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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796

손씻다가 미칠 노릇 손씻다가 미칠 노릇 나는 손을 꽤 열심히 씻는다. 음, 무엇보다 흡연자이기 때문에 손씻기를 게을리하면 남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담배냄새가 훨씬 더 심하게 나기 때문이다. 또, 나는 현대의학을, 그 중에서도 공중보건에 관해 상당한 신뢰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리하여 손가락 사이, 손톱, 엄지손가락, 손등까지 보건소에서 알려주는 그대로 손을 씻는다. 문제는, 우리 딸이 그걸 따라한다는 데 있다. 처음엔 그저 장난 삼아 비누를 가지고 놀라고 알려주었는데, 이젠 하루에 네다섯번씩, 그렇게 정석대로 손을 씻으려고 든다. 물로만 씻어도 충분한 상태(토마토가 묻었다거나, 귤즙이 묻었다거나)임에도 무조건 비누로, 최소한 손톱 밑 정도는 씻어줘야 그만둔다. 당장 어딜 나가야 하거나, 밥을 차려야 하거나, 뭐 기타 등등 .. 2019. 10. 18.
각자의 목소리로 노래 부르듯 철학하기 각자의 목소리로 노래 부르듯 철학하기 읽을 수 없던 책, 『안티 오이디푸스』가 돌아왔다. 내게는 꽤 심란한 복귀였다. 3년 전에도 기회가 있었지만 이해하지 못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욕망 기계니 기관 없는 신체니 하는 개념들과 설명 없이 서술되는 방식이 너무 낯설었다. 그러나 지금의 한계에 도전하고 나만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책을 공부하라는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이 책을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책은 어려웠고 이 책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지, 문제의식도 잡히지 않았다. 이것은 나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친구들처럼 불편하거나 괴로운 문제들, 나만의 문제의식을 발견하지 못했다. 왜 안 되는 걸까? 결국 나는 예정된 합평시간까지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뭔가.. 2019. 10. 17.
[소세키의 질문들] 『태풍』 외톨이라도 괜찮아 『태풍』 외톨이라도 괜찮아세상과 섞이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품격이 다른 외톨이 여자가 혼자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다면? 거기다 소주까지 곁들인다면? 무슨 몹쓸 사연이라도 있는지 힐끔거리는 사람들의 눈길에 뒤통수가 뜨끈해지곤 했다. 예전과 달리 언제부터인가 혼자 밥을 먹으면서 찍은 사진들이 SNS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아한 식당에서 고급스러운 음식을 놓고 시크하게 고독을 즐기는 설정 샷들은 혼자라서 여유 있고 행복하다고 과시하는 듯하다. 21세기의 달라진 풍속도로 꼽혔던 ‘혼밥’과 ‘혼술’은 어느덧 식상할 지경이 되었다. 사람들이 끝없이 페이스북과 유투브에 연출하는 멋진 나만의 삶은 외톨이가 되는 것이 두렵다는 웅얼거림으로 들린다. 사실 외톨이라는 말에는 평균적인 삶과 멀어지는 초조함과 외로움, 부적.. 2019. 10. 16.
[나는 왜?] 공무원에게 외침 공무원에게 외침 많은 청년들이 직업으로 공무원을 선택한다. 30년 전 청년이었던 나도 공무원을 직업으로 선택했다. 때론 나에게 주어진 일이 부당하다는 생각도 했고 인정받지 못한 일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정해진 위치에 맞는 일을 하면서 관료조직의 유전자를 몸에 잘 장착시키고 있었다. 위계나 나이로 따져본 나의 현재 위치는 상위 5% 정도이다. 이렇게 조직에서 연차가 쌓이고 부터는 개인적인 불만도 줄어들었다. 그런데 작년 연말 나의 안정된 생활패턴에 금이 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새로 취임한 수장이 자신과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주기 위해 나와 또 한 명의 여성 공무원에게 일방 전출발령을 내면서 티오를 만들었다. 나는 그 일을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모욕감까지 느꼈다. 폐쇄적.. 2019.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