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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은퇴 이야기

[나의 은퇴 이야기] 은퇴가 내게 준 선물

by 북드라망 2025. 8. 18.

은퇴가 내게 준 선물

박해광(감이당)


‘나의 은퇴이야기’를 주제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많이 난감했다. ‘은퇴’라는 말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었기에. 사전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았다.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냄.’ ‘맡은 바 직책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서 한가로이 지냄.’ 4년 전, 30여년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퇴임식도 했으니 직임에서 물러난 것은 맞다. 한가히, 한가로이 지냄은 의문이다.


취업과 퇴직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거워하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나는 어떤 일을 하면 가슴이 뛸까?’ ‘왜 나는 버킷리스트가 없는 것일까?’ 내 삶의 화두였다. ‘좋아 싫어’가 분명하지 않았기에 항상 내 의지에 따라 적극적인 선택을 하기 보다는 상황에 맡기는 소극적인 선택을 해왔다. 같은 이유로 주위 사람들이 함께 해보자고 권유하면 거의 따라서 해보았다. 그래서 보기보다 운동도 다양하게 해보았고 지리산 천왕봉에도 세 번이나 올랐다. 여행도 많이 했다. 나의 취업과 퇴직도 다르지 않았다. 대학교 3학년 겨울 방학, 출근길에 쓰러지신 아버지가 방학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가족까지는 아니어도 나의 생계는 내가 책임져야하는 때가 갑자기 온 것이다. 국립사대를 나오면 교직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의무였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어떤 비전과 확고한 신념 없이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 따라 취업을 했다. 그 후 재미가 없었을 뿐 좋지도 싫지도 않은 교직생활을 30년간 했다. 그리고 2020년 12월, 미루고 미루던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의사가 폐사진이 이상하니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큰 병원에 갔더니 여러 가지 조사를 하고는 결국 조직검사를 해야겠다며 폐에서 조직을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 조직검사 후 장기간의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렸고 그 장기간이 보장된 것이 아니어서 퇴직을 했다. 이 또한 고민할 필요 없이 상황에 맡겨.

 

 


퇴직 전, 글쓰기의 중단
지금 나는 감이당에서 4년차 주역을 공부하고 있다. 퇴직 후 곰곰이 생각했다. 가슴까지 뛰는 것은 아니라도 그래도 난 무엇을 할 때 내 기준에서 가장 즐거웠던가? 돌아온 답은 ‘공부’, 이것이 내가 감이당에서 공부하게 된 이유이다. 감이당에서 공부하는 것은 어렵다. 9주가 한 학기, 1주 방학, 1년에 네 학기를 공부하는 데 학기가 끝날 때마다 반드시 글을 써야 한다. 글은 정직하다. 속일 수가 없다. 공부하여 깨달은 진실을 내 삶에 실험하지 않고는 글쓰기가 되지 않는다. 겨우 썼을지라도 부끄러운 고백에 그친다. 글쓰기는 끊임없는 자기수련이고 공부이다. 그래서 글쓰기(공부)가 어렵다. 글쓰기가 즐거웠던 시간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숙제로 일기쓰기가 있었다. 일기를 쓰기위해서 많이 읽고 세심하게 관찰하고 나와 관계된 모든 것에 관심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덕분에 매일은 아니어도 많은 날이 새로운 날이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나의 일기 읽는 것을 즐거워하셨던 기억도 있다. 누구라고 밝히지 않고 그래도 반 아이들은 다 알았지만, 나의 일기를 읽어 주셨던 기억.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숙제로 단편소설을 쓰기도 했다. 63명 중 두 명만이 숙제를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나이고 다른 한 친구는 나중에 사서 교사가 되었다. 대학교 때는 ‘교사를 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해서 밥 먹고 살지?’라는 물음에 ‘글 써서 먹고 살면 되지.’라고 답한 적도 있다. 실제로, 첫 학교에 근무할 때, 대기업 홍보실에 있던 친구가 교사들의 이야기를 사보에 연재하고 싶으니 글을 써달라고 하여 원고료로 5만원을 받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글 쓰는 것을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글쓰기에 대해 내심 꽤 자신감이 있었다. 이러한 나의 글쓰기는 두 번째 학교에서 학급문집을 만들면서 담임으로 썼던 글을 마지막으로 멈추었다. 퇴직 후 감이당에 오기 전까지.

