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 『함께 살 수 있을까』 리뷰
- 잘 듣는 마음, 지구 위의 통신원들
글_권경덕(문탁네트워크)
리뷰, 혹은 목격담
『함께 살 수 있을까』의 리뷰를 쓰기로 하고, 한동안은 몹시 난감했다. 이 책에 대해 말하려고 할 때 '자, 책의 범위는 여기부터 저기까지고요...'라고 경계를 설정하거나, '책의 저자는 누구이고, 장르는 무엇이고, 이러 이러한 내용의 책입니다'라고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함께 살 수 있을까』는 책이지만 책이 아닌 것 같았다. 책인 이유는, 문탁네트워크 청년 고은 님이 다섯 명의 인터뷰이를 만나 쓴 인터뷰집이고, 북드라망 출판사가 제작하여 인문학 공동체와 서점에 유통되는 실물 책이기 때문이다. 책이 아닌 것 같은 이유는, 책 밖의 너무도 많은 이야기들이 『함께 살 수 있을까』 제작에 관여해왔고, 지금도 변화를 거듭하며 『함께 살 수 있을까』를 새롭게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작점과 끝점을 알 수 없는 책을 어떻게 리뷰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함께 살 수 있을까』는 계속 진행중인 프로젝트이고, 이 책의 출간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프로젝트의 중간 매듭, 잠정적인 경계짓기라고. 내가 쓰는 이 글은 '책 리뷰'라고 적지만, '프로젝트 목격담'으로 읽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생존 이야기
책 서문에서 고은 님은 친구들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으로 아픈 친구들, 호흡이 곤란한 친구들, 자살 시도를 한 친구들 소식을 듣는다. 그럴 때 고은 님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렇지 않은 척 눈물 참기, 같이 책 읽자고 제안하기, 헤어질 때 몸이 부서지게 안아주기 정도밖에 없었다'고 한다. 친구들만의 일은 아니었다. 책과 뉴스에서도 생존의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소식이 종종 들려왔다. "20~30대는 열정과 희망이 있는 나이라고들 하던데 나는 친구의 죽음을, 친구의 친구의 죽음을, 누군가의 친구였을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기 바빴다.“
고은 님도 어느 순간 생존을 고민한다. 취업을 하려고 했을 때였다. <문탁네트워크>와 <길드다>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이질적인 사람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잇속'을 쫓지 않고 신뢰를 쌓아가는 생존 방식을 배웠지만, '잇속'을 쫓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공동체 밖에서의 생존은 또 다른 문제였다. 공동체 안에 머물 수도,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 한동안 곤란한 시기를 보냈다. 삶을 지속하기 위한 새로운 '생존 지혜'를 찾아야했다. 그때 그동안 공동체의 네트워킹 행사나 세미나를 통해 관계를 맺어온 동료들이 생각났다. <무지개신학교>의 오늘 님, <들불>의 구구 님, <우주소년>의 현민 님, <그린오큐파이>의 윤지 님, <새벽이생추어리>의 무모 님. 그들은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모색'하고, '울퉁불퉁한 사회 표면 위에 튀어 오르기보단 그 안으로 침투하는' 사람들이었다. 고은 님은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길어올린 지혜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 지혜가 '나의 친구에게, 나의 친구의 친구에게, 누군가의 친구일 누군가에게 보탬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또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잘 전하는 일’이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 '눈물을 훔치고, 책을 읽자고 제안하고, 꼭 끌어안거나, 멀리서 애도하는 것'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서.
