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이름의 타인
모로(문탁 네트워크)
일리치 약국과 로이약차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고, 약차를 손질한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것과 만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
‘아스퍼거는 귀여워’ 연재를 시작한 지 일 년 반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분이 글을 읽어주시고 피드백을 보냈다. 분명 기분 좋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딱 하나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 있었다. “남편은 뭐래?” 남편? 곤란한 질문이다. 언제부턴가 “남편 이야기도 써야 하는 거 아냐?” 라는 의견도 들렸다. 씁… 그래.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여태껏 미뤄오던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분명 감자가 자라나는 데 아빠의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정말 미미하다. 감자 목욕 담당이긴 했지만, 새벽에 12번을 깨며 울어도,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감자가 똥을 싸면 코를 막으며 도망갔다. 감자랑 둘이 있는 시간을 어떻게 하지 못해서 매번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지 못했고,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없었다. 감자가 조금 커서는 둘이 여행도 가곤 했지만, 근본적인 관계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게 욕하고 끝낼 단순한 문제는 아니지 않나. 물론 주변인들에게는 남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하지만 그 불만들이 대부분의 사람에게도 있는 일상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쓰다 보면 답이 나올까?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일단 나와 남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우리는 (모두 그렇겠지만) 너무나 다른 사람이다. 만들어진 재료부터 다르다고 할까. 단순하게 MBTI만 봐도 그렇다. 저쪽은 ESTJ, 나는 INFP다. 놀랄 만큼 단 한 글자도 같지 않다.
남편은 주도면밀하고 활동적이며, 밖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인정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캘린더에는 일정이 빡빡하고, 한 치의 시간 낭비도 허용하지 않으며, 모든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기록 중독자이기도 하다. 술도 좋아하고, 먹성도 좋고, 덩치도 크고, 단순하다. 스포츠를 좋아해서 철마다 돌아오는 야구는 빠지지 않고 관람하고, 요즘엔 자전거에 푹 빠져 주말마다 라이딩에 한창이다. 정확히 몇 개인지 알 수 없지만 동호회도 많고, 모임도 많고, 하루, 일주일, 한 달이 너무 바빠 ‘저게 가능해?’ 싶은 스케줄이 줄줄이다. 가만히 있으면 병이 난다나?
장점도 많다. 열정적이다 보니 하나를 시작하면 지긋지긋할 만큼 끝장을 보고, 에너지가 많아서 남들의 곱절의 인생을 살아낸다. 새벽까지 술 마셔도 아침에는 재깍 일어나 출근하기 때문에, 아침에 깨워준다든지 아침밥을 챙겨준다든지 자잘하게 손가는 일이 없다. 예민하지 않아 치킨에 맥주만 시켜줘도 만족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나와 감자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자기만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이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인간인가. 나는 언뜻 보면 밝고 에너지가 많아 보이지만, 사실 다른 사람들의 발꿈치에도 못 미치는 작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밖에서 실컷 떠들고 나면 혼자 수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멍하게 누워있거나, 책을 읽거나, 피아노를 치는 등의 충전 시간이 꼭 있어야 한다. 자는 걸 좋아하고, 움직이는 걸 싫어하며 시끄러운 것은 질색이다. 그래서 혼자 집에 있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장점이라면 눈치가 빨라서 웬만한 사람들과는 잘 지낸다는 거다. 많은 일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고(물론 빨리 하고 쉬기 위해서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사실 잡생각이 많은 몽상가라 많은 일들이 발현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혼자 내부로 수렴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몇 명의 작은 관계에서 만족을 얻고 싶다. 집에서 소소하게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오늘 하루 뭐 했는지 이야기하고, 재미있었던 책이나 영화를 서로 나누고, 맛있는 걸 함께 먹고 싶다. 같이 사는 사람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알아가고 싶다. 그러나 남편과는 그런 것들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원하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인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삶은 삐걱댔다. 톱니바퀴처럼 착착 굴러가던 하루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조금씩 사소한 것들이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아닌 것 같은 느낌,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가까웠던 둘 사이의 거리는 한 번 방향이 틀어지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멀어졌다. 누구의 잘못이라 할 수도 없는 이유로.