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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석기 시대] 연필과 석기 연필과 석기    “가장 널리 퍼져 있는 편견의 하나는 문화가 진보한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문명의 진보’라는 표현은 너무 자주 들어서 진부하기조차 하다. 소박하고 원시적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진보적이지 않다’는 딱지를 붙인다. 여기에는 끊임없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다는 암시가 들어 있다.   실제로, 진보라는 발상 자체는 흥미로운 문화적 현상이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인류의 대다수는 역사의 대부분을 통해 진보라는 발상에 물들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정적인 세계, 변화가 없는 인간은 당연한 것이었다. 설사 변경의 관념이 있었다 해도, 그것은 초기 황금시대로부터의 타락이라고 치부되는 경우가 많았다.”(알프레드 Kroeber(1923), 프란스 드 발, 박성규 옮김,『원숭이와 초밥 요리사』.. 2024. 11. 7.
[내가 만난 융] 꿈을 통해 삶의 길을 명상하다!(2) 꿈을 통해 삶의 길을 명상하다!(2)  글_지산씨(사이재)     나는 나의 꿈 해석이 옳다는 것-꽤 가망이 없는 모험-을 증명할 필요가 없고 다만 환자와 함께 ‘작용을 일으키는 것’-‘실재적인 것’이라는 말을 쓰고 싶을 정도이다-을 찾아야 한다. (『정신 요법의 기본 문제』, 48-49쪽)  1. 왜 꿈을 해석하는가? 꿈이, 꿈의 강렬함이, 그리고 현실 또는 의지에 반하는 꿈의 현상이, 융의 삶을 이끌었다. 꿈을 통해 자신의 앞날을 정^^하거나 현재 살고 있는 삶이 무엇인지, 이후 나아가야 하는 삶은 어떤 것인지를 통찰했다. 꿈에 관한 한, 아니 꿈에서의 융은 지혜로운 노인, 노성한 현자와 같았다. 살아 본 적 없는 삶을 살고, 상상한 적 없는 상태를 경험하고, 가야할 길을 내다봤으니 앞을 깨우쳐주는 .. 2024. 11. 6.
[아스퍼거는 귀여워] 감자 팬클럽 감자 팬클럽  그 날은 평범한 오후였다. 감자가 한 50일쯤이었을까. 분유 냄새가 폴폴 나는 뽀시래기 시절, 남편은 출근하고 나는 감자랑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서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거실 소파 위에 앉아 다리 위에 아이를 끼워놓고는,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었다. 배부른 아이는 나른하게 누워있고, 모처럼의 평화로운 분위기. 그때 감자는 내 눈을 정확하게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등줄기부터 짜르르 행복감이 느껴졌다. “아…. 이게 행복이구나” 감자를 낳고 밤낮으로 잠도 못 자고, 회복이 늦어서 제대로 앉지도 서지도 못했던 나날들이었다. 내 배에서 나왔지만,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고, 나중에는 정신이 없었고, 씻지도 먹지도 못해 사랑스러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하지만 그 날 처음 눈이 .. 2024. 11. 5.
[씨앗문장] 엄마와 딸―가장 친밀하고 가장 먼 엄마와 딸―가장 친밀하고 가장 먼   하지만 진짜 문제는 가사노동이 아니라 감정노동이었다. 어머니는 나의 가사노동에 시시콜콜, 일거수일투족, 사사건건 간섭하기 시작했다. 장을 봐 오면 ‘이게 뭐냐?’부터 시작해서 ‘이건 왜 사 왔냐?’ ‘뭘 이렇게 많이 사 왔냐?’ ‘이건 왜 데치냐?’ ‘이걸 왜 고춧가루가 아니라 고추장을 넣느냐?’ ‘뭘 이렇게 늘어놓냐?’ ‘왜 설거지를 빨리 안 하냐?’ ‘뭘 이렇게 많이 버리냐?’…. 하루 종일 집에 혼자 계셨을 테니 심심했을 것이고, 딸이 들어왔으니 반가웠을 것이다. 이런 잔소리가 나름대로 소통의 욕구인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난 어머니의 기분에 장단 맞춰 가며 느릿느릿 설렁설렁 일할 만큼 시간의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점점 대꾸하는 말이 짧아지고 날.. 2024. 1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