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돌보기 1탄 _ 우리에겐 아빠가 필요해!
부제 : 아빠들에게 30일간의 출산휴가를 허하라!, 아니 허해 주세요~
내가 아기를 낳았던 신촌 세브란스병원은 자연분만의 경우 아기를 낳고 2박3일이면 퇴원을 시킨다. 나는 밤 9시가 다 되어서 아기를 낳았기 때문에 이틀밤을 있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만 하루하고 반나절 정도 병원에 있다가 집에 돌아온 거나 마찬가지. 퇴원할 때 아기와 함께 갈 줄 알았으나 신생아황달로 아기는 하루이틀 더 병원에 있어야 한다고 해서 아쉬운 마음으로 애아빠하고 둘이서만 집으로 돌아왔다(그 하루이틀이 딸이 우리에게 효도하려고 준 시간이었다는 걸 곧 알게 되었다).
신생아 황달 치료 중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고, 산후관리사 이모님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은 24시간 동안 모자동실이 가능한 조리원이 이 지역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아기와 신생아 때부터 떨어지지 않고 함께 있고 싶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고, 남편은 적극적으로 아기를 돌볼 (마음의) 준비가 단단히 되어 있음을 수시로 피력했다. 또 나 역시 조리원에서 조리하는 기간이 산모에게는 유일한 휴식 시간이라는 말에 마음이 살짝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아기와 함께 계속 있고 싶은 마음이 훨씬 컸다. 그리고 산후조리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좀 쉽게 생각한 면도 이런 결정을 내리는 데 한몫했다(이 부분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우리가 집에 돌아온 다음 날이면 아기가 퇴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 아기는 황달 수치가 높지는 않지만 정상치로 떨어지지가 않아 하루를 더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친정어머니가 해다 주신 음식을 먹으며 누워서 하루를 더 쉴 수 있었지만, 이때는 아기를 데려오지 못하는 게 괜스레 너무 슬프고 병원신생아실에 있는 아기가 불쌍했다(신생아황달은 신생아의 절반 이상이 걸리는 것으로 대부분은 큰 문제가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다음 날 병원에서 아기를 데려가도 좋다는 전화에 신이 나서 애아빠는 산후관리사님과 아기를 데리러 가고 나는 ‘설렌다’는 기분을 정말 백만 년 만에 ‘진하게’ 느끼며 아기를 기다렸다. 너무 작아서 안기도 어려워 보이는 아기가 집에 도착했고, 산후관리사님께서는 기저귀 가는 법부터 분유 타는 법, 안는 법까지 하나하나 알려주셨다(우리에겐 너무 작은 아기였는데, 관리사님은 아기가 키가 꽤 크다고 하셨다;;).
집에 오는 길
산후관리사님이 저녁 6시 정각에 퇴근을 하시고…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되었다. 나의 지인들이 알고 있듯이 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팔린 육아책 가운데 하나의 내용을 달달 외울 정도로 오랫동안 편집했던 사람이다. 글로는 육아를 좀(아니 사실은 꽤) 배웠다고 할 수 있었다. 각종 상황에 대처할 때라든가, 아기의 기본 성장과정에서 꼭 챙겨야 할 것들이라든가, 병원에 꼭 가봐야 할 상황이라든가, 어떻게 먹이고 재워야 한다든가…에 대해서, 과장을 조금 보태면 애 다섯은 키워본 사람처럼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글로 배운 것이고, 당연히 현실은 달랐다. 예컨대 탯줄도 떨어지지 않은 신생아의 배꼽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글로 배워 알고 있었지만, 막상 우리 딸의 탯줄 달린 배꼽을 보고 기저귀 채우는 것도 막막하여 허둥대기만 했달까.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육아는 시작되었는데, 내 몸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생애 가장 허약한 상태에 있었다. 자연분만을 하면 어쩐지 다음날부터 밭에 나가 일도 할 정도로 회복이 빠를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나는, 집안에서 일어나 움직이는 것조차 너무 힘든 몸 상태에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오로(분만 후 나오는 혈액, 자궁내벽에서 탈락된 점막과 세포, 박테리아 등으로 이루어진 분비물)는 왜 이렇게 끊임없이 나오는지…. 내 몸이 너무 낯선데, 눈앞에는 내가 24시간 동안 돌봐야 할 새 생명이 있었다.
남편이 없었다면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 수 있었을지 나는 모르겠다. 집에 상주하시는 산후관리사님을 모신다고 해도 우리 형편에 한 달도 부담스럽고(출퇴근하시는 관리사님에 비해 당연히 금액 차이가 크다), 두 달은 고려도 못했을 것이다. 오로지 나 혼자 생애 가장 허약한 몸 상태로 생애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일 신생아 돌보기를 했다면… 아, 상상도 하기 싫다는 건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하여, 직접 출산과 육아를 해보니, 알겠다. 막 출산한 엄마와 막 세상에 태어난 아기에게는 누구보다 남편+아빠가 필요하다! 지금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도록 하는 문화가 막 형성되어 가고 있는데, 나는 여성들이 출산휴가를 90일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아빠들도 출산휴가를 적어도 30일은 사용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사실 강제적으로 아빠들에게 무조건 아기가 태어나면 30일의 휴가를 주고, 그 기간에 해당하는 아빠의 급여는 국가에서 전적으로 지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30일은 아기가 딱 신생아 시기를 벗어나는 때다. 그리고 이 출산 후 30일은 엄마는 무조건 잘 쉬어야 할 절대적 안정기이고, 아기는 세상에 태어나 엄마 뱃속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 적응해 가는 힘든 시기이다. 이때 이 두 사람의 몸과 마음을 모두 헤아리며 돌보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당연히 아빠다(낭송 조선왕조실록편을 작업하다 보니 세종 때에 여종(婢子)이 출산을 하면 그 남편에게도 30일간은 일을 시키지 말도록 하라는 내용이 있더라).
운이 좋게도 출산 후 30일 가까이 내내 함께 있을 수 있었던 우리집은 남편이 아기의 분유 타는 법, 기저귀 가는 법, 목욕 시키는 법을 모두 먼저 배웠고, 나보다 더 능숙하게 시작했다(아직도 목욕은 아빠가 전담한다). 또 산욕기 동안 내 식사를 챙겨주고, 심정적인 위로도 아끼지 않았다. 삼칠일 동안 왜 눈물이 흐르는지도 알 수 없게 어느새 훌쩍거리며 울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당황스럽고, 그러면서도 또 괜히 서러울 때, 남편이 했던 “내가 더 잘할게”라는 한마디 말은 그 어떤 것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 아기가 왜 우는지 원인을 알 수 없이 넘어가게 울 때도 남편과 내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큰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뱃속에 아기를 넣고 있을 수도, 아기에게 젖을 물릴 수도 없지만, 아빠는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면서 ‘아빠’가 되어 가는 것이 보였다. 아기가 태어나고 30일간의 신생아 시기를 엄마와 아빠가 함께 보내면, 엄마는 엄마가 되었다는 걸 받아들이며 자기를 추스릴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아빠는 비로소 아빠가 되었음을 온몸을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기는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모두 받으며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이 낯선 세상에 조금씩 적응해 갈 수 있게 된다.
이 소중한 시기에 아빠들이 꼭 함께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그와 더불어 아빠들이 그런 욕망과 의지를 불태우게 되기를… 소망한다.
_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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