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원은 초(등학교)졸(업) 시키기?!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그러면서도 푸쉬라고 느껴지지 않도록 은근슬쩍 자연스러워야 한다. 마지막엔 ‘뭐 가기 싫으면 가지 마.’라며 퇴로도 만들어준다. 2주 전부터 이어온 물밑 작전에도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는 감자의 모습이 심상찮다. 이제껏 떼쓰면서 드러눕는 행태가 아닌…. 뭐랄까 정말 낙심한 듯한 모습. “엄마 정말 학교 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안 생겨요….” 마음이 약해진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학교를 그만둔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못 했던 아이였다. 모범생도 아니고 날라리도 아닌, 적당히 말 잘 듣고, 적당히 공부하다 졸고, 쉬는 시간이면 우르르 몰려가 간식을 사 먹던 그저 그런 평범하고도 평범한 아이. 공부하기 싫었지만 늘 벼락치기로 어느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고, 아파도 학교를 가야 하는 줄 알았고, 다른 삶의 루트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독특한 아이를 키우면서, 유치원 때부터 한 번도 편하게 교육기관에 가지 못하는 감자를 보면서 처음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학교, 정말로 가야 할까.
어린이집 시절부터 겨우 출석 일수 만 채울 정도로 힘들게 기관을 다닌 감자는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져서 제대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친구들에게 관심이 없어서 늘 혼자 책을 읽거나, 중얼거리거나, 알 수 없는 문자를 만들어내는 아이. 그게 감자였다. 수업도 지루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도 안 들어오고, 쉬는 시간에 같이 놀 친구도 없이 그렇게 몇 시간을 앉아있는 게 과연 감자의 삶에 도움이 될까. 하지만 학교를 보내지 않는 것에 대한 가장 큰 걱정은 학업도 친구 관계도 아니다. 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상식을 이 아이가 알지 못할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다. 자기의 관심사 말고는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감자는 어릴 때 그 흔한 명작동화 한 장 읽지 않았다. 신데렐라와 백설 공주를 과연 알까. 이솝 우화를 알기는 할까. 그런 것이 걱정이었다. 나는 감자가 분수를 소수 계산을 모르는 게 걱정인 게 아니라, 블랙핑크를, 유재석을 모를까 봐서 걱정이다.
대망의 개학 첫날. 감자는 아침부터 학교 가는 초조함을 견디지 못했다. 결국, 나는 오랜만에 같이 등교를 하기로 했다. 아직 씻지 못해 떡진 머리를 핀으로 틀어 올리고 대충 옷을 걸쳐 입고 감자와 집을 나섰다. 5학년이지만 이미 내 키를 넘어서선 감자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하는 길. 이미 조금 늦은 시간이라 거리에 아이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수업이 시작한 학교는 적막했다. 나는 다 큰 감자의 손을 잡고 1학년 학부모가 된 기분으로 학교에 들어갔다. 학교까지만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올라가지 못하겠다고 해서 5층까지 같이 올라갔다. 교실 앞. 한 발짝 떼고, 한 발짝을 주저하며 교실로 들어가지 못하는 감자는 정말로 두려워 보였다. 벌벌 떠는 사이 5학년 담임 선생님이 나오셨다. 얼떨결에 그 앞에서 인사를 하고 천천히 들어오라는 말을 들었지만, 감자의 긴장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겨우 뒷문까지 갔는데, 문을 쾅쾅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나 여기 왔소. 그러나 들어가지는 못하겠소’를 전교에 알렸다. 아호. 부끄러웠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척 지켜보고 기다려주자 마지못해 교실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내려왔는데 띠링 문자가 온다. ‘저 학교에 있는데요.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엄마는 이제 저를 포기했나요?’
아. 오늘은 실패다. 아직도 감자를 전혀 포기하지 못한 나는 마음이 약해져서 그럼 그냥 선생님께 인사만 하고 나오라고 했다. 그 사이 1교시 쉬는 시간 종이 치고 아이들이 우르르 일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하…. 정말 힘들다. 이 많은 아이 사이에서 혼자가 된 기분. 저 멀리 담임 선생님과 함께 계단을 내려오는 감자의 모습이 보였다. 막상 내려오자 다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감자. 하지만 이때는 단호해야 한다.
“학교는 가야 하는 거고, 혹시 힘들면 안 갈 수도 있지만 네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곳은 아니야. 선생님도 수업 들어가셔야 하는데 이만 가자.”
억지로 돌려보내면 다시 교실로 들어갔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감자를 데리고 나왔다. 감자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묻는다.
“하지만 엄마는 아직도 나를 사랑하나요?”
“어떤 일을 해도 감자를 사랑하지 않는 일은 없어. 그건 사실이야.”
긴장해서 풍선처럼 부풀었던 마음이 푸식 하고 꺼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고는 이야기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선생님이 엄격해 보이지 않던데요? 내일은 학교를 한 번 가볼까요?”
