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백수의 새로운 인생 실험
최승천(감이당)
요즘 나의 아침은 알람 소리 없이 시작된다. 출근 시간에 맞춘 강제적 기상을 알리는 소리 대신 라디오의 조용한 음악 소리에 몸이 알려주는 자연스러운 아침을 맞이한다. 베이비붐 세대인 나는 대학 졸업 후 일주일 쉬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육아 휴직 제도 없는 근무조건 속에서 정년 퇴직까지 조직과 관계의 굴레를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했던 내가 출·퇴근에서 벗어난 것이다. 긴 세월 동안 몇 번의 사표 의지를 내세워야 할 지점도 마주했지만 대견하게도(?) 40년을 견뎌냈기에 사소한 아침맞이 변화가 나에게 큰 의미와 기쁨이다. 지나간 직장생활은 끝이 보이지 않는 인내와 책임감의 무게에 눌려 지내야 했던 시간이었기에 무거운 갑옷을 벗어낸 후련함과 그 세월을 끝까지 버텨냈다는 완주감은 정년퇴직의 큰 위안이 되었다. 가정적으로도 한집에 시어른을 모시면서 장손 며느리 역할과 아이 셋 육아를 병행하며 가정생활에 별로 협조적이지 않았던 남편과 지낸 시간은 녹록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의 직장생활은 늘 어설프고 아쉬움이 가득했다. 인생의 화사한 봄날과 열정 가득한 여름날의 추억은 턱없이 부족했고, 다니던 직장에서는 그다지 큰 배움과 보람을 찾을 수는 없었기에, 직업 선택에 대한 후회와 이직에 대한 유혹도 수시로 찾아왔다. ‘그땐 다 그랬지’라는 자조 섞인 위로와 그나마 운이 따라주어 때에 맞는 승진을 했으며, 보통의 가정에서처럼 아이 셋이 무탈하게 자라주어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었고 세월은 흘러 인생 응축과 수렴의 계절인 겨울의 초입에서 퇴직을 코앞에 두고서야 퇴직 후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수없이 들었던 질문에 슬그머니 고민하게 되었다.
퇴직 이후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던 나는 먼저 퇴직하신 선배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궁금해 그들의 삶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관찰하게 되었다. 대부분은 일상에서 비슷한 패턴을 찾을 수 있었는데 우선 2~3년은 바쁘게 국내·외 여행을 다니고, 평소에는 주로 당구와 등산 등 취미활동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며, 건강히 허락하는 한 손주 돌봄과 재취업을 위해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모습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풍경도 대략 퇴직 3년을 전후로 시들해지며 그들은 인생 사계절이 텅 빈 듯 허탈감을 품은 채 언젠가는 그들에게 닥칠지도 모를 ‘노·병·사’에 대한 건강염려 불안과 자신들이 속했던 사회에서 멀어진 소외감으로 우울한 시간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회적 관계망도 소홀해지고 자존감조차 취약해진 그들은 ‘정년 백수’가 된 것이다. 곁에서 보기에도 안쓰러운 그들의 모습은 마치 각자의 동굴에 웅크리고 들어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평소에 큰소리치며 당당했던 선배들이 퇴직과 함께 정신적, 육체적으로 갑자기 늙어가는 모습은 매우 낯설었다. 명함에 적힌 회사 간판과 계좌에 매월 꽂히는 월급을 자신의 가치로 삼고 살아온 그들은 이제 삶에서 이름 석 자만 남은 자연인 자신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은퇴란 삶의 긴 여정에서 모든 역할과 책임에서 벗어나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져 오로지 자기만의 제2 인생을 시작하는 주기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는데 세심한 준비 없는 선배들의 퇴직 생활은 갑자기 주어진 빈 시간에 적응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중심없이 삶의 방향은 마구 흔들렸다. 내가 살핀 그들의 모습들은 곧 내앞에 펼쳐질 미래였기에 막연한 두려움과 가벼운 충격으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나는 그들과 다른 모습으로 인생 겨울을 채워가야겠다는 다짐과 걱정을 하면서 드디어 나도 퇴임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동안 속했던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내가 해왔던 일로부터 완전히 물러나 ‘정년 백수’가 된 것이다. 지나온 시간은 때로 주어진 일에 성취욕구를 즐기기도 했지만, 더 많은 책임과 경쟁으로 자신을 들여다볼 여유 없이 긴 터널을 지나온 것이다. 이제부터는 조직의 역할과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정년 백수로서 삶은 타인과 외부에 의해 ‘살아지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어 ‘살아내야 할 시간’이 새롭게 주어진 것이다.
