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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퍼거는 귀여워

[아스퍼거는 귀여워] 감자의 똥 연대기

by 북드라망 2024. 10. 16.

감자의 똥 연대기

 

감자는 정말, 정말정말정말 오줌, 똥을 못 가렸다. 만 3살이 지나, 한국 나이로 5살이 되었는데도, 기저귀를 못 뗐으니 말 다 했지. (네이버에 쳐보니 ‘기저귀를 떼는 시기는 18개월에서 24개월이 적당하다.’라고 쓰여있다) 발육이 남다른 감자에게 맞는 기저귀 사이즈가 더 이상 없어서, 더 큰 기저귀를 찾으려면 성인용으로 가야 할 판이였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일단 벗기고 팬티를 입혀 놓으면 자신도 축축한 것을 알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떼게 된다나? 그 말을 믿고 덜컥 어린이집 적응과 배변 훈련을 동시에 해버리자는 안일한 생각을 해버렸다. 어린이집 적응도 힘든 마당에 배변 훈련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나도 울고, 감자도 울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마도) 울었다.

기저귀 벗기 강제집행을 시행한 후, 어린이집에서 하루 평균 2~3번 오줌을 쌌다. 여벌 바지와 팬티를 수도 없이 챙기고, 심지어 바지가 모자라는 날은 친구 것을 빌려 입고 오는 일도 허다했다. 외출 시에는 무조건 화장실만 보이면 억지로 오줌을 뉘었다. 내가 신경 써서 화장실을 보내면 괜찮지만, 조금만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거나, 내가 집안일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실수했다. 외출도 불안하고, 늘 둘 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도 늘상 실수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줌은 나았는데, 똥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갈수록 똥 누는 걸 너무 무서워한 나머지, 나중에 가서는 변을 5일에서 일주일 정도에 한 번 눴다. 똥은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져서 더 누기 힘든 악순환.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그럴수록 둘의 관계는 악화되어서, 나중에는 한 번에 싸지 못하고 똥을 하루에 10번씩 찔끔찔끔 나눠 싸는 불상사가 발생하기까지 했다. 맙소사! 하루에 팬티 10장을 빨아야 한다니. 진짜 진절머리나게 힘든 나날들이었다. 혼내도 보고, 달래도 보고, 책도 읽어주고, 영상을 보여주고 별의별 방법을 다 써도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살펴보는 똥 누는 것에 대한 깊은 고찰, 감자는 왜 배변을 어려워 했는가. 단순히 먹고 싼다고 생각하는 것에도 이런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배가 아픔을 느낀다.
어느 정도에 화장실에 가야 하는지 판단한다.
화장실에 바지를 내리고 앉는다.
힘을 준다.
힘을 주면서 동시에 항문을 느슨하게 만들어서 똥을 밀어낸다.
똥을 닦고 뒤처리한다.

 

서로 연계된 이 일들은 긴밀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이 사이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사실. 선택과 집중의 여러 단계가 감자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였다.

특히나 맨 첫 번째 관문, 어느 정도에 화장실을 가야 하는지 판단하는 문제부터 걸렸다. 감자 생각에 정말 똥이 나올 확률 99% 정도는 되어야, 정말 폭발 직전에 이르러서야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미 99%일 때는 배가 너무 아파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화장실에 가는 도중에 실수하기도 했다. 집에 있다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변의는 어디에서나 온다. 밖에서 실수한다면 아찔하다. 그리고 우리는 알지 않는가. 똥이 끝까지 차오르고, 급격한 변의가 생겨서 등 뒤에 식은땀이 흐르다가도, 그 시기를 살짝 벗어나면 다시 평온기가 찾아온다는 것을. 그러니까 다시 찾아온 평온기의 똥들이 쌓이고 쌓여서 딱딱해지는 거지. 정말 심할 때는 배가 남산만 하고, 안색까지 시커멓게 변할 정도였다. 배는 계속 꾸륵거리고…. 정말 울면서 똥을 쌌다.



그사이에 좋다는 유산균, 한약, 마사지 오만가지 민간요법(?)을 시행했다. 그것과 동시에 나는 감자에게 이야기할 때 아픔을 수치화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가 조금 아프고 많이 아프고의 정도는 개인적인 수치라 감자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감자는 고통에 둔감한 편이었다) 배 아픈 정도를 퍼센트로 나누어서 주기적으로 상기시켰다. 이 정도면 50%, 이 정도면 80%, 이 정도면 90%인데, 적어도 85% 정도가 되면 화장실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90% 넘어가면 늦다고 끊임없이 아픔을 쪼개어서 이해시켰다.