 


퇴직 후, 글쓰기의 시작 
맡은 바 직책에서 손을 떼고 물러난 후, 한가로이 지내기를 그만두고 ‘왜’ 배움, 읽고 쓰기를 선택했는가를 말하려던 것이었는데 이야기가 길어졌다. 운명이 내게 허락한 여덟 글자 안에는 오행 중 화(火)가 없다고 한다. 오장(五臟)에 비유하면 심(心)이 없다. ‘가슴 뛰는 삶을 살기는 어려운’ 항상 ‘바쁘지 않아 여유가 있는’ 한가로운 마음의 소유자이다. 쉽게 표현하면 ‘게으르다.’ 게으름은 배움의 가장 큰 적이다. 그러나 그 게으름은 불필요한 욕망에도 게으르기 때문에 편안한 것이기도 하다. 조심스럽지만 ‘소박하게 살면 빠듯이 살아질 만큼의 수입이란, 불필요한 욕망을 일깨우지 않는다는 점에서 편안한 것이었다.’는 한강 작가의 말처럼. 그러나 항상 태과(넘치는 것)/불급(모자라는 것)이 문제다. “태과와 불급은 ‘생생불식’하는 자연의 섭리, ‘차이 속의 반복’ 곧 순환을 가로막는다. 습관이란 이 순환을 가로막는 태과/불급의 상태를 뜻한다. 그것이 나를 태어나게도 했지만 그것이 나를 아프게 하고 괴롭게 한다. 그 아픔,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그래서 우주의 ‘활발발한’ 순환에 동참하려면 구체적으로 차이를 만들어 내는 행(行)을 닦아야한다.”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바쁘게 살아야 하는 때에 한가로운 마음은 나를 편안하게 했지만 퇴직 후에는 그 마음이 문제가 되었다. 퇴직은 “억지로라도 몸을 써야만 했던, 재물과 재능을 베풀어야 했던, 마음을 비워야 했던” 나에게 ‘그러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그것은 게으름의 태과를 가져왔고 내 삶의 순환을 가로 막았다. 다르게-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 온 것이다. ‘공부’를 ‘읽고 쓰기’를 해야 하는 시간이. 퇴직은 이렇게 나에게 글쓰기라는 선물을 주었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나의 삶이 재미없었던 것은 글쓰기를 멈추었기 때문이란 것을.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선물이라고 부른다. 부끄럽지만 그 이유는 고미숙 샘의 글로 대신하겠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글쓰기를 할 수 있기를 강력히 희망하면서.

 

 “우주는 거대한 도서관이다. 하늘은 책이다. 무량겁의 텍스트가 거기 있다. 읽고 읽어도 늘 새롭다. 매일 아침 하늘은 새로운 세상을 연다. 땅은 견고해서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땅이 끌어안고 있는 만물 또한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보다 멋진 텍스트가 어디 있으랴. 사람 또한 ‘책’이다. 사람은 그 자체로 스토리요, 텍스트다. 하여,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상, 나아가 인생이라는 책에 접속하는 일이다. 삶은 앎이고 앎은 곧 읽기다.
 하지만 읽기가 생명의 활동이 되려면 써야 한다. 읽기와 쓰기는 동시적이다. 쓰기가 전제되지 않고 읽기만 한다면, 그것은 읽기조차 소외시키는 행위다. ‘쓰기 위해 읽어라!’ 이 배치에 들어서는 순간, 자연 알게 될 것이다. 세계가 온통 생성과 창조의 현장임을. 쓰기란 그 생성과 창조에 참여하는 최고의 길임을.”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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