앞으로 시간은 인생의 노·병·사로 가는 통로임을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가운데 퇴직 후 바뀐 나의 모습 중 하나는 늦잠과 함께 아침의 여유를 한껏 즐기는 것이다. 그동안의 아침은 만성피로의 몸을 위해 조금만이라도 더 자고 싶은 마음과 제한된 시간과의 사투였으며, 가족의 아침 식사를 살피고 서두름과 조바심으로 출근 준비를 하는 거친 시간이었다. 그 결핍을 온전히 느긋한 시간으로 자신에게 보상해주기라도 하듯 생긴 습관은 베란다 밖의 풍경을 멍하니 내려다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많은 우여곡절과 지난한 재건축 과정을 기다린 결과 입주하게 된 아파트 1층은 자동차 없이 보행자들만 보이는데, 계절의 변화와 함께 그날 날씨도 가름할 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기에 제격이다. 한가롭게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사람과 휠체어에 앉은 이를 보호하는 이가 활기찬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대비되었고, 정장 차림에 자주 시간을 확인하며 걷는 사람과 출근 전 서둘러 어린이집에 자녀를 데려다주는 유모차의 행렬 그리고 서류 봉투를 들거나 배낭을 메고 일터로 향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 새소리 재잘거리는 산책길 사이로 장바구니 안에 가족을 위한 식재료를 들고 가는 주부의 모습 등은 지난 세월 속 내 모습이 다 스며들어 있어서 나에게 지난 시간이 소환되었다. 누구든 매우 바쁘게 어디론가 가고 또 그 길로 다시 온다는 ‘无往不復’ 삶을 고스란히 내려다보며 나는 느긋한 게으름과 익숙한 시간의 배열 속에 매몰되어 갔다. 그동안 조직과 일에 길들어 살아온 결과가 소멸하여 가고, 사회에서 꽤 먼 거리에 놓인 기분이 들때면 스스로 작아지는 자존감과 낮은 우울감도 함께 찾아왔다. 강제적인 시간의 패턴으로부터 자유로워짐에 만족한 채, 나도 현실도피의 동굴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면서 퇴직 전에 나의 선배들에게 했던 걱정과 우려가 나에게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년 백수의 흔들리는 존재감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익숙함을 끊어낸다는 것은 안주하지 않고 쉼 없이 배우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삶일 것이라고 볼 때 나는 그동안의 살아온 경험을 재료로 삼아 그것에서 얻은 통찰로 새롭게 변화되고 성장하는 길을 찾아 실험해보고자 했다. 주역 天山遯괘는 때맞춰 물러남을 말하는데 자라나는 음이 아래서 생겨 점차 성대해지고 양은 줄어드는 낌새이니 저절로 두 음효를 피해 군자들이 스스로 피하는 형세인데, 괘사 遯, 亨, 小利貞은 조직에서 물러나 새로운 경계에 선 내 인생의 시절 인연과 딱 들어 맞는 모습이다. 세상일에는 각각의 때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 기미를 느껴 적극적으로 물러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여야하고 물러날 때의 올바름을 지켜야 하며, 彖傳에서는 遯之時義大矣哉 즉 은둔함의 때와 의로움이 위대하다고 했다. 나는 정년 백수로서 물러남에 형통하고 올바르며 의롭기 위해서는 어떻해야 하는가 생각이 깊어만 갔다. 우리의 평균수명 90세! 은퇴 후 최소한 30여 년의 주어진 긴 시간에 멈춰진 시계만을 들여다보며 지낼 수는 없는 것이다. 살아온 어느 시간보다 오로지 자신만의 시간으로 값지고 보람있는 길, 정년 백수 삶의 방향을 찾는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우선 평생 얽매인 직장생활로 하지 못했던, 자유로운 몸이 되면 가장 하고 싶었던 것과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일 그리고 노년에도 지속해 갈 수 있는 것과 여생에 보람까지 찾을 수 있는 것 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을 찾는 일을 반복하였다. 