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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이야기 ▽135

한무제, 제국의 여름을 보여주마! (3) – 1 한무제, 제국의 여름을 보여주마! (3) – 1흉노를 몰아내고 사방천리 영토의 주인이 되다! 외부로 향한 무제의 시선 『한서』에서 무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반고는 무제의 치세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본기와 열전파트에만 무려 50%에 달하는 비중을 할애했다. 이러한 한서의 구성은 마치 반고가 유독 무제를 편애한 것만 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것은 반고의 편애가 아니라 무제치세의 실제다. 실제로 무제치세의 한나라는 온 천하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듯, 영토는 크고 넓었으며 인물은 많았다. 게다가 공적은 또 어찌나 많았는지 ‘육경의 지위 확립, 교사정비, 정삭 개정, 역법 개정, 음률의 표준 지정 및 봉선제도 확립, 태학 확립, 백신에게 제사, 주(周)의 전통을 잇는 문장과 제도 정비’등 어지간한 황제 2.. 2020. 6. 10.
한무제, 제국의 여름을 보여주마! (2) – 유학은 어떻게 제국의 철학이 되었나? 1편 읽기한무제, 제국의 여름을 보여주마! (2)– 유학은 어떻게 제국의 철학이 되었나? 유학이 정착할 수 없는 형세 두태후가 붕어한 이듬해인 원광 1년, 한무제는 현량천거(추천제도)로 유학자인 동중서와 공손홍을 발탁했다. 무제는 이번에도 유학자였다. 주지하듯 무제가 처음 즉위하여 뽑은 인재들은 유학자였다. 그러나 무제 2년에 뽑은 당시 조관, 왕장 등의 유학자들은 두태후의 황로정치를 넘어서지 못하고 전원 침몰한 바 있었다. 당시 유학은 왜 황로정치를 넘어서지 못했던 것일까? 숙손통이 漢의 국가 예의를 제정하여 태상에 임명되었고 함께 제정에 참여한 여러 제자들은 모두 인재로 선발되었는데, 고조는 유학의 쇠퇴를 탄식하며 학문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전쟁이 계속되었고 천하가 완전 평정된 뒤에도 학.. 2020. 4. 1.
한무제, 제국의 여름을 보여주마! (1) 한무제, 제국의 여름을 보여주마!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무제(효무황제)다. 본명은 유철. 16세에 즉위하여 54년간 재위한 군주로 역사의 ‘역’자를 모르는 사람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중국 한나라의 유명한 황제다. 그는 무엇으로 유명해진 것일까? 한나라의 차서는 문경지치의 태평성대라 불리는 봄을 딛고 여름으로 향한다. 무제가 유명해진 것은 그가 한나라의 여름, 이른바 전성기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중국대륙에서 명멸했던 수많은 왕조의 전성기를 뒤로 하고, 유독 무제의 전성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제가 한나라의 여름을 이끌면서 보여준 강력한 황권중심의 리더십 때문이다. ‘황제라면 누구나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절대지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 2020. 3. 4.
[한서라는역사책] 오초칠국의 난, ‘게임’이 불러온 ‘대재앙’ 오초칠국의 난, ‘게임’이 불러온 ‘대재앙’ 도화선, 게임과 원한 감정 오나라 왕 유비는 초나라, 조나라, 교서, 제남, 치천, 교동의 여섯 나라와 연합해서 반란을 일으켰다. 앞서 언급한 바, 반란이 일어난 직접적인 원인은 조조가 제후들의 영지를 삭감하는 정책을 급진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영토가 줄어들면 세력이 축소되니, 제후국의 왕으로 불안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모든 사건이 그렇듯 오나라 반란의 원인은 이처럼 간단하지 않다.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난 원인과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는 많은 곡절이 얽혀 있다. 그 사연들의 저변에는 ‘감정’이 얽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주체못할 감정의 선분들 때문에 끝내는 죽거나 반란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었다. 오왕 유비는 고조 둘째 형의 아들이다. 고조는 한.. 2020.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