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글쓰는 사이
완주의 어려움과 즐거움
드디어 제3회 〈한뼘리뷰대회〉가 끝났네요. 한뼘을 무사히, 함께 글쓰기에 참여한 10명 모두, 완주했다는 것이, 거기에 저도 빠지지 않았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요. 4월 말까지만 해도, 회사 일은 몰려들고 글은 주제도 없이 방황하고, 이러다 리뷰를 ‘마칠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깜찍한 생각이, 아주 잠깐 스쳤습니다.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니 언제는 회사 일이 없고, 글이 술술 써진 적이 있었나요. 늘 똑같죠. 저만 쓸까, 중단할까를 두고 고민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분들도 비슷한 고비를 넘기셨더군요. 애먼 책 탓을 하느라 중간에 책을 바꾸고, 그 책도 바꾸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기도 했고요. 역시 답안지를 바꾸고 싶어도 웬만하면 참는 것이 국룰입니다. 딸 셋 엄마는 중간에 하도 힘들다고 투덜대서 중도 포기하는 줄 알았는데 마침내 제출해서 넷째 낳은 거 축하한다는 격려가 이어졌습니다. 순풍 순풍은 아니라도 글을 낳았으니 너무 다행입니다. 제1회 북꼼 리뷰 대회 때 상금을 보태서 몇 명이 연구실 노트북을 장만했는데요. 2년 동안 너무 활동을 많이 했는지 이 노트북이 여기저기 아파서 병원도 다녀왔습니다. 우리에게는 새 노트북이 필요하다! 상금 타면 노트북을 장만하리라. 상금 욕심을 다들 숨기지 않으며 피니쉬 라인까지 함께 달렸습니다.
함께 쓰기, 고쳐 쓰기
‘인문공간 세종’에서는 4주간 매주 정해진 시간에 글을 미리 올리고, 서로의 글을 미리 읽고, 만나서 글에 대한 코멘트를 주고받았습니다. 매주 정해진 시간에 뭐든 쓰고, 뭐라도 올리고(너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의식이 발동해서 자세히 읽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 적도 있습니다), 같이 토론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주 천천히 각자의 글에서 싹이 돋아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매주 글을 갈아엎고 과감히 다시 쓰는 분도 있고, 처음의 틀에서 계속 키워 나가는 분도 있었고요. 잘 쓴다는 것은 따로 없는 거구나, 함께 쓴다, 그냥 쓴다, 계속 쓴다만 있다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뻥 축구로는 안되고 한 땀 한 땀 뜨개질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어떤 선생님은 글은 어두운 밤 모두 잠든 사이, 혼자 불 밝히고 조용히 생각을 곱씹고 정리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신 적이 있다고 하는데요. 다들 아시잖아요. 일 다 마치고, 애들 다 자고, 불 켜고 혼자 앉아 있으면, 바로 잠이 옵니다. 늘 마치지 못한 일이 있고 애들은 돌아다니고 주위는 시끄럽고 그 와중에 잠깐씩 생각하고 쓰는 거겠지요. 글을 쓰게 하는 것은 ‘마감’입니다. 마감이면 모든 글은 다 써지게 되어 있습니다. 화요일 밤 11시 마감이 임박하면 10시 55분부터 10개의 글이 거의 30초 간격으로 따다다닥, 우리만의 레이스, 한 명의 낙오도 없는 약속이 실현됩니다. 그 마감 앞에서는 회사 사람들도, 집안 식구들도 “오늘 마감이야?” 절레절레 하며 길을 열어 줍니다. 이렇게 우리의 함께 쓰기는 시끌벅적하고 온 동네방네에 소문이 납니다. 조용히는 어렵습니다. 막판 스퍼트 1주 동안은 거의 매일 글이 변신해서, 불과 1주 전만 해도 글이 될까 싶었던 것도 글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함께 쓰기는 역시 ‘마감’이 다 해줍니다.
글을 고쳐 쓰는 힘을 생각해 봅니다. 이번 한뼘만 해도 글을 4번 이상은 고쳐 쓰고, 궁리하게 되었는데요. 저는 처음 리뷰를 쓰려고 책을 읽을 때 소크라테스가 왜 광장에 나가서 질문을 하지, 알면 가르쳐 주지 왜 자꾸 뭘 물어봐, 무지는 모른다는 것인데 무지를 안다는 것은 뭐지, 아니 질문이 뭐지,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1달 가까이 출퇴근길에 무지를 모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왜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했을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결국 ‘무지는 질문하지 않고 확신하는 것이고, 무지를 안다는 것은 질문으로 그 확신이 붕괴되는 것이다.’라는 한 문장을 완성했는데요. 혼자 너무 뿌듯하더라고요. 매주 의견을 나누고 계속해서 어떻게든, 안되면 우기든 뭐든 밀어가 보는 연습이, 어떤 대체물로는 생각할 수 없는 묘한 기쁨을 주었습니다. 저는 확신이 붕괴된다고 했는데 어떤 선생님이 읽는 사람도 그 붕괴의 느낌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셔서, 그 선생님을 설득시키는 글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완성했습니다. 모두 처음의 막연했던 주제를 구체화하고 자신의 ‘한 문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참 좋았습니다.
계속 쓰기
며칠 전 이번 리뷰대회 수상 발표가 났습니다. 우리 10명의 이름은 거기에 없었는데요. 열심히, 재미있게 썼으면 됐다, 수상이 뭐 중요한가, 라고 하고 싶지만 사실 좀 실망했습니다. 시끌벅적하던 단톡방은 쥐 죽은 듯 조용~. 초년 성공이 좋지 않다고 하더니 지난 두 번의 대회에서 수상자가 나와서 기대가 큰 탓에 실망도 컸던 것 같습니다. 연구실 노트북은 다음 기회에 사야할 것 같습니다. 그전까지 노트북은 A/S센터에 자주 방문하는 걸로 해야지요. 북드라망 블로그에 올라온 이번 당선작을 보니 제목도 좋고 내용도 좋더군요. 책과 생활에 더 밀착되고 더 절실하게 쓴 글 같습니다. 질투가 납니다. 우리도 좀더 분발하겠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 우리 10명은 랜선으로 뒷풀이 차담을 할 계획입니다. 서로의 글을 나누고 앞으로의 계획도 도모해볼 생각입니다. 우리의 글쓰기는 매주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쭈욱~
글_강평옥(인문공간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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