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루크레티우스를 만나다』 리뷰 ⑥
근원에 대한 탐구, 지복(至福)에 이르는 길
문빈(규문)
『청년, 루크레티우스를 만나다』의 저자는 20대 청년이다. 그는 매일 아침 소란스럽게 아침을 맞이하고, 온갖 상념과 근심들로 머릿속이 시끄럽고, 심심할 때는 손흥민의 축구 영상을 즐겨보며, 어떤 날에는 달달한 연애를 꿈꾸고, 또 다른 날에는 글을 유려하게 쓰고 싶은 욕망이 일렁인다. 그렇게 온갖 욕망과 감정의 물결에 출렁이는 하루를 보내는 평범한 청년이다. 다른 청년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살아오던 그가 대학-취업의 길을 떠나 새로운 공부의 길로 방향을 전환하고, 그 길 위에서 루크레티우스를 만나게 된 건 ‘우연한 계기’들 덕분이었다. 이 우연한 마주침은 그를 질문하도록 이끈다. “어떻게 잘(=올바르게=아름답게=행복하게) 살 것인가?”
어떻게 행복하게 살 것인가? 이 질문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청년의 시기는 불안정하기에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내게 부족해 보이는 걸 마구 채워 넣고, 몸에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관계에서의 지혜, 책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 지치지 않는 강인한 체력 등등. 그런데 루크레티우스는 지복(至福)에 이르기 위해 우선 ‘사물의 본성’에 대한 근원적 탐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지점이 새로웠고, 놀라웠다. 근원적 탐구라고 하면 우리의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삶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질문이 들었다. 저자는 우리에게 지복에 이르는 길과 근원의 탐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찬찬히 풀어준다.
거짓된 무한으로부터 해방
루크레티우스는 우리가 왜 슬픔과 고통을 겪게 되는지 그 근본 원인을 진단한다. 책에 소개된 여러 원인 중 나는 내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한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그것은 바로 ‘거짓된 무한’에 대한 환각이다. 루크레티우스는 우리가 평소에 무한한 걸 끊임없이 상상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이 우리를 슬픔에 빠지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를 가장 슬프게 그리고 괴롭게 만드는 것은 ‘쾌락의 무한성’과 ‘고통의 무한성’이다. 지금 내가 경험하는 쾌락이 미래에도 반복될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지금 내가 겪는 고통이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쾌락이면 쾌락, 고통이면 고통 그것이 무한히 반복될 것만 같은 환상, 공감되지 않는가?
지금 나에게 있어서 이러한 ‘거짓된 무한’은 편안하고, 즐거운 시절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고, 수고롭고 괴로운 시절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람들과 평화롭게 두루 잘 지내며, 읽고 쓰는 일도, 맡은 업무도 원활하게 진행되는 상황은 언제나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이 내일도, 그다음 날에도 계속. 계속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러한 바람이 큰 만큼 반대되는 상황을 만나게 되는 날이면, 번뇌도 비례해서 커지는 것만 같다.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갈등을 겪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고통과 괴로움을 겪는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나 계속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집어삼키고, 두려움과 슬픔에 휩싸여 하루를 무기력하게 마치는 경우도 많다. 우리 삶은 이렇게 쾌락과 고통 사이를 오고 간다. 우리가 매일 걱정에 빠지고, 불안해하는 근본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루크레티우스는 이러한 괴로움의 뿌리를 해체하기 위해서 바로, 근원에 대한 탐구가 필요했다. 루크레티우스는 우주의 근본 원리를 원자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이해한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세계는 원자들과 허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인데, 그 두 가지가 뒤섞이는 운동으로 모든 사물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원자론은 우주의 생성과 변화의 원리를 설명하는 데에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원자론을 통해 이 우주상에는 무한히 지속되는 게 없음을, 그러한 것이 있다는 생각은 환상임을 밝힐 수 있었다. 참된 무한은 오직 원자들, 허공, 그것들의 운동뿐이다. 원자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우리 삶을 불행으로 이끄는 거짓된 무한에 집착하지 않도록 해준다. 그것은 무한히 계속될 것만 같은 고통과 괴로움에 사로잡히거나, 지배되지 않을 수 있는 소중한 지혜다. 이렇게 원자로 세상을 보게 되면 삶을 좀 더 폭넓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러한 시선은 좀 더 의연하고 당당한 태도로 변화를 맞이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이러한 태도 변화가 바로 원자가 우리에게 주는 해방이고, 지복(至福)에 이르게 해주는 길이 아닐까.
근원에 대한 탐구로!
나는 책을 읽기 전에는 행복하고, 잘 살기 위해서 ‘사물의 본성’에 대한 근원적 탐구를 해야 한다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행복은 지금 당장 무언가를 성취해야 하는 것으로 느껴졌고, 근원을 탐구하는 일은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루크레티우스의 말처럼 ‘잘 존재함(well-being)’을 위해서는 반드시 근원적 탐구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편견과 오해와 기대와 실망감은 이 근원적인 환상 속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뿌리에서부터 이 세상을 완전히 새롭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힘이 필요하다. 『청년, 루크레티우스를 만나다』는 우리로 하여금 근원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의 몸과 마음의 구성, 이 세계와 우주의 운동방식을 질문하고 공부하도록 이끈다. 나는 우리가 삶에서 왜 불안함을 느끼고, 슬픔을 경험하는지, 그리고 충만하고 기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신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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