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의 비법
보경(남산강학원)
기억난다. 올해 봄, 몸을 축 늘어뜨린 채 방문 앞에 기대어 서 있던 내 모습이. 몸에 힘이 없어서 집에 일찍 들어온 날이었다. 그때 내가 느꼈던 두려움과 서러움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봄이었다. 만물에 새싹이 피어오르는 계절이라, 봄바람에 덩달아 나도 신이 났다. 책도 많이 읽고 싶고, 세미나도 이것저것 신청하고, 여행도 자주 다니고 싶었다. 더군다나 몇 년 전부터 안 좋았던 몸이, 해가 지날수록 나아지고 있었다. “나 다시 예전처럼 건강하잖아!” 마음이 앞서, 며칠 동안 무리했더니 바로 몸에 신호가 왔다. 몸에 힘이 없어, 책상에 앉아 있기 힘들었다. 집으로 일찍 귀가했다.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몸뚱이를 보니, 서러움이 밀려왔다.
3-4년 전부터, 몸이 안 좋아 일상을 유지하는 게 힘들었다. 치료를 할 정도의 병에 걸린 게 아니었는데,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힘이 없어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평생 정형외과, 치과를 제외하곤 병원에 가 본 적 없던 나는, 내가 건강하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올해 내가 경험한 가장 큰 두려움은 ‘몸과 관련한 사건들’이다. 몸이 피곤하거나 힘들면, 두려움과 서러움이 훅하고 올라온다. “몸이 안 좋아지면 어떡하지?” “20대 땐 이 정도 활동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지금 왜 이렇게 됐을까” “몸만 건강했더라면…” 마음 한켠에는 몸에 대한 염려가 늘상 자리하고 있다.
그런던 차, 늦가을, 『한뼘 양생』을 만났다. 책 부제는 나이듦과 돌봄, 죽음과 공부다. 책을 읽기 전까지도 나이듦과 돌봄, 죽음은 아직 내 삶에서 고민할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양생’이란 제목을 보곤, 건강한 몸에 대한 비법(?)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책을 펼쳤다. 문탁 선생님이 궁금하기도 했다. 책을 읽자마자, 첫머리, 프롤로그에서 놀랐다.
가만히 보니 어머니의 우울증은 어머니의 자아 이상(理想)이 주름 없는 젊음, 아프지 않은 몸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더군요. 우리 사회에서는 젊음과 건강이 너무 강력한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늙는다는 것은 결여와 비참으로 경험될 수밖에 없죠. (이희경, 『한뼘 양생』, 북드라망, 10쪽)
책에서는 모든 생명은 생로병사의 리듬을 겪어야 하는 존재임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상태라는 ’정상성‘을 삶의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손상을 결여와 비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9쪽) 어머니의 모습에서 내가 보였다. 내 두려움의 원천도 ’건강‘을 ’아프지 않은 몸‘에 놓고 있기에 나오는 감정이었다. 나에게 아프다는 건, 결여된 것이다.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지구상에 생로병사를 피할 수 있는 존재가 어디 있으랴! ’완전한 상태의 몸‘을 건강의 기준으로 두는 한, 늙음은 물론, 병들어가는 내 몸을 끊임없이 부정하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몸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나는 언제나 몸이 아니라 정신, 이념, 의지가 나인 것처럼 살았다. 하지만 틀렸다. 몸이 나에게 협조하지 않는 순간이 벼락처럼 온 후 나는 비로소 몸이 나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26쪽) 나 또한 마음과 정신이 우선이고, 몸은 거기에 따라오는 수단으로 생각했다. 마음 따로, 몸 따로라 생각했기에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며 서러워했다. 몸과 정신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 이념, 욕망은 땅이라는 현장에서 드러난다. 몸은 인식의 근거이고, 권력관계의 현장인 셈이다.
저자는 “건강해지라는 사회적 명령, 관리하라는 자본의 유혹에 맞서”(10쪽)는 새로운 삶의 배치와 새로운 용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명 ‘양생’하는 삶! 양생은 스스로 삶을 돌보고 가꾸는 기예이다. 저자가 보여 준 양생하는 삶은 매일 아침 운동을 하고, 건강 보조제를 챙겨 먹는 삶도 아니고, 거창한 명분이 있는 삶도 아니다. 동네 친구들과 <나이듦 연구소>를 만들어 함께 공부하고, 아픈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삶. 비인간 동물을 생각하며 채식을 다짐하고, 밀양 투쟁과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에 연대하는 삶이다. 새로운 삶의 배치는, 양생하는 삶은 몸이라는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과 지극히 관계 맺으며 지내는 삶이었다.
양생의 비법은 지금, 여기. 딱 한 뼘 거리에 있는 생명을 지극한 마음으로 대하며 사는 것. 나이듦에 대해, 변해가는 몸에 대해, 생명을 살피고 돌보면서, “타자와 함께 지극히 평범하게 존재하다가 때가 되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이다. 『한뼘 양생』에서 양생하는 비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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