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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반양생적 시대를 살다 - 2) 청년, 반양생적 시대를 살다 - 2)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대학교 1학년 때 느꼈던 막막함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고등학교를 벗어나 대학에 간다는 생각에 처음엔 설레기만 했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와 보니 무수한 선택지들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시간표를 짜는 것부터 막혀버렸다. OT를 하면서 선배들이 수강신청방법을 알려줬지만, 어떤 수업이 학점을 잘 준다더라 하는 단편적인 정보만 가득할 뿐이었다. 어떤 과목을 듣고 싶고,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사실 전공도 수시 경쟁률을 보고서 피상적으로 선택한 것에 불과했다. 내 인생에 중요한 결정인데도 으레 그러거니 하는 길을 따라간 것이다. 그러다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여긴 어디? 나는 누.. 2019. 8. 6.
다케우치 요시미, 『루쉰』 -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다케우치 요시미, 『루쉰』 -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사는 일'은 대체로 암담한 것을 견디거나, 잊는 일인 경우가 많다. 대체로 즐겁게 살아가는 낙관주의자의 삶도 마찬가지다.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낙관주의자가 되었을까. 아니, 그런 말이 생겨났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삶은 어두운 곳에 간신히 불을 밝히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꽤 매력적인 일이다. 내내 밝은 것보다 어둠 걸 밝히는 일이 더 즐거우니까. 다케우치 요시미의 책에는 루쉰이 죽고서야 '청년들은 비로소 자신의 고독을 깨달았다'는 말이 나온다. 그에게는 죽음마저도 어떤 '쓰기'였던 셈이다. 인간의 삶, 죽음마저 포함하고 있는 그 삶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살아가고, 죽는 .. 2019. 8. 5.
[아기가 왔다] 어허, 이놈이! 어허, 이놈이! '아기가 왔다'라고 써 놓고 보니 과연 우리 딸을 여전히 '아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든다. 아직 36개월도 안 되었으니 '아기'라면 아기지만, 덩치만 놓고 보자면 아직도 말을 잘 못하는 게 이상할 정도다. 우리 딸이야 원래 아빠가 하는 행동을 다 따라하는 편이었지만 두어달 전만 하더라도 신체능력의 한계(팔이 짧다든가, 점프를 못한다든가, 옆으로 걷기를 못한다든가 그런 것들)로 잘 따라하지 못하는 것들투성이였다. 뒷짐지고 걷기도 그랬다. 걸음을 막 배우던 때에는 양팔이 균형 잡는 데 동원되어서 못 따라하고, 잘 걷게 된 다음에는 걷는 법을 잊은 듯 뛰어다니느라 못 따라했다. 이제는 아빠가 뒷짐을 지고 걸으면 저도 따라 뒷짐을 진다. 건방지게. 그래서 아빠는 요즘 부쩍 조.. 2019. 8. 2.
『말하는 보르헤스』, 우리가 책을 펼치지 않는다면 책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책을 펼치지 않는다면 책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책을 펼치지 않는다면 책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페이지가 적힌 종이와 거죽으로 만들어진 육면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이상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나는 그것이 읽을 때마다 바뀐다고 믿습니다.이미 수없이 말했듯이, 헤라클레이토스는 그 누구도 똑같은 강물에 몸을 두 번 적실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강물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장 끔찍한 것은 우리가 강물보다 유동적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읽을 때마다 책은 바뀌고, 단어에 함축된 의미는 달라집니다. 뿐만 아니라 책에는 과거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 오래된 책을 읽는 것은 그 책이 쓰인 날로부터 우리가 읽은 날까지 흘러간 모든 시간을 읽는 것과 같습니다. _ 호르헤 루.. 2019. 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