『함께 살 수 있을까』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길 위의 시간들
고은 님은 대학교를 자퇴하고 20대 내내 <문탁네트워크>라는 인문학 공동체에서 공부했다. 중장년 선생님들, 또래 친구들과 함께 인문학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며 10년을 보냈다. 공부는 ‘함께 생활하며 일상의 윤리를 만들고, 마을 활동에 참여하는 것’과 분리되지 않았다. 또 공동체에서의 공부는 무엇이든 '쓰기'로 귀결된다. 발제를 쓰고, 후기를 쓰고, 에세이를 쓰고, 공동체의 일상을 글로 남긴다. 다양한 활동이 쓰기로 연결되지만, 그럼에도 글을 쓰는데 중심이 되는 활동은 '읽기'이다. 책이 없는 인문학 공동체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은 님은 10년 간 읽고 쓰기로 단련된 몸으로, 이제 '듣기'를 고민한다. 인터뷰에서 1차 텍스트는 책이 아니라 인터뷰이의 ‘말’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활동에서의 '쓰기'는 '읽기'만으로는 시작될 수 없다. '말'은 '책'처럼 내가 원하는 장소에 꽂아두거나 휴대할 수 없기 때문에, 말을 들려줄 인터뷰이를 직접 찾아가야 한다. 고은 님은 이제 길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 인터뷰를 한다는 게 길 위에서 엄청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함을 의미하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모든 스케줄과 조건을 인터뷰이에게 맞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밥 시간과 화장실 시간도 그렇습니다. 밥은 얼마나 굶고 화장실은 어찌나 참았던지,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지금은 태어나 첨으로 방광염도 생겼습니다. (5월 4일, 문탁네트워크 문스탁그램 중)
그러다보니 문탁네트워크(용인 수지구)에 머무는 시간은 줄고, 그만큼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시간은 늘었다. 강화도에 사는 인터뷰이를 만나러 갈 땐 바다를 건너야 했고, 이웃 인문학 공동체에서 공부하는 청년들과 선생님들을 인터뷰할 땐 서울 혜화(규문)와 충무로(감이당, 남산강학원, 사이재)까지 강을 건너 이동해야 했다. 『함께 살 수 있을까』에 나오는 다섯 명의 인터뷰이들을 만날 때에도 매번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무모 님을 만나러 <새벽이생추어리>로, 오늘 님을 만나러 <무지개신학교>로, 구구 님을 만나러 구구 님의 단골 카페로, 현민 님을 만나러 서점 <우주소년>으로, 윤지 님을 만나러 윤지 님의 집으로.
듣기의 윤리
바다 건너, 강 건너, 마침내 인터뷰이와 마주하면, 이제 ‘잘 듣기’를 고민한다. 잘 듣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김애령 교수는 『듣기의 윤리』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 듣는다는 것은, 잘 듣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듣기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야기된 내용의 진위를 판별하는 것?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 말하는 사람에 대한 진심 어린 공감? 이 모든 태도들이 윤리적 듣기에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왜곡하지 않고, 공감하면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런데 과연 이것으로 윤리적 듣기의 지침은 충분한가?
(김애령, 『듣기의 윤리』)
인터뷰어는 이 물음들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잘 듣는다는 것'에 관한 철학과 이론 공부도 필요할 것이다. 고은 님은 인터뷰와 관련된 책을 읽고, 강의를 찾아 들으며 '잘 듣기'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직접 몸으로 부딫히며 '듣기의 윤리'를 하나 하나 체득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우당탕탕 인터뷰어 일기>에는 이런 내용들이 있다.
- 초짜 인터뷰어로서 ‘인터뷰란?’에 대한 나름의 답은 가지고 있다. 지금 나에게 인터뷰는 누군가에 대해 엄청 공부하고, 홀딱 반해버리는 거다. 인터뷰하는 동안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을 글로 고백하는 거다. 나 같은 금사빠에게 딱이다.
- 듣기만 잘해도 될 것 같아서 인터뷰 프로젝트를 기획한 거였는데 엄청난 착각이었다. 인터뷰어는 이야기를 만드는 전 과정에 동참한다. 그래서 내 얘기만 할 때보다 남 얘기를 전달할 때 말을 더 ‘잘’ 해야 했다.
- 아마도 이게 선생님이 늘 강조하시는 ‘기존의 틀을 비우고 듣기’인가 보다. 어쩌면 '잘 듣는 마음'은 '내 마음을 잘 지우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횡단하는 신체
북드라망 출판사의 김현경 선생님은 오래전 인터뷰에서 인문학 공동체를 연구 부서, 출판사를 생산 부서라고 비유한 적이 있다. 이제 새로운 부서가 하나 더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공동체 안팍을 종횡무진 이동하며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전하는 ‘길 위의 통신’ 부서! 그 부서에 속한 통신원은 타자를 만나기 위해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횡단적 신체를 가진 사람일 것이다. ‘타자’에 사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고은 님은 작년 상반기에 <새벽이생추어리>에서 자원 활동을 하며 새벽이와 잔디를 만났다. 생추어리(sancturary)란 구조된 동물이 가능한 '평생'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돌보는 공간을 말한다. <새벽이생추어리>에는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구조된 돼지 새벽이와, 실험 동물로 길러지다 탈출한 돼지 잔디가 살고 있다. <새벽이생추어리>에서의 ‘윤리적 듣기’는 인간과 비인간 동물 모두에게 적용된다. 인간이 비인간 동물의 목소리를 잘 들으려면 ‘인간중심주의 너머의 듣기’가 필요할 것이다.