생각을 정리해보니 책상 앞에 오래 붙어 앉아 있었던 습관은 힘겨운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이미 나에게 체화되어 있었고, 그 시간 속 몰입은 나를 쫓아 다니는 걱정과 불안을 줄여 주었던 긍정적인 기억이 있었으며, 읽은 책의 내용을 요약해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는 것에 기꺼이 시간과 열정을 쏟았고, 표현력과 전달력에 약간의 자신감도 있는 것 같았다. 또한 몇번의 주제글을 쓰는 과정은 쉽지 않았으나 글을 쓴 후에는 덤으로 마음까지 평화로왔던 경험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아무런 장애도 없이 시간적 자유로움이 허락된 정년 백수인 나는 가진 특성과 경험을 살려서 새로운 출발의 지향점을 ‘읽고, 외우고, 글쓰기 공부하기’로 삼았고 이를 위한 지속적이며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혼자 하는 공부의 시작은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지고, 주저하게 되면서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몇번의 시행착오 속에 온오프라인으로 접속하며 다양한 공부 공동체를 찾아보았고, 그 결과 나의 공부는 감이당의 60.80 고전 읽기 과정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읽고 말하고 외우며 쓰는 과정을 맛보았으며 다음 해에는 토요 동의보감과 주역공부로 이어 나갔다. 하지만 주역의 숨어있는 깊은 맥락을 찾다가 번번이 길을 잃고 벽에 부딪혔으며, 인문학적 소양이 선명하게 드러나 바닥을 보게 되는 좌절과 낭패감으로 공부 시작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함께하는 공동체 속에 나이가 많다는 사실에 스스로 위축되었고,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은 퇴직했는데 무슨 공부를 하냐고, 공부가 그렇게 좋냐는 핀잔과 함께, 하던 공부도 마치고 편히 쉴 때라고 견결히 만류하고, 내 은둔의 방향에 대한 의지를 흔들었으며, 그동안 살아왔던 관계의 매임에 매번 곤궁하고 고달팠다. 무력하다고 여겼던 퇴직 선배들도 나와 같이 새로움의 출발에 우왕좌왕하다가 현실과 타협하고 포기하며, 익숙하고 편안한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의 물러남은 구체적으로 무엇으로부터, 어느 곳을 향해 물러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선 마음을 모으고 고요함을 따라 내면의 집중하는 힘을 키워 ‘공부’를 나의 하루 일상에 접속시키는 지속적인 반복 훈련이 필요했다. 공자왈 ‘학문의 원리는 즐기면서 근심 따위는 잊어버려 늙는 것도 알지 못하는 정도여야 한다’라는 말씀은 물질과 소비, 화폐로 향했던 생활습관과 노·병·사에 대한 불안, 사회적 소외감 그리고 취약해진 자존감으로부터 큰 힘이 되어 공부하는 마음을 굳게 다져 주었다.
제2의 인생길에 들어선 정년 백수인 나를 새로운 광장으로 정중히 불러내 공부로 종일 건건하며 나의 嘉遯(아름다운 물러남)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넉넉하고 여유가 저절로 생기는 肥遯의 때에는 초연히 자신을 이루는 공부에 힘쓸 때 정년 백수로 아름답게 늙어가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공부는 무엇을 갖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고민하며 삶의 방향을 바꾸어 주었고 인생 주기에 맞는 사색과 성찰로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게 해 주었다. 이것은 삶의 시선을 밖에서 안으로 향하게 했으며 ‘積小 而 高大’ 즉 하루하루 쌓이는 작은 공부가 정년 백수의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高大’는 전적으로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이다. 공부를 주고받는 인력의 힘으로 버틸 수 있게 해준 공동체의 학인들은 나에게 黃牛之革 莫之勝說이 되어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주었으며 은둔형 외톨이 단절 생활에서 이끌어 준 선함이 있어 중심을 잡고 열린 마음의 遯으로 함께 가는 길을 알려준 것이다. 그러므로 나도 이 신기한 정년 백수 공부의 경험을 뒤따르는 후배 정년 백수들에게 안내하며 肥遯의 시기를 함께하고자 한다. 주변의 많은 정년 백수는 나의 제안에 망설이며, 겸손히 거절