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탁 네트워크의 일리치 약국에서 근무하시는 모로샘의 연재를 북드라망에서 만나보세요.
모로샘께서는 이제 10살이 된, 조금 특별한 아들을 키우고 계시다고 합니다.
아드님께서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하는데요,
아이와 함께하는 좌충우돌한 모로샘의 일상을 함께 들여다보아요!
"이번에 내가 연재할 글은 평범한 한 여자의 용기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 ‘아스퍼거는 귀여워’라는 제목을 정하는데도 조금 망설였었다. ‘아스퍼거’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이, 사람들에게 이 단어를 제목으로 명시 하는 것이 조금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스퍼거는 우리 아이에게서 사라지지 않을 단어다. 이번 연재를 통해 내가 어떻게 장애와 만났고, 세상에 얼마나 미안해하면서, 또 얼마큼 고마워하면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여행
모로
- 올해부터 일리치 약국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며, 공부와 삶이 연결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항상 궁리중.
포르투갈에 갔다. 한국에서 암스테르담까지 14시간 반을 날아간 뒤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2시간 반을 비행해야 도착할 수 있는 곳. 유럽의 땅끝마을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거리였다. 남편은 일 때문에 여행 후반에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에, 아이랑 둘이 떠나야 했다. 짐도 많고, 환승도 오랜만인 데다, 비행기도 잘 못 타는 쫄보라 이래저래 걱정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파김치가 되어 도착한 숙소에서 짐을 탁 풀고 창문을 열자 아이가 내뱉은 첫마디.
“엄마, 여기 참 평화로운 거 같아요.”
우리가 도착한 포르투갈의 두 번째 도시 포르투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포르투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첫 번째 숙소는, 앞으로는 도우강이 흐르고, 멀리 동루이스 다리가 보이는 낭만적인 뷰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라인으로 평범하고 작은 카페가 3개 있었는데, 단골들이 맥주를 한잔하거나, 간단한 요기를 하러 왔다. 나와 아이는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 카페에서 토스트나 에그타르트를 먹고, 시간 날 때마다 집 앞을 산책했다. 매일 비슷한 길을 걸어 장을 보러 가고, 모루 공원에 앉아서 버스킹을 듣거나 갈매기를 구경했다. 저녁에는 숙소로 돌아와서 한국에서 싸 온 햇반에 김, 혹은 삼겹살을 사서 구워 먹거나 미역국을 먹었다. 포르투의 12월은 영상 5도에서 15도 정도로, 낮에는 꽤 포근하다. 우기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우리가 있는 내내 부슬비가 하루 이틀 정도 내렸을 뿐이었다. 날씨가 좋으면 많은 부분이 너그러워진다. 그렇게 둘이서 평범하고도 특별한 여행을 했다.
사실 이제 만으로 10살이 지난 아이는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이제 키도 제법 크고 덩치도 있지만, 하는 짓이 아이 같다. 포르투에 둘이 머물면서 키작고 어리바리한 동양 여자와 아스퍼거를 가지고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커다란 아기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모르긴 몰라도 동네 사람들에게 한두 번 정도는 이야기가 오르내렸을 터. 아마 우리 둘이 신기해 보였을 테지. 하지만 그 정도였다. 외국에 나와서는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그것만으로도 편안했다. 사실 아이에게 여행은 여태껏 신나는 일이 아니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 아빠를 만나 틈만 나면 해외로 국내로 여행을 다녔지만 아이는 늘 시큰둥했다. 여행지 가서도 밤이면 집에 가고 싶다고 울어댔고, 음식을 가리는 터라 괌에 갔을 때는 삼시 세끼 감자튀김만 먹어대기도 했다. 포르투에서도 물론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챙겨간 한식을 먹었고, 3일 걸러 한 번씩 한식당에 갔다. 하지만 외국 음식은 절대로 먹으려 하지 않았던 예전과는 달리, 현지식을 도전해 보기도 했고, 그중 해물밥은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아이의 시선으로 함께 여행하는 것은 재미있다. 아이는 기호에 대해 관심이 많다. 한국에서 미리 포르투갈어 책을 한 권 구매했는데, 그 책이 브라질-포르투갈어책이어서 걱정을 했다. 브라질어와 포르투갈어는 같은 언어를 쓰지만, 표기가 조금 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포르투갈에 도착하자 자기가 아는 몇몇 단어 – 오렌지, 사과, 포도 같은- 를 발견하고 기뻐했다. 길을 걸으면서는 성당보다는 한국보다 훨씬 키가 작은 신호등을 발견했다. 노을을 보면서는 아름답다기보다 왜 이렇게 빨리 해가 지는 건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아마도 포르투갈이 한국보다 지도상으로 조금 더 위에 있어서 해가 더 빨리지는 거 같다고 추측했다. 얼토당토않은 내용 같아도 찬찬히 들어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처음에는 밤낮이 한국과 반대인 시차를 받아들이지 못해 해가 지기 전까지 절대자지 않을 거라던 아이는, 한국의 낮과 포르투갈의 밤을 연결해갔다. 그렇게 한 뼘 정도 아이의 세계가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에게 지금껏 한 방울, 한 방울씩 다른 세계를 맛보여주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발을 퐁당 담근 듯한 느낌이 들어서 신기했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었을까. 문제는 마지막 날 일어났다. 