아니며 (도교의 名만이 常名)

    無名天地之始/무명천지지시
    육갑 ◇ 천지의 시초에는 명(名)이란 것이 없었고,
    직역 ◇ 無名은 天地의 시작이고 (無名에서 有名을 창출하는 바가 곧 도교의 常名)

    有名萬物之母/유명만물지모
    육갑 ◇ 명(名)이 있으면서 만물이 생겼다.
    직역 ◇ 有名은 만물의 근본(母)이다 (도교의 常名이 곧 만물의 어미(여와)이자 창조자)


    故常無欲以觀其妙/고상무욕이관기묘
    육갑 ◇ 그러므로 욕심이 없으면 그 것의 묘(妙)함을 보고,
    직역 ◇ 그럼으로 무욕의 常道라면 그로서의 묘함을 볼수 있고

    常有欲以觀其徼/상유욕이관기요
    육갑 ◇ 욕심을 가지면 그 것의 움직임(요)을 보게 된다.
    직역 ◇ 유욕의 常道라면 그로서의 관념을 볼수 있으되

    此兩者同出而異名同謂之玄/차량자동출이이명동위지현
    육갑 ◇ 이 둘은 같은 곳에서 나왔고, 이름을 달리 하지만, 모두 그윽하다 할만하다.
    직역 ◇ 이와 같은 두 갈래로 갈라서는 常道로서는 同出로서 常名(有欲의 常道, 無欲의 常道)은 달리하지만 오묘하며

    玄之又玄衆妙之門/현지우현중묘지문
    육갑 ◇ 그윽하고 또 그윽한 중묘의 것, 그 것은 모든 묘(妙)의 문이다.
    직역 ◇ 오묘하고 모요한 衆妙의 門에 들어서는 지름길이 곧 常道(玄妙의 道)이자 常名(衆妙의 門)이며 도교(노자)의 도덕경이다


    이러한
    도덕경 등에서 일컫는
    玄妙之道로서는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지는 음양이치를 일컫는 바이고
    衆妙之門로서는 음양이치의 음양오행과 음양팔괘로서 줄줄이 구축되어버린 무주공산의 인간세상에 들어서는 두 갈래의 門을 일컫는 바와 더불어
    이와 똑같이 구축되어진 육서지법의 漢字어법에 따라서 반절조합이 거듭되는 漢字조합으로서 줄줄이 꿰어맞춘 도덕경 등등 경자돌림의 종교경전이나 제도경전에 줄줄이 빨려들어 가서 두 번 다시 헤어나오지 못하는 바를 뜻하는 즉

    반드시 두 갈래로 갈라서서 끝없이 뒤엉키는
    음양의 눈과 입이나
    漢字의 눈과 입으로서 바꾸어 달고 줄줄이 다시 태어나는 줄도 모르는 식자우환들의 육갑질이나 병신육갑질밖에 할일이 없는 것도 모르는 그것이 바로 漢字에 눈과 귀가 멀어버린 줄도 모르는 식자우환집단이나 벼슬아치집단에서 줄줄이 뱉어놓았던 도덕경 등등의 漢字풀이를 일컬어 해석이라거나 번역이라 하지만
    현대문법으로서도 맞지 않으면서 여러 갈래로 해석되거나 번역이 거듭되는 육갑질에 불과하면서 오히려 멀쩡한 우리말까지 망쳐버리는 주역들이 바로서 식자집단이자 이두집단이었으며 종교집단이었던 것이다

    더욱 간단하게 예들 들자면
    있거나(有) 없거나(無)와
    맞거나(可) 아니거나(非)를 오락가가락 하면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바와 다를바 없는
    무명(無名)은 천지의 시작이라 함은 곧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이고
    유명(有名)은 만물의 어미라 함은 곧 만물을 창조한 창조자가 도교의 상명(常名)으로 둔갑이 거듭되는 바이듯 ,

    이러한
    도교의 상명(常名)으로서는 漢字조합의 칭명부여를 일컫는 바로서
    육서지법의 漢字어법에 따라 무한대로 창출되고 축적이 거듭었던 육서지법의 漢字사전과 더불어 漢書경전이 곧 천지와 만물을 창조한 창조자로서 귀결되는 글자그대로 병신육갑질만을 눈덩이처럼 부풀려놓고서 줄줄이 따라 배우게하고 줄줄이 따라 가르치게 했던 영구불변의 법칙이 곧 음양이치의 현묘지도와 중묘지문이었던 것이다