하지만 다음날. 분명 기분좋게 등교했는데, 학교가 마치자마자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감자를 어느 정도로 제어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있는데 감자가 말 그대로 뚜껑이 열려서 집에 들어왔다. 씩씩거리면서 이 겨울에 땀까지 흘리면서 분노했다. 그리고 자기가 너무 나쁜 짓을 했다고, 나쁜 아이가 된 거 같다고 말했다. 내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고. 조그만 일이었는데 너무 크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내가 너무 물러서 감자를 더 힘들게 했을까. 감자는 컸는데 내가 보는 눈은 유치원생에 머물러 있는 걸까. 하면 안 되는 것을 좀 더 단호하게 해야 했나. 선생님께 연락해서 3일은 학교를 안 보내겠다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제껏 학교를 빠지는 날은 너무나 많았지만, 그때는 감자가 힘들어해 쉬어가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감자가 쉬는 게 아니라 학교가 못 오게 하는 거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오지 말라고 한 적은 없지만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3일을 아주 심심하게 아무런 놀이감도 던져주지 않고, 혼자 집에 두었다. 일하다가 집에 가서 점심만 차려주고 왔다. 퇴근해서 보니 책을 산더미 같이 읽고, 종이접기도 하고 찬장을 뒤져서 과자를 먹고, 김을 까먹고, 하루를 알차게 보낸 흔적들이 보였다. 잘 있었구나. 학교에 안 가는 감자는 편안해 보였다. 그래, 학교를 정말 다니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마음을 먹고 물어봤다.
“그래서 학교를 때려칠꺼야? 정말 혼자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겠어?”
“아니요. 엄마. 월요일에는 학교에 갈래요. 혼자 있으니까 심심한 거 같아요. 저도 이제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조금 들어요.”
이런 말을 하는 감자를 보니, 언제 또 이렇게 많이 자란걸까 싶었다. 키만 큰 어린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제껏 나는 감자를 자라지 못한 아이로 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학교를 가기 싫어하는 건 똑같지만 들여다보니, 그건 자라난 사회성에 대한 부대낌이었다. 관심이 없어서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이제야 조금 타인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그게 잘 되지 않으니까 힘든것. 하고 싶은 데 잘 되지 않아서 분노하는 마음이 그것이었다. 이제는 내 눈치도 보고, 선생님 눈치도 보고, 친구들의 눈치도 보는 아이. 그러나 어떻게 할지 모르겠는 아이. 이건 좋은 부대낌이야. 다시 처음부터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 줘야지. 감자가 학교에서 제일 힘든 3가지, 수업시간에 의미없는 말을 계속 내뱉고, 양말을 벗고 발을 만지작 거리며, 식사를 깔끔하게 먹지 못하는 것. 정말 정말 오랫동안 배우고 있는 부분인데도 잘 안된다. 그럼 어떡해. 또 해야지.
“감자야 손가락과 발가락은 절대 만나서는 안되는 금지된 만남이야. 이제부터 손과 발이 ‘베이비 원 모어 타임’ 서로 만나는 건 없는거다?”
‘빰빠라 빠빠 빰빠빠빠’ 그 옛날 주얼리의 노래에 맞춰 발가락에 손가락을 끼우는 모습을 재연했다. ‘노 베이비 원모어 타임’ 예쓰! 이해했다. 이제 손과 발은 만날 수 없어! 밥 먹고 난 후 뒷처리 부분은 미흡하지만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김치를 워낙 좋아해서 산더미 같이 김치를 먹다보니 입술 주변이 벌겋다. 밥 먹고는 무조건 거울보고 입 닦기. 이건 지속적으로 지적하면 가능할 거 같다. 하지만 마지막이 가장 난관인데... 수업시간에 소리지르지 않기. 이건 정말 무의식의 치원이여서 어렵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지만, 생각에만 그치는데 반해, 감자는 필터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입밖으로 나온다. 계속 지적하면 더 불안해서 소리가 더 많아지는 악순환. 약물 복용도 해보고, 인지, 언어 치료도 하고 있지만 다들 뾰족한 방법이 없었는데, 갑자기 내가 요즘 하고 있는 불교공부가 생각났다.
“엄마가 요새 불교 공부를 하거든, 거기서 명상을 함께 하는데, 명상의 기본이 알아차림이래. 감자도 소리를 지르고 싶은 그 마음이 들 때마다 한 번 멈춰보는 건 어떨까? 당연히 소리가 또 나오겠지. 그러면 다시 멈춰보는거야. 그러다보면 소리를 내기도 전에 멈추는 마음이 든대.”
이게 될까. 나도 어려운데. 하지만 나 역시 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에서 생각이 한정되니까 이게 최선이다. 걱정과는 달리 바로 다음날부터 눈에 띄게 바뀐 모습을 보여준다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 감자가 4교시까지 정말 소리도 안내고 수업 참여도 잘 했어요(희) 그런데 5교시가 되자 진단평가 채점지를 받았는데... (비) ”
아. 그랬구나.. (알아차림) 감자가 잘 했다가(알아차림), 또 흐트러졌구나.(알아차림) 역시 감자는 나를 공부시키려고 태어난 존재다! 이렇게까지 일상 수행을 잘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다니. 우리 같이 잘 해보자!
글_모로(문탁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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