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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퍼거는 귀여워

[아스퍼거는 귀여워] 경계에 선 아이, 장애등록을 해야 하나요?

by 북드라망 2025. 11. 18.

경계에 선 아이, 장애등록을 해야 하나요?

 

_모로
일리치 약국과 로이약차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고, 약차를 손질한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것과 만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

 

 

“어머님, 혹시 감자가 특수교육대상자이거나 장애등록을 했을까요?”


4학년 초, 선생님과의 첫 대면 상담이었다. 3학년까지는 코로나 시절이라 전화 상담으로 대신했었다. 나는 괜스레 긴장한 채 담임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사실 면담 전에도 몇 번 전화 통화로 감자의 상황을 설명한 바 있었다. 나는 선생님과 대화할 때 최대한 솔직하게 말하려고 한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 달라고, 가정에서 최대한 도와보겠다고. 감자는 인복이 아주 좋아서 그 시기마다 꼭 필요한 사람들을 만났다. 담임 선생님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감자를 도와주셨고, 소외되지 않도록 보살펴 주셨다. 그래서인지 나름대로 꽤 오픈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선생님들도 편하게 말씀해주시는 듯했다.

그러나 장애등록이라니.

나는 그때까지 장애등록이나 특수교육대상자 같은 걸 진지하게 고려해 본 적이 없었다. 아이가 아스퍼거 진단을 받았고, 사회성에 문제가 있으며, 끝도 없이 이어지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디에 뭔가 ‘도장’을 찍듯 장애등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다. 아니,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 감자가 그걸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거다. 그렇다면 도대체 내가 생각하는 ‘장애’의 기준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감자는 늘 경계에 서 있는 아이였다. 아주 어려운 것도, 그렇다고 아주 괜찮은 것도 아닌 상태. 학교에서는 분명 ‘다르게’ 보이지만, 누군가는 ‘그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니에요?’라고 할지도 모른다. 성장의 한고비를 넘어서기가 매우 힘든, 하지만 결국은 넘어서긴 하는 아이다.

“감자가 수업 시간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어서요.”


이건 또 무슨 말일까. 나는 감자가 사회성에는 문제가 있지만, 아직까진 공부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히려 인지 능력이 좋아 보여서 4학년부터 영재학급에 지원해볼까 생각했을 정도다. 이렇게 세상물정 모르는 엄마라니. 내가 주저하자 선생님은, 3학년 때까지 거의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던 점, 복도에 나가 있는 날이 많아 감자 전용 의자까지 있었다는 점, 착석이 잘되지 않고 교실을 돌아다니는 일이 많다는 점 등을 이야기해주셨다. 아무도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았던 문제였다. 물론 학교를 자주 빠지긴 했지만,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

“선생님, 특수교육대상자 등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선생님은 기다렸다는 듯 미리 프린트해놓은 자료를 건네주셨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선생님의 마음이 고마웠다. 꽤 번거로운 일일 수도 있었는데, 먼저 이야기해주시다니.

“특수교육대상자로 등록하면 감자에게 더 좋은 부분이 많을 거예요.”


나는 집에 가서 자세히 읽어보겠다고 하고 자료를 받아왔다.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특수교육대상자(이하 특교자)로 선정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 듯했다. 특교자로 선정되면, 특수반이 있는 경우 특수교사의 지도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연 2회 개별화 교육 회의가 진행되고, 한 달에 15만 원 정도의 치료 바우처가 나와 지정된 센터에서 언어치료나 놀이치료 등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특교자가 되길 바라지만, 지원은 한정되어 있어 누구나 선정되는 건 아닌 듯했다. 적극적인 선생님이 도와주실 때 등록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웩슬러 검사, 사회성숙도 검사, ADOS 등 서류를 준비했다.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이것저것 작성해서 제출했고, 나머지는 선생님께서 처리해주셨다. 참 감사하다.

몇 주 뒤, 교육청에서 전화가 왔다. 왜 특교자 신청을 했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지금 학교에 특수반이 없는데 전학할 예정인지 등을 물었다. (감자가 6학년이 되었을 때, 특수반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은 서류가 미비하다는 얘기도 한다는데, 나는 그런 말도 없이 간단히 통화가 끝났다. 그리고 얼마 후, 학교에서 밀봉된 서류봉투를 받았다. 특수교육대상자 선정 통지서였다. 나는 그 종이를 받고 아주 조금 울었다. 우리 아이가 그만큼 명확한 어려움을 지니고 있었음을 처음으로 실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장애등록 문제가 남아 있다. 특교자 등록은 교육청을 통해 교육 지원을 받는 제도이고, 장애등록은 보건복지부를 통해 국가 차원의 복지 혜택을 받는 절차다. 앞이 ‘도움을 받는’ 쪽이라면, 뒤는 ‘증명하고 인정받는’ 쪽에 가깝다. 장애등록은 본인이 장애를 ‘증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잔인하다. “몇 점까지는 장애고, 그 이하는 아니다”라는 식. 아이가 겪는 어려움은 사회적 수치로 재단되고, 오히려 더 나쁘게 나오길 바라게 되니까. 예컨대 CARS라는 자폐 진단 척도에서 감자는 29.5점을 받았다. 15~29.5점은 자폐 아님, 30~36.5점은 경증, 37점부터는 중증 자폐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29.5점인 감자는 자폐가 아닌 걸까?

 


  

자폐 스펙트럼이란 뭘까?
감자의 검사 결과지를 처음 받았을 때, 거기엔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진단명이 적혀 있었다. 처음 보는 단어는 아니었지만, 막상 내 아이의 이름 옆에 붙어 있는 걸 보니 낯설고 무거웠다.