그리고 동시에 힘을 주면서 빼기 연습을 시켰다. 엄마가 힘을 주라고 하니까 아이는 정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힘을 줬다. 하지만 똥구멍은 닫혀있는 상태. 이걸 정말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할까. 밀어내면서 동시에 느슨하게 풀어야 하는 이 미묘한 진리를 이해시키는 것이 두 번째 관문이었다. 길고도 지난한 과정..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정말 느리지만 감자는 자기의 속도대로 배변 훈련을 진행해 갔다. 그러고는 어느 순간! 감자는 삶의 위대한 진리를 이해했다. “엄마! 드디어 똥구멍에 힘을 주면서 힘을 빼는 걸 알 거 같아요!” 그 이후로 더 울지 않고 화장실을 다녀왔으며, 똥을 싸는 텀도 점점 줄어들었다. 지금은 배가 아프지 않아도 이틀에 한 번 (강제적이지만) 화장실을 가서 밀어내고, 혼자 씻고 나오는 패턴을 유지 중이다. 진짜 다시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하네. 만세!!

배변과의 전쟁이 4살 무렵에 시작해서 9살에 마무리되었으니, 장작 5년이 넘는 세월이었다. 처음에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미래의 내가 살짝 “야, 너 그거 알아? 지금 이거 5년 뒤에나 해결돼!”라고 귀띔이라고 해주었다면 달랐을까. 혹시 내가 마음이 준비가 덜 된 감자에게 억지로 강요를 해서 더 오래 걸린 건 아닐까. 이렇게 오래 계속될 것을 그때 알았다면, 일 이년 기저귀를 더 채우는 것이, 하다못해 어른 기저귀를 채우는 것이 무엇이 대수였을까 싶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겠지. 사람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까.

다행인 것은, 나는 감자와 함께 아직도 성장 중이다. 지독하게 길고 길었던 똥과의 전쟁을 치르다 보니, 다른 것들도 조금은 감자의 속도에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지금 감자의 가장 큰 화두는 사회성이다. 아스퍼거 아이들이 그렇듯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다. 특히나 어른들은 자기에게 다 맞춰주니 어느 정도 대화가 되는데, 또래 친구들은 그렇지 못하니 어려워 했다. 더 어릴 때는 내가 나서서 엄마들 모임도 만들었다. 몇몇 또래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다른 집에 놀러 가기도 하면서 친구를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그래도 저학년 때는 어느 정도 엄마의 노력이 가능했지만,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그런 것도 어려워졌다. 이제 더이상 아이들은 엄마들을 끼고 놀지 않고, 서로 메신저나 게임 등으로 연락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오히려 내 마음이 편해졌다. 이젠 정말 내 손을 떠난 문제구나 싶어서.

언젠가 아이의 사회성 때문에 고민을 토로했을 때, 한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아이마다 부모에게 받고 싶은 사랑의 크기가 서로 달라요. 어떤 아이는 그 그릇이 작아서 금방 엄마의 품을 떠나지만, 어떤 아이는 부모에게 받고 싶은 사랑의 크기가 커서 늦게 떠나는 아이도 있지요. 하지만 충분히 사랑을 주다 보면 언젠가는 그 그릇이 가득 차서 넘치고, 그렇게 타인에게로 흘러갈 겁니다. 이 아이는 엄마를 통해서만 세상과 접촉할 수 있을 거예요.”

 

 



찰랑찰랑. 드디어 물이 넘칠랑 말랑 하는 소리가 들린다. 5학년이 되자, 가끔 친구에게서 웃긴 짤로 가득 찬 이상한 개그의 문자도 오고, 같은 아파트 친구와 집에 같이 오기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친구들이 오며가며 인사를 해주고, 놔두고온 신발 주머니를 챙겨주고, 말을 걸어준다. 서툴지만 감자도 거기에 답하며 인사를 해주는 변화된 모습이 보인다. 너무나 늦은 한 발. 그리고 너무 소중한 한 발을 내딛는 감자. 아직도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겉도는 감자의 모습은 보는 건 어렵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 척해도,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확연하게 다른 아이의 모습을 마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시작을 하기만 한다면, 가기만 한다면 언젠가 성인이 되었을 때 비슷하게 근처에라도 서 있을 수 있겠지. 늘 생각하는 거지만 다행인 건, 우리 감자는 결코 뒤로 가는 법이 없다. 언제나 어떠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자신의 속도대로.

 

글_모로(문탁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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