아이는 처음으로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고, 포르투갈에 푹 빠져서 여기에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집보다 좋아하는 곳이 생기다니. 하지만 아이는 아스퍼거 아닌가. 좋은 감정은 폭발했고, 때때로 크게 눈물을 터트렸다. 집에 가기 며칠 전부터 그러더니 비행기를 타는 당일에는 텐트럼(강렬하고 파괴적인 감정 폭발)이 심했다. 잘 있다가도 생각난 듯 눈물을 터트렸고, 비행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제대로 자지 못한 데다, 비행기 스크린에 있는 게임에 심취해서 약간 텐션이 올라간 상태여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아이가 자지 못하자 귀마개를 끼워줬는데, 귀마개가 귓속으로 들어간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소리를 지르면서 일어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주의를 시키고 손을 잡아주며, 혹은 등을 두드리며 안정을 시켰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했나 보다. 승무원이 조용히 다가오더니 승객 중 한 명이 아이가 너무 시끄럽다며 돌봐달라고 요청했다는 말을 했다. 나는 물론 죄송하다고 했다. 그리고 아까부터 우리를 뚫어지라 째려보는 분이 있었기 때문에 누군지 짐작도 갔다. 아이 바로 뒤에 앉은 분이었는데, 아기도 아니고 다 큰 아이가 울었으니 시끄러웠겠지…. 하지만 비행기는 소란하고, 모터 소리가 윙윙거리고, 누군가는 코를 골고 있었고, 대부분 사람은 이어폰을 끼고, 혹은 귀마개를 하고 자는데 그렇게까지 시끄러운 일이었을까.
예전일이 생각났다. 아이가 어릴 때는 더 죄송할 일이 많았다. 어린 시절 정말 많이 울었다. 밤이면 밤마다 깨서 울었으니 말 다 했지. 아이가 울면 제일 먼저 내가 했던 일은 화장실 문을 닫는 일이었다. 화장실은 소리가 더 크게 울리니까. 창문을 닫고, 방문까지 닫고 매일 밤 아이를 달랬다. 그때 살았던 아파트에서 한 번도 소음 문제로 민원이 들어오지 않았던 것을 아직까지 감사하게 생각한다. 밤마다 울었는데... 달랜다고 달랬지만 누군간 불편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 나는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 때마다 눈총을 받았고, 종종 시끄럽다는 민원을 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마음이 쪼그라들었고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허리가 펴질 날이 없던 날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깨달았다. 왜 나는 매번 과도하게 사과하는가. 왜 나는 내 아이를 먼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가. 아이가 그네를 타고 있는 친구를 보지 못하고 부딪혔다면, 나는 넘어진 우리 아이보다 그네에 탄 아이를 먼저 살폈다. 그렇게 하느라 내 아이의 상처를 못 봤다. 그때는 마음이 그렇게도 작아져 있었다. 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세상에 죄송할 일은 너무나도 많은데, 그때마다 내가 내 아이의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누가 아이의 편을 들어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좀 더 뻔뻔해지기로 했다. ‘그래 물론 죄송해.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이게 내 최선이야. 이거보다 더 아이를 제어하는 건 불가능해.’
그렇게 생각하고 나자 학교 상담에서도 이제 과도하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다는 걸 오픈하고,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많겠지만 지적해 주시면 할 수 있는 한 같이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말했다. 선생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풀어가기를 바랐다. 학교에서 화장실을 맨발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집에서는 맨발로 화장실에 간다는 점을 떠올려서 집에서도 신발을 신기기 시작했다. 물통을 자꾸 넘어뜨려서 물을 쏟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입구가 작은 물통으로 바꾸어주었고, 연필 끝을 잘근잘근 물어뜯어서 샤프로 바꿔버렸다. 가르쳐주면 잘하는 아이지만 응용이 안 되는 아이다. 모든 상황마다 모든 해결책을 가르쳐주어야 하니, 생각지 못했던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졌다. 하지만 다행히 따뜻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 하나씩 천천히 배워가고 있다.
비행기에서는 죄송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분노했고, 조금 더 지나서는 약간 우울해졌지만, 집에 돌아와서 짐을 풀고 나서야 그때 내가 해야 했던 말이 생각났다.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 그래서 못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쟤 좀 이상해라고 생각할지도, 어쩌면 그런 눈빛을 많이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한 번도 모르는 사람에게 ‘장애’를 언급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날이 온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에 내가 연재할 글은 평범한 한 여자의 용기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 ‘아스퍼거는 귀여워’라는 제목을 정하는데도 조금 망설였었다. ‘아스퍼거’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이, 사람들에게 이 단어를 제목으로 명시 하는 것이 조금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스퍼거는 우리 아이에게서 사라지지 않을 단어다. 이번 연재를 통해 내가 어떻게 장애와 만났고, 세상에 얼마나 미안해하면서, 또 얼마큼 고마워하면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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