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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1024

한나봉(한라봉) 되기 한나봉(한라봉) 되기 딸은 지금(31개월)보다 더 어릴 때에도 장난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말'이 늘면서, 그 중에서도 어휘가 늘면서 장난이 한층 다채로워졌다. 거기에 요즘은 문장, 그러니까 '맥락'을 연결하고, 뿌수는 능력이 더해졌는데, 말인즉 말이 되는 장난을 치곤 한다. 제주도 사는 이모가 준 한라봉을 까주느라 한라봉 윗부분을 칼로 따냈는데, 그걸 보더니 딸이 '뚜껑, 뚜껑이네'하였다. 그것도 신기했는데, 그 다음엔 그걸 머리에 쓰더니 '한나봉!'이라고 하는게 아닌가. 그러니까 이제 자기가 한라봉이 되었다는 소리다. 저녁에 그러고 한참 놀다가 아침에 일어나더니 또 한라봉을 찾는다. 과육은 먹고 껍질은 머리에 쓰고 노니, 일석이조. 앞으로 얼마나 더 재미난 장난을 칠까? 2019. 12. 6.
[내인생의주역] ‘不遠復’의 비밀 ‘不遠復’의 비밀 ䷗地雷復 復, 亨. 出入无疾, 朋來无咎, 反復其道, 七日來復. 利有攸往. 初九, 不遠復, 无祗悔, 元吉. 六二, 休復, 吉. 六三, 頻復, 厲, 无咎. 六四, 中行, 獨復. 六五, 敦復, 无悔. 上六, 迷復, 凶, 有災眚. 用行師, 終有大敗, 以其國, 君凶, 至于十年, 不克征. 초장부터 불원복을 말하다니 지뢰복 괘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건 초구의 효사였다. 不遠復(불원복), 无祗悔(무지회), 元吉(원길). 복괘가 어떤 상황인가. 소인(음효—)이 판을 치던 산지박 괘(䷖)에서 겨우 살아남은 양효(군자ㅡ) 하나. 나약하기 그지없는 양효 하나로 잃어버린 도를 회복하겠다는 마음을 먹지만 아직은 소인의 기세가 등등한 세상. 힘이 되어줄 벗들이 오기를 기다려 조심조심 나아가야 하는 때가 아닌가.. 2019. 12. 3.
말을 한다! 말을 한다! 딸이 세상에 나온지 30여개월 만에 '말'을 말처럼 하게 되었다. 전에도 물론 대충 의사소통이 되기는 되었다. 여러 어조로 '어버버'를 하기도 하고, 그런 중에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키기도 하고, 그러니까 (저쪽을 가리키며) '아빠 어버머머버?' 같은 식으로도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던 녀석이 요즘은 '아빠 저거 뭐야?'라거나, '아빠 뚱뚱해?'(ㅠㅜ) 같은 말을 한다. 어휘가 느는 속도나 말과 맥락을 맞추는 능력이 발달하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요즘은 매일매일 최소한 한번씩은 놀란다. 이렇게 가속도가 붙은 가장 큰 이유는 11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녀서인 것 같다. 비슷한 수준의 친구들이 모여서 매일 자기 언어를 시험하고, 수정하고, 추가하는 과정을 겪기 때문이 아닐까? .. 2019. 11. 29.
성(聖)가정으로부터 탈주하라 성(聖)가정으로부터 탈주하라 결혼 전부터 난 가정에 대한 나름의 롤모델이 있었다. 바로 가톨릭에서 말하는 ‘성(聖)가정’. 근엄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하느님 아버지, 온화하고 희생적인 성모마리아,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구원받는 자식들. 이렇게 구성된 가족 삼각형이 내가 꿈꿔오던 이상적인 가정의 이미지였다. 그래서 결혼할 때 직장부터 그만두라는 시아버지의 일방적인 통보도 별 말 없이 따를 수 있었다. 시댁 어른들에게 복종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열심히 케어하는 게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억압하면서 또 한편으론 원하는 가정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나의 기준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했다. 불교신자였던 시어머니를 가톨릭으로 개종시키고 남편에게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아이들에게는.. 2019. 1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