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분명 우리에게도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다른 점은 끌리기 마련이니까. 아직도 기억나는 건 둘이 처음으로 태국 여행을 갔을 때였다. 지금이야 태국이라면 지긋지긋하지만(감자 아빠는 태국을 너무 좋아해 몇 번을 갔는지 세보기도 힘들 정도다) 그때는 ‘와, 이거 잘 맞는데?’ 라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점은 여행이라는 하나의 ‘미션’ 앞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계획적인 사람과 무계획적인 사람은 여행 내내 일정으로 싸울 일이 없다. 한 사람이 계획한 걸 다른 사람이 따라가면 되니까. 워낙 꼼꼼한 사람이라 대부분의 경우 그가 계획한 것들은 평균 이상의 선택이었다. 즉흥적인 내가 여행 중간에 ‘계획하지 않은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로컬 맛집이나 작은 프리마켓 같은 곳을 찾아다녔다. 그땐 나도 술을 즐겼던 터라 저녁이면 맛있는 음식에 맥주를 함께 마시며 흥청망청 즐거웠다. 나는 정적인 여행을 해왔는데, 같이 가면 익스트림한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았다. 보트를 타고 동굴을 들어가고, 스노클링을 하는 등의 그런 것들. 혼자서는 절대 안 할 것들. ‘아, 이런 것도 재미있구나.’ 하는 새로운 발견들이 좋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멀어지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신혼 초기에 ‘쿨병’에 걸렸던 것 같다. 나는 상대에게 뭘 강요하지 않는 게 멋져보였다. 사실은 내가 강요받기 싫어서, 그러니까 일종의 쿨한 척이었을 뿐이다. 신혼 초부터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았지만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 정도의 아내가 어디 있느냐’고 말하기를 좋아했다. 실제로도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고,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점점 더 밖으로 나도는 시간이 늘어났다. 괜찮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자 그 ‘괜찮지 않음’은 분명한 문제가 되었다. 게다가 장애를 가진 아이지 않나. 너무나 버거운 문제였다.
돌이켜보면, 그때 왜 요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든다. 무심함의 정도가 지나치긴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끊임없이 요구했다면 뭔가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이제서야 해본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삶이 너무 버거워서 뭔가를 요구할 힘이 없었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은 외면했고, 가장 중요한 것들로부터 도망쳤다.
거기엔 자존감의 문제도 있었다.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 살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 내 스스로 전업주부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고,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육아나 살림 모두 내가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나 혼자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거만함과 자학 사이에 서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아빠와 함께 키워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대며 모든 걸 끌어안았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남편이 육아를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모든 걸 해낼 생각이었으면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자꾸 기대고 싶었다. 그러니 모든 고통의 화살은 남편에게로 향했다. 내 생에서 그때만큼 뾰족했던 시절이 또 있었을까. 늘 화가 나 있었고, 늘 우울했다. 매일 밤 ‘왜 이토록 고통스러운 나를 방치하는 거야. 힘들 때 함께하지 않는 거야.’라며 분노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때 풀지 못한 분노는 아직도 유효하다. 점점 옅어지긴 하겠지만, 평생 지워지진 않을 것 같다.
아이를 통해서 남편을 이해하는 방법
어찌되었든, 그 시절은 지나갔다. 나는 나름의 방법으로 긴 터널을 통과했고, 지금은 어느 정도 나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나의 회피를, 감자의 장애를, 남편의 무심함을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하니, 아이를 통해서 남편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사회적인 인간이라고 해서 모두가 관계의 밀도가 높은 건 아니다. 마음을 나누는 작은 무언가가 결여된 사람이 있다. 남편에게서 아스퍼거의 특성과 유사한 자기 몰두와 폐쇄성, 이런 것들을 발견했다. 물론 남편은 전혀 장애의 범주가 아니다. 하지만 늘 남편과의 관계에서 뭔가가 빠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 상대의 기분이나 기호를 잘 읽지 못하는 사람, 그런 것들이 감자와 겹쳐보이기도 했다.
그건 의도의 문제가 아니고, 나를 미워해서 하는 행동도 아니다. 일부러 무심한 것도 아니다. 정말로 그 부분이 없는 거다. 다정한 마음이 결핍된 사람, 정신적인 교류가 중요한 나에게는 특히나 크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은 바뀌지 않아, 그냥 받아들이는 거야’라고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게 내 한계를 넘어버린다면? 과연 계속 함께할 수 있을까?라고 되묻는다. 결국은 ‘내 한계는 어디이고, 우리는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오늘도 나는 고민한다. 버텨야 하는 건지, 멈춰야 하는 건지. 이게 답이 있긴 한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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