  • 무관왕 2014.03.06 05:02 답글 | 수정/삭제 | ADDR

    주인장이 오묘하다는 玄이나 妙로서는
    오묘하고 오묘하다는 玄妙로서 조합된 그로서가 중언부언에 해당되는 바이기에
    玄妙之道 또한 중언부언의 법칙을 일컫는 바이면서 그로서의 지름길(道)에 들어서버린 바를 뜻하는 衆妙之門에서 나왔으되 두 갈래로 갈라선다는 無慾의 道와 有慾의 道가 곧 玄妙之道이자 常道라 칭하긴 칭하되

    그 말이 그 말이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빙빙 돌다가 정말로 돌아버리는 정신병의 유전자(DNA)라 해도 과언이 아닌 즉、
    중언부언이 거듭되면서 말꼬리가 말머리를 물고 돌거나 말머리를 집어삼켜버린 말꼬리가 말머리로 둔갑되는 그로서가 곧 常名이 뜻하는 바이자 常道가 뜻하는 바인 것이다

    이러한
    현묘지도나 중묘지문에 빠져들면 죽을떄까지 오묘하고 오묘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도덕경의 노예이거나 漢字어법의 노예로 전락되는 바를 뜻한다

    예컨대
    玄玄非天 蒼蒼非天에서의

    현현비천이라 함은 검고 검은 허공이나 깜깜한 밤하늘(◓)이라 칭하게 되는 즉、空(○)을 두 갈래로 갈라 세운 음양(◐)의 음(●)은 하늘이 아님을 일컫는 바이며
    창창비천이라 함은 푸르고 푸른 창공이나 화창한 낮하늘(◒)이라 칭하게 되는 즉、空(○)을 두 갈래로 갈라 세운 음양(◐)의 양(○)도 하늘이 아님을 거듭 일컫는 바임에도 불구하고

    음양팔괘의 하늘 乾(○)과 땅 坤(●)으로서도 陽(○/빛)과 陰(●/어둠)으로서 뒤엉킨 바에 따라서 낮(◒)과 밤(◓)의 해(日/◑)와 달(月/◐)이라 따라 배우면 배울수록 저절로 음양의 눈과 입으로 바꾸어 달고 줄줄이 다시 태어나는 줄도 모르는 음양무리의 음양인이나 양음인 아니면 곰족이나 범족도 아니면 漢族이나 蠻族도 아니라면 모계족이나 부계족 등으로 갈라서게 되는 바를 미루어보듯

    반드시 두갈래로 갈라세워놓고서 끝없이 대립하게 만들어버린 것이 바로 음양이치의 玄妙之道와 衆妙之門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도덕경 등등에 이르기까지 육서지법의 漢字어법에 따라서 줄줄이 꿰어맞추면서 집대성을 이루어버린 육서지법의 漢字어법 또한 음양이치의 玄妙之道와 衆妙之門으로부터 줄줄이 불거진 바이기에
    반드시 두갈래로 갈라세워놓고서 끝없는 사분오열과 이합집산만이 거듭되는 줄도 모르는
    여러 갈래로 해석되어진 해설서나 번역본으로선 참고를 하긴 하되、

    漢字풀이로서의 첨언첨삭을 거듭하는바가 아닌,
    있는 그대로 직역을 거듭하다보면 버릴것은 버리고 취할것은 취하는 바를 판단할수 있게 되는 그로서가 곧 옳고 그름을 판단할수 눈높이가 구해진거나 다름 없는 바를 뜻하기에
    노자의 도덕경 등등으로서는 말쓰레기 제조공장에 불과함을 알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글자그대로
    아무짝에도 쓸데없을뿐만 아니라
    음양이치의 중묘지문으로 끌어들여 눈과 귀를 멀게하고 영구히 거느리게 되는 유교집단의 사서오경이나 도교의 도덕경 등으로서는 중국의 자랑거리인 반면 우리들에겐 중국의 영원한 속방으로 전락되는 지름길과 같았던 것이다

    따라서
    무주공산의 인간세상으로 굴러 떨어진 줄도 모르는 인간세상에서 믿을 놈이란 존재하지 않음과 같은 그 중에서 정치인집단이 제일순위이듯, 정치인집단에 이르기까지 식자집단과 종교집단을 거친 다음이 이두집단(정치인집단)이므로
    그들의 말이 옳거나 그른지부터 판단하는 훈련이야말로 제일의 학습이며 그들이 펴낸 책이나 글도 마찬가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