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에서 온 편지8 [마산에서 온 편지] 지구별 여행자들 지구별 여행자들 강가에나무(마산토박이)친구 어머니가 입학 선물로 주신 과일나라 로션을 꼼꼼히 바르고, 어디선가 물려받은 교복을 말끔히 다려입었다. 시간 절약을 위해 기찻길로 걸어가기로 했다. 양 선로를 잇는 오래된 침목에 구두가 닿을 때마다 귀에 거슬리지 않을 만큼의 또각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경쾌하게 들려왔다. 아버지가 구두약으로 닦아주신 덕분으로 새 구두의 둥근 앞코에 은은한 광이 났다. 그 모습이 흐뭇해 기찻길을 걷는 내내 시선은 온통 구두 앞코를 향해 있었다. 기찻길에서 내려와 고려시대 원나라 군사들이 팠다는 우물 몽고정을 뒤로 하고, 오르막길을 올라 학교로 왔다. 고등학교 입학식이 있던 날이다. 보통 인연은 아니었는지 나를 성당으로 인도해 준 뒷집 친구와 같은 학교에 입학해 한 반이 되었다. 그.. 2026. 9. 7. [마산에서 온 ]성지에서의 날들 성지에서의 날들강가에나무(마산토박이)다음 생이 있다면 다시 여자로 태어나 성지여고에서 그때의 친구들, 선생님들과 함께 지내는 것.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품어 온 소망이자 누가 물어도 지체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는 오랜 바람이었다. 등굣길엔 무학산이, 체육관에서 연못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앉으면 멀리 아파트들 사이로 호수 같던 바다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던 성지여고. 학교로 오르는 좁고 가파른 길에 줄지어 선 오래된 벚나무들은 봄이면 연분홍 꽃잎을 무더기로 피워올려 우리의 등굣길을 밝혀 주었다. 지금은 곳곳에 학교들이 생겨났지만 예전에는 산복도로에 고등학교가 밀집되어 있어, 인문계 여고 세 곳과 남고 두 곳이 반경 1.5km 정도 안에 모여 있었다. 본관 현관의 희고 육중한 기둥이 인상적인 마산여고와 울창한.. 2026. 8. 10. [마산에서 온 편지] 그늘진 마음에 비치던 햇살 그늘진 마음에 비치던 햇살강가에나무(마산토박이)이른 봄 목련꽃이 피어오르고 보랏빛 등나무꽃 한창이어도, 사루비아 붉은 꽃이 달콤한 꿀 건네주고 한겨울 사철나무가 싱그러움을 전해주어도 집안 깊숙이 드리워진 그늘은 좀처럼 걷히지를 않았다. 며느리가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하면 시어머니는 방을 소제하고, 며느리가 빨래를 하는 동안 시어머니는 마당을 쓸었다는 다정하고 사이 좋던 고부지간, 아무리 생각해도 며느리가 떠난 까닭을 알 수 없으셨던 할머니는 야속함이 뒤엉킨 그리움으로 남은 세월을 보내셔야 했다. 이상함을 감지한 누군가의 귀띔에도 그럴 리가 없다며 크게 화를 내신 아버지의 믿음은 이내 배신감과 절망감으로 돌아왔다. 상실과 분노, 애증이 한데 섞여 아버지는 속병을 얻으셨고, 좀처럼 웃으시는 일이 없으셨다. 엄.. 2026. 7. 13. [마산에서 온 편지] 씨앗이 뿌려지던 날들 2 씨앗이 뿌려지던 날들 2 강가에나무(마산토박이)친구네 4남매에겐 한 가지 비밀스러운 것이 있었다. 토요일 오후만 되면 다 같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다. 궁금했다. 어딜 그렇게? 그것도 다 같이! 게다가 매주! 가는 것일까? 하루는 그네들을 따라가 보았다. 오르막길을 내려와 기찻길을 지나 부림지하상가를 건너 부림시장을 지났다. 한복집들과 여성복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좁은 골목을 빠져나와 6.25 떡볶이와 토스트를 파는 리어카들 사이로 다시 한참을 내려오니, 시장의 남쪽 끝이자 어시장이 시작되는 큰길을 앞두고 우뚝 솟은 종탑 건물이 보였다. 성당이었다. 친구네 형제들은 매주 토요일, 그곳에 갔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토요일마다 친구네를 따라 성당에 가기 시작했다. 여덟 살이던 해였다. 친구가 .. 2026. 6. 8.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