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씨앗문장256 니체X들뢰즈 - 신은 죽었고 매번 차이나는 것이 되돌아 온다 니체X들뢰즈 - 신은 죽었고 매번 차이나는 것이 되돌아 온다 인생의 그 어떤 순간도 동일하게 반복되지 않는다. 이 사실이 생生을 지탱하는 게 아닐까? 동일자가 매번 그대로, 동일하게 되돌아 온다면……, 지루해서 견디지 못할 것이다. 매번 동일하게 되돌아온 신이 죽어버린 것처럼. 여하간, 그렇게 다른 것들이 되돌아온다는 것은, 세계의 저변에 '생성'이 놓여있음을 반증한다. '희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생성' 때문에 희망을 갖곤한다. 나 스스로가 (이전과) 차이나는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변화가 원리적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희망'에 기대지 않고 '허무'에서 벗어나는 법을 알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건 차차 익혀가기로 하자. 들뢰즈가 만든.. 2019. 12. 30. 미셸 푸코 『말과 사물』 -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놓은 얼굴처럼 사라지기를 미셸 푸코 『말과 사물』 -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놓은 얼굴처럼 사라지기를 그 유명한 『말과 사물』(미셸 푸코)의 마지막 문장이다. 한 문장이 네 줄에 걸쳐 있을 만큼 복잡하지만, 결국 요지는 하나. '배치'가 바뀌면 모든 게 바뀐다는 뜻. '인간'은 스스로 '인간'임을 자각한다. 그리고 '인간'이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과 같았다고 믿고 있다. 『말과 사물』은 그러한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자각이 사실은 특정한 배치의 산물임을 밝힌다.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주체로서의 '인간'은 발명(또는 발견)되었다. 굳이 말하자면, 영 유치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나는 발명(발견)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내 삶에 거의 100%(는 뻥이고 구십 몇 퍼센트 쯤) 만족하기는 하지만, 가끔 '인간'으로 사는 것이 너무 .. 2019. 12. 23. 프리드리히 실러, 『미학 편지』 사회의 두가지 극단 프리드리히 실러, 『미학 편지』사회의 두가지 극단 티비 뉴스를 볼 때나, 인터넷 기사의 댓글을 볼 때나, 혹은 주말 광화문을 걷게 될 때, 내가 지금 어느 세상에 살고 있는지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한쪽에선 이 나라가 사회주의가 되었다며 관련자를 모두 잡아죽여야 한다고 하고, 길 건너에선 야만스러운 자본주의를 성토한다. 도대체 여기는 어딘가? 나는 그게 그렇게 혼란스럽기도 하거니와, 양쪽 어느 주장도 딱히 내 생활, 일상을 '진짜로'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그런 말들이 내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역사는 나랑 상관없이 알아서 갈 것이다. 나는 차라리 내 생활을 걱정한다. 아침마다 잠이 쏟아지고, 밤마다 잠들지 못하는 내 생활 말이다. 미학.. 2019. 12. 16.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진보를 멈추는 혁명?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진보를 멈추는 혁명? 시간을 '과거·현재·미래', 아니 더 정확하게는 '과거→현재→미래'로 분절하고, 뒤에서부터 앞으로 진행해 간다는 이미지, 그 이미지와 '기차'의 은유는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는가. 아마도 그래서 '기차'는 근대의 상징물이 되었으리라. 요약하자면, 근대의 시간은 결코 후진하지 않는다. 어쩌면 '후진하지 않는다'는 말 속에조차 근대적 시간관이 섞여있다. 여하간, 세계는 그렇게 멈추지 않고 전진한다. 달리고, 달리다보면, 점점 빨라진다. '생산성의 향상'이란 그 빠름을 점잖게 표현할 말인 셈이다. 어디선가 읽기를 지구의 모든 사람이 이른바 '중산층'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지구가 3.5개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혁명'은 모두가 '중산층'의 삶을 누리는.. 2019. 12. 2.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6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