알고 보니 아스퍼거는 더 이상 독립된 진단명이 아니었다. 2013년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아스퍼거, 자폐, 전반적 발달장애(PDD-NOS) 등을 하나로 통합해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로 묶었기 때문이다. 즉, 지금은 모두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하나의 진단 범주 안에 포함된다. 자폐 스펙트럼은 말 그대로 매우 넓은 범위를 의미한다. 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아이도, 말을 잘하지만 친구 사귀기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도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감자는 후자에 가까웠다. 말도 잘하고, 책도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에선 나보다 더 논리적이고 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에서도 ‘아스퍼거’에 해당한다고 보았고, 진단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아스퍼거의 특징은 다른 자폐 범주와 달리 언어 발달의 지연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감자도 상황에 맞는 언어 사용이나 사회적 맥락 파악엔 어려움을 보이지만, 말하고 읽고 쓰는 능력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 지능도 평균 이상인 경우가 많고, 자기만의 관심사에 몰두하는 성향이 강한 것도 주요 특징 중 하나다. 그래서 아스퍼거를 ‘고기능 자폐’라고 부르기도 한다. 흔히 ‘고기능’이라는 말을 ‘천재’와 연결하지만, 그건 오해다. 감자처럼 일상생활의 기본은 가능하지만, 여전히 많은 지지와 구조화된 환경이 필요한 상태를 말한다. 어느 정도 자조는 가능하지만, 사회적 맥락에서는 계속 어려움을 겪는다.

나는 아직도 진단서에 남아 있는 ‘아스퍼거’라는 단어를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사실 진단코드(F84.5)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의료기관에서도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나도 ‘자폐’라는 단어보다 ‘아스퍼거’라는 표현에 조금은 덜 위축되는지도 모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본 이미지 때문일 수도 있고, ‘우리 아이는 조금 다를 뿐’이라는 위안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자는 자폐 스펙트럼 안에 있다. 자라면서 어떤 부분은 또렷하게 드러나고, 어떤 부분은 보통 아이들과 점점 더 차이가 나기도 한다.

 


장애 등록이 필요한 이유
감자가 어릴 적, 상담을 다니다가 한 센터 원장에게 “어릴수록 장애등록이 쉽다”고 들었다. 나는 그 말에 분개하면서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았는데, 그때는 ‘장애’라는 단어가 너무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했던 나는 ‘조금 다른 아이’를 숫자에 맞춰 억지로 등록해야 한다는 말로 들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감자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자라면서 어떤 부분은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 반면에 어떤 부분은 다른 아이들과의 격차가 더 커지기도 한다. 나이가 들고, 키가 크고, 자기표현이 늘어나면서, 장애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어리니까’라는 말로는 더 이상 감출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부딪히고, 상처도 받을 것이다. 감자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막’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예전엔 장애등록을 꼭 ‘해야 하나?’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가능할까?’, ‘장애등록이 되지 않으면 어쩌지?’가 고민이다.

특히 남아인 경우 군대 문제가 겹쳐 더 복잡하다. 자폐 아동의 3/4이 남아라고 알려져 있는데, 군대 면제 사유로 장애등록을 원하는 부모들도 많기 때문이다. 보통 중증 장애 등급이 나오면 군 면제, 경증이면 4급 사회복무요원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많은 부모들이 이 시기에 장애등록을 고민한다. 그만큼 청소년기 남아의 장애 등록은 더 빡빡하다. 하지만 여기서도 철없는 엄마의 생각이 작동한다. 내가 군대 시스템을 잘 몰라서 그런지, 감자가 갈 수만 있다면 사회복무요원으로 보내고 싶다. 그나마 누릴 수 있는 조직 생활이 거기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서관이나 동사무소에서 사회생활을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 말을 들은 남편은 단호하게 말했다.

“군대는, 안 갈 수 있으면 안 가는 거야.”

 


감자에게 자신의 장애를 이야기해야 하는 어려움

이러저러한 고민의 시간이 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되든 안 되든 특교자 신청할 때 장애등록도 같이 진행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과거는 돌이킬 수 없으니, 후회해도 소용없다. 두렵고 받아들이기 힘든 마음으로 등록했다면, 그 나름의 어려움이 또 있었을 것이다.

 

다시 장애등록을 고민하는 지금, 먼저 감자에게 자신의 장애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게 순서니까. 감자는 일단 인식이 고정되면 바꾸기 어려운 면이 있다. 예를 들어서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음식은 형태가 변해도 ‘절대’ 먹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자신의 장애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어떻게 하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게 할지가 가장 큰 숙제다. 감자와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 나눈 뒤, 가능하다면 장애등록도 해보고 싶다.

 

하... 그런데 세상사 쉬운 일이 하나도 없는 게, 이렇게 단단히 마음먹고 다니던 소아정신과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솔직하게 말씀해주셨다. 감자가 장애등록을 하기엔 지능이 높기 때문에 (지능이 높은 것도 장애 등록의 걸림돌이 된다. 사회성과 지능이 상관 관계가 있을까?), 대학병원으로 가보는 게 좋겠다고. 개인 병원의 진단서로는 좀 힘들 수도 있다고 조언하셨다. 하지만 대학병원은 예약 자체가 어려운걸? 3년 전에 예약한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초진 날짜가 아직 2년이나 남았다. (무려 5년의 대기!!) 2년은 금방 지나갈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별 수 없이 생각 날 때 마다 근처 대학병원 소아정신과에 초진 예약 전화를 돌려보는 수밖에.

그 무엇도 쉽지 않다. 게다가 감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넬 수 있을지, 아직은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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