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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소설가의 일』 - 문장의 일 김연수, 『소설가의 일』 - 문장의 일 『소설가의 일』을 두번째 읽고 있다. 그냥 양量으로만 따져보자면, 서너번째일수도 있다. 여기저기 아무 곳이나 펼쳐서 읽기도 했으니까. 그만큼 좋아한다는 이야기인데, 어째서 그런가 생각해 보면, 문장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문장이 전부다"라는 맥락의 말이 있다. 그것도 이 책에서 본 말인데, 정말 그렇다. 흔히 생각하고, 그걸 정리한 내용을 글로 쓴다고 믿지만, 그건 사실 환상에 가깝다. '쓰기'가 먼저다. 좀 이상한 말이지만, '내용'은 '나'가 '생각' 하는 게 아니다. 내용은 '쓰기'가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건 그저 그걸 새로운 문장으로 만드는 일 밖에 없다. 특별하다할 것이 없는 '내용'임에도, 새로운 '문장'으로 말하면 매력적으로 변한다. 그러니.. 2020. 2. 19.
[내인생의주역] 고귀한 축적 고귀한 축적 山天大畜 ䷙ 大畜, 利貞, 不家食, 吉, 利涉大川. 初九, 有厲, 利已. 九二, 輿說輹. 九三, 良馬逐, 利艱貞. 曰閑輿衛, 利有攸往. 六四, 童牛之梏, 元吉. 六五, 豶豕之牙, 吉. 上九, 何天之衢, 亨. 주역의 大畜괘는 축적에 대한 담론이다. 우리 시대의 축적은 더 많이 소유하고 더 증식하는 자산 축적에만 포인트를 둔다. 그 부가 어떻게 순환되어야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담론은 풍부하지 못하다. 그러나 주역의 대축괘는 한마디로 우리 시대의 소유와 증식을 전복하는 담론이다. 즉 축적이 극에 이르렀을 때 대축괘는 모두 흩어버린다. 그래서 ‘하늘의 거리가 형통하다.’(何天之衢, 亨)고 한다. 어떻게 하나도 쌓인 것이 없을 때를 가장 큰 축적이라고 주장하는 걸까. 대축괘의 축적방식은 초반에는 위태롭.. 2020. 2. 18.
페터 한트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 과거는 사라지지 않지만, 떠날 수는 있다 페터 한트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 과거는 사라지지 않지만, 떠날 수는 있다 ““여기 다시 온지 얼마 안 돼서 그래”하고 나는 그가 가고 난 뒤 혼잣말로 소리쳤다. 외투를 걸친 채 욕실로 들어가 나 자신보다는 거울을 더 들여다보았다.”(14쪽) ‘혼잣말’에는 전제가 있다. ‘말’이 사실은 ‘상호적’이라는 전제다. 그럴 것이 ‘말’은 ‘의미’의 묶음이다. 그래서,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전달 받는다. 이를 두고 ‘소통’이라 부르는데, 이 시도는 대개는 실패한다. 오죽하면 정치인이고 연예인이고, 세상 전부가 ‘소통하자’고 달려든다. 다시 ‘혼잣말’을 살펴보자. 1인칭 화자(이하 주인공)는 소설의 3/2, 그러니까 클레어와 베네딕틴 모녀를 만나기 전까지 끊임없이 혼자 말한다. ‘말’을 .. 2020. 2. 17.
산울림 [The complete regular recordings in 1977-1966] - 이게 끝이 아니었다니 산울림 [The complete regular recordings in 1977-1966] - 이게 끝이 아니었다니 가지고 있는 많은 음반들 중에서 특별히 애착이 많이 가는 그런 음반이 한둘쯤……, 아니 서너장쯤, 음……, 아니 열 몇장쯤 있다.(더 늘어날 수도 있을 듯하지만) 오늘 소개할 음반도 그런 음반들 중 하나인데, 그 중에서도 매우 '스페셜하게 특별'하다. 말하자면 VVIP 같은 음반인데, 이었는데……. 무엇인고 하니, 밴드 '산울림'의 박스셋이다. 수록된 음반이 무려 8장이나 된다는 것 빼고는 특별히 특별할 것도 없는 이 음반이 그렇게나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써놓고 보니, 음반이 8장이나 된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특별하기는 한 것 같지만, 어쨌든 두가지 사연이 있어서다. 하나는 이 음반을 구.. 2020.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