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정치와 윤리와 좋은 삶』
- 어쩌면 기댈 것은 '지성' 뿐일지도...
예전엔 '지성'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늘 '힘'에 근거해서 돌아가는 듯 보이는데, 이른바 '지성'이라는 건 무력하기 그지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지성'이 사회적 권력의 근거가 되는 듯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작동하는 것이 '지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차라리 '기술적 역량'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합하지 않을까? 어쨌든, '지성'이 무력하다고 느껴졌던 그 때에 나는 공부를 그만둘 뻔했다. 뭐, 내 인생에서 그런 적이 한 두번이 아니긴 했지만, 스스로 '공부하겠다' 마음먹고 한 이래로 그랬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는 인생에 닥친 큰 사건이었다. 그래서 그때는 세상이 온통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고, 다 쓸모 없다고 여기기까지 했었다. 그저 노는 게 제일이라고 매일 같이 놀기만 했다. 처음에야 재미있기는 했지만,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는 노릇. 도무지 답답하게 풀리지 않고 허무하기만 한 인생에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한 참에 아이가 생겼고, 그러고 나니 공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답이 없는 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정보나, 필요한 지식이나 그런 걸 얻기 위해서 공부를 했던 게 아니다. 무슨 공부를 하든 나 스스로를 '지성적인 상태'로 만들지 않고서는 이제 막 부모가 된 이들을 휩쓰는 세상의 파도에 휩쓸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부모가 된 다음에야 다시금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 예전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마음엔 들지 않았던 소크라테스식 지성주의가 정말 어떤 것인지 느낀 셈이다.
'지성'은 여전히 큰 힘을 쓰지 못한다. 여전히 세상은 옳은 이야기, 적합한 이야기, 맞는 이야기 보다 '마음에 드는 이야기'만 쫓는다. 도대체 어느 지성이 세상을 구할 수 있으랴. 그렇지만, 최소한 세상에 한 사람 자기 자신만은 구할 수 있다.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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