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한뼘 양생』 리뷰 - 나도 사는 동안 힘껏 살아보겠다

by 북드라망 2024. 11. 13.

나도 사는 동안 힘껏 살아보겠다

진희수(규문)



오래전에 수강 중이던 한 과정에서 일리치 강의를 하시는 선생님을 뵌 적이 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한 외모에 깜짝 놀랐었는데,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 시작했다는 말씀에서 그 무게가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난 게 아닐까라고 짐작만 했었다. 그때 어머니들과 함께 자기 삶을 이야기로 만드는 작업(?)을 하신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던 것 같다. 막연하게나마 우리 엄마에게도 저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고, 내가 그럴 수 있는 딸이기를 소망했다. 그 10년을 기록한 선생님의 책이 드디어 나왔다. 책에는 노화와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살면서 겪는 다양한 모습들이 과하지 않게 그렇지만 담담하고 유쾌하게 그려져 있다.


이 책은 곳곳에서 공감을 유발한다. 특히나 오십 중반을 넘어 ‘내 몸과 분투 중’인 나는 한발 앞선 선생님이 ‘시네필’이지만 영화관에서의 졸 때가 있고, 일어설 때면 저절로 곡소리가 난다는 대목에서 그랬다. 그건 위로와 비슷하기도 한데, 그 위로는 ‘다들 그렇게 살아’라는 비관이나 혹은 ‘저렇게 따라 하면 되겠어!’라는 해법이기보다 비슷한 아픔을 겪어가고 겪을 수밖에 없지만 선생님이 보여주는 적나라한 모습이 그다지 서글프지 않고, 기쁘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겪어낼 만하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강요도 아니고 그대로 일상을 보여주며 공부해 온 것과 연결해 나가는 글들은 공부를 노년의 필살기로 삼아 첫발을 내디딘 나에게 다르게 겪는 샘플들을 쫘악 펼쳐놓고 보여주는 기분이 들었다. 


이 글들은 때때로 한 신문에서 먼저 보기도 했다. 사설 농장에서 나온 사순이가 1시간 만에 발견 즉시 사살되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인간이 동물과 관계 맺는 일방적인 방식에 대해 다른 방법은 잘 모르면서 화만 나 있었다. 얼마 후 선생님의 칼럼에서 위급한 상태의 동물을 보호하는 ‘생크추어리’라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동물권에 대해서도, ‘종간 상호의존성’에 대해서도 처음 생각하게 되었다. 또, 선생님이 아침 루틴을 실행하는 이야기와 함께 소개된 『향모를 땋으며』란 책은 친구들이랑 같이 읽으며 아침을 시작하기도 했다. 선생님의 글로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되고, 생각하지 못했던 관계들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별히 감동한 대목은 아픈 친구를 위한 서포터즈의 구성이었다. 갑자기 닥친 누군가의 질병을 친구들이 함께 겪는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틀림없는데, 그 선한 행위에 들어있는 예상치 못했던 일들, ‘돌봄 과정에서 벌어지는 불편한 감정을 성찰하게 만들었(81쪽)’다는 대목에서 울컥했다. 돌아가시기 전 대장암으로 치료 중인 엄마를 집으로 모시고 왔을 때, 아픈 엄마의 시중을 다 들면서도 엄마의 발에서 떨어지는 각질이 이불 위에 수북한 게 그렇게 싫고 불편했던 기억과 아픈 엄마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에 대해 죄책감을 가졌던 일이 동시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돌봄은 선한 마음으로 시작해도 아름답게만 채색되는 게 아니라 돌봄을 통해 자신의 욕망이 천착하는 지점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감정이 우리를 성숙(81쪽)’하게 했다는 문장에서 나도 그런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돌봄’을 우정의 새 용법으로 발명한 그 친구들 모두에게 크게 박수를 쳐 드리고 싶다. 


속수무책으로 닥쳐오는 늙음과 병듦 앞에서 돌봐줄 친구들이 있다는 것만큼 위로가 되는 게 또 있을까? 아주 많이 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젊지도 않은 내가 공부공동체에서 본격적으로 함께 살면서 계속 관심이 가는 주제는 어떻게 배움을 토대로 잘 살 것인가? 잘 늙어갈 것인가? 이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친구들과 함께 ‘노년’에 대해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해졌다. 그래서 규문에서도 몸과 늙음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세미나를 시작하려고 한다. 선생님이 싸인 글로 적어주신 ‘같이 잘 늙어봅시다!’라는 말을 지금 내 자리에서 실천해 보는 거다. ‘결과는 늘 의도를 배반하고, 호의는 늘 타자 앞에서 자빠지지만 그런 어긋남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결코 버리거나 외면할 수 없이 함께 살아가야(216쪽)’ 함을 온몸으로 배워보려 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