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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왔다, 그리고 먹는다, 아빠가 된다 아기가 왔다, 그리고 먹는다, 아빠가 된다 우리 딸이 이유식을 먹은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맨 처음 쌀을 먹던 날, 아빠는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200여일 아기를 돌보면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 중 하나였다. 어째서 그렇게 긴장했던 걸까. 생각해 보면, ‘아기’가 ‘사람’이라는 느낌이 희박해서 그랬던 것 같다. 엄마, 아빠와는 먹는 것도 다르고, 자고 일어나는 주기도 다르고, 아무 때나 울고, 싸고...... 팔, 다리, 눈, 코, 입을 빼곤 모두 다르니 그(녀)가 도무지 ‘동류’로 느껴지지 않았달까. 무조건적으로 돌봐주어야 하는, 어쩐지 엄청 귀엽고 사랑스러운 생명체이기는 했지만, 이 녀석이 ‘인간’이라는 걸, 게다가 내 자식이라는 걸 확실하게 알고 있음에도 실제 대할 때의 느낌은 ‘이게 정.. 2017. 11. 10.
면역체로서의 몸​ 면역체로서의 몸​ 신체(body)는 그것이 특별한 법적 자격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인격(person)에서 사물(thing)로 이동하는 수단이라고 이야기된다.법에서 신체처럼 많이 이야기된 것도 없다.신체는 이러한 두 차원들을 진동하며,인격에서 사물로 혹은 사물에서 인격으로의 이동을 가능케 한다. ─Roberto Esposito, 『Person and Things』 인격(person)과 개체적인 것 앞서 보았던 자유가 개체적인 것의 문제로, 소유형으로 접근되는 것은 특이한 발상이다. 능력으로서의 자유가 아니라 자유란 이제 선천적으로 개인에게 주어진 소유하는 권리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권리를 당연히 가졌다고 선험적으로 상정되는 개체가 오히려 이상한 사고 아닐까? 이렇게 권리나 의무와 같은 무언가를 소유하고.. 2017. 11. 9.
‘얼마나 벌’ 것인가? 아니! ‘어떻게 쓸’ 것인가? ‘얼마나 벌’ 것인가? 아니! ‘어떻게 쓸’ 것인가? 子曰 奢則不孫 儉則固 與其不孫也 寧固 공자가 말했다. “사치하는 사람은 겸손하지 않고, 절약하는 사람은 고루하다. 겸손하지 않은 것보다는 차라리 고루한 것이 낫다.” - 「술이(述而)」편 35장 = 글자 풀이 == 관련 주석 =‘탕진잼’. 탕진과 재미가 합쳐진 말로, 요즘 청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다. YOLO족(You Only Live Once : ‘인생은 한 번뿐이다’)이란 말도 있다. 그럴 듯하게 포장하긴 했지만, 모두 소비를 통해 현실로부터 탈출하려는 몸부림들이다. 고달픈 현실 같은 것과 거리가 있는 나도 ‘탕진잼’의 맛을 좀 안다. 그러나 소비가 주는 해소감은 소비하는 바로 그 순간뿐이다. 충동에 이끌려 산 물건들이 비좁은 공간 한 구석을 .. 2017. 11. 8.
‘평범’의 패배주의에 맞서 ‘평범’의 패배주의에 맞서 나는 별 일 없이 산다 "「네 꿈은 평생 평범하게 사는 거라며?」/(…) 「저기…, 너 정말 유명해지고 싶다거나, 부자가 되고 싶다든가… 그런 젊은이다운 꿈은 없니?」/ 「없어. 난 두더지처럼 죽은 듯이 숨어 살 거야….」/ 「불행도 행복도 필요없단 거야?」/ 「응….」"(후루야 미노루, 『두더지』 1권) 후루야 미노루의 만화 『두더지』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 스미다는 ‘평생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범상치 않은 꿈을 털어놓는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혼자서 낚시터 보트대여점을 운영하는 중학생 스미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평범해질 수 없는 이 소년은 외친다. “평범 최고!” 스미다가 말하는 ‘평범’에는 강한 저항감이 섞여 있다. ‘너희들은 모두 특별하다’ ‘자기만의 꿈을 갖고 살.. 2017. 1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