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짐, 새로운 생성으로 나아가는 길
風水渙 ䷺
渙, 亨, 王假有廟, 利涉大川, 利貞.
初六, 用拯馬壯, 吉.
九二 ,渙奔其机, 悔亡.
六三, 渙其躬, 无悔.
六四, 渙其羣, 元吉, 渙有丘, 匪夷所思.
九五, 渙汗其大號, 渙王居, 无咎.
上九, 渙其血去逖出, 无咎.
요즘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해체와 생성’을 통한 자기 변형의 문제이다. 이것은 순서가 있는 게 아니라 동시에 일어난다는 생각이 든다. 완고하게 붙들고 있던 것들을 무너뜨리고 흩어버리는 순간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주역의 환괘는 바로 이런 ‘흩어짐과 모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기 지반을 흩어버리고 다시 모은다는 것은 결국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몸을 트는 것이다. 환 괘의 괘사와 각 효들은 이 때 무엇을 경계하며 나아가야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먼저, 괘사에서는 ‘흩어짐’은 형통하니(渙, 亨) ‘종묘를 두는 것이 이롭다.’(王假有廟)고 말한다. 종묘를 둔다는 건 어떤 의미이고 왜 이롭다고 하는 걸까?
예전부터 왕은 국난이 생기면 종묘에서 제사를 지냈다. 이는 자신을 낮추어 하늘의 뜻을 구하고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행위다. 정이천은 「단전」에서 종묘를 두는 것은 “마음이 중에 있는 것(王假有廟 王乃在中也)”이고, 중(中)은 “마음이 중도를 이룬 모습, ‘심지상(心之象)’”이라고 풀고 있다. 그렇다면 ‘심지상’이란 결국 ‘마음의 방향’을 살피는 게 아닐까. 흩어버린다는 것에는 언제나 다시 모은다는 뜻이 들어있다. 해서 환괘는 흩어짐의 괘인데도 주구장창 모을 때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왕이 종묘를 두고 제사를 모시는 것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간절하고 지극함으로 나아가야 이롭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어떤 비전을 가지고 흩어버리고 모을 것인가가 환 괘의 관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금성을 시작하기 전 갈등이 심했다. 지금까지 공부했던 방식으로는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무거워지고 견고해지는 자신을 확인하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 공부를 그만둬야 하나?’라고 스스로에게 수없이 질문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달라져야 한다.’ 라고 절실하게 매달리는 순간, 당시에 읽고 있던 『원각경』의 보살행이 다르게 다가왔다. ‘자리이타’, ‘나를 닦아서 남과 나누는 공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왜 나는 이제껏 나를 지키고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공부를 하고 있었던 걸까.’, ‘이제는 쌓아서 축적하고 증식하는 공부가 아닌 나누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 다른 길이 보였다. <문이정>이라는 공부공간을 시작하게 된 것도 이런 마음의 작용이다. 기존의 나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길을 열어갈 때는 도반들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인연조건 속에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해체되기도 한다. 그러니 관계 속에서만 나를 변형시켜나갈 수가 있다. 환 괘의 초육과 구이가 서로에게 건장한 말이 되어주기도 하고(用拯馬壯, 吉) 기대고 의지할 곳이 되어 주며(渙奔其机, 悔亡) 화합하는 것처럼. 환의 시기에는 다른 존재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헌데, 빠르고 건장한 말(馬)이 되어준다는 건 무슨 뜻일까? 여기서 말(馬)은 유약한 초육를 돕는 존재인 구이를 가리킨다. 모든 걸 흩어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시기에 중정하지 못한 초육은 힘들기만 하다. 구이는 이런 초육을 어려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주는 자이다. 특히 초육과 구이는 서로 ‘응’하는 관계가 아니다. ‘비’의 관계에 있는 존재들이 힘을 합쳐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자들과의 협력인 것이다. 이 부분을 달리 해석해보면 건장하고 빠른 말이란 내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나를 밀고당겨주는 자들, 곁에서 나를 지켜봤던 스승과 도반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겠다.
‘흩어져야 능히 모일 수 있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이고 원리이다. 흩어짐이 있어야 비로소 새로움을 생성하는 길로 나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환 괘에서는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匪夷所思) 하지만 내가 마음의 방향을 그 곳에 두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마음의 방향을 전환하는 순간 <문이정>이라는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든든한 건 도반들과 함께 가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움을 생성하며 나아가는 길에 완성이란 없다. 그것은 늘 진행형일 뿐이다.
글_신혜정(감이당 금요대중지성)
'지난 연재 ▽ > 내인생의주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인생의주역] 술과 음식에서 기다린다는 것 (0) | 2020.03.24 |
---|---|
[내인생의주역] 높은 성벽 위에 오르면 보이는 것 (0) | 2020.03.17 |
[내인생의주역] ‘浚恒(준항)’의 함정 (0) | 2020.03.10 |
[내인생의주역] 고귀한 축적 (0) | 2020.02.18 |
[내인생의주역] 크게 싸워야 만난다 (0) | 2020.02.11 |
[내인생의주역] 썩은 것에서 생성의 향기를 맡다 (0) | 2020.02.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