문탁 선생님은 북앤톡 칼럼에서 길드다 청년들의 비전을 이렇게 제시한 적이 있다.
"문탁의 선생님들에게서 떨어져 나와 지역으로, 나아가 전국적으로 다른 청년들을 만나서 접속할 것. 그렇게 확장된 청년들의 새로운 집합적 목소리로 문탁 선생님들과 다시 연대할 것!"
길드다 활동은 종료되었지만, 길드다의 비전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선생님들과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공동체 안팎을 횡단하며 청년들과 선생님들을 새롭게 만나는 방식으로, 그리고 지구 행성 위의 인간, 비인간 동물 모두(지금 바로 책 표지를 보세요!)와 공존하고 연대하는 방식으로!
다시, 『함께 살 수 있을까』
여기까지가 '함께 살 수 있을까' 프로젝트에서 내가 목격한 몇 가지 장면들이다. 전하고 싶은 장면들은 그 밖에도 많고, 아마도 내가 알지 못하는 장면들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사실 『함께 살 수 있을까』는 작년에 고은 님이 직접 제작하여 소량으로 유통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북드라망 출판사의 세심한 공정을 거쳐 새로운 옷을 입고 정식 출간되었다.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중이지만(고은 님은 여전히 이동중이지만), 이번에 출간된 책은 그동안 진행되어온 프로젝트를 잠정적으로, 하지만 아주 선명하게 매듭짓는, ‘김고은 X 함께 살 수 있을까 프로젝트 X 북드라망 출판사’ 콜라보의 근사한 합작품이다. 고은 님은 '함께' 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다섯 사람의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비인간 동물과 함께 살기를 고민하는 인간 동물, <새벽이생추어리>의 무모 님,
기독교인과 함께 살기를 고민하는 무지개 기독교인, <무지개신학교>의 오늘 님,
남성과 함께 사는 여성, <들불>의 구구 님,
장년과 함께 사는 청년, <우주소년>의 현민 님,
플라스틱과 함께 사는 환경 캠페이너, <그린오큐파이>의 윤지 님.
주의할 점이 있는데, 이 책을 젊은 세대들이 주목하고 발끈하는 특정한 사회 이슈 이야기, 혹은 페미니즘/퀴어/동물권/기후변화/세대갈등에 관한 이야기로만 읽는다면 충분치 않을 것이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사이의 행간을 천천히 들여다본다면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듣는 마음'을 경유하여 각자가 처한 상황을 공유하기, 다른 처지에서도 공존의 가능성 모색하기, 상대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듣기, 말뿐만 아니라 상대의 호흡과 표정까지 살피기, 그리고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미래 서사’를 ‘함께’ 발굴하기. 내가 <함께 살 수 있을까>에서 발견한 행간들이다.
마지막으로 책 출간을 앞둔 고은 님의 심경을 전하며, 함께 애도를 표한다.
"엊그제 제 친한 친구의 애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봄이 올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 합니다. 제게는 봄만큼 두렵고 어두운 계절이 없습니다. 언 땅을 뚫고 푸른 잎과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는 식물들을 보면 가끔은 얄밉기도 해요. 이 어마어마한 기운을 이기지 못한 누군가들은 죽곤 하는데 말이지, 하면서요. 애인을 떠나보낸 제 친구가 무척 걱정이 됩니다. 그전에 비슷한 경우에 친구들이 어땠는지 봐왔어서요. 먼저 떠난 친구와 제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6월 9일에 나올 인터뷰집을 맞이하려고 합니다. 그 인터뷰집 자체가 제가 친구들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였으니까요. (6월 4일, 문탁네트워크 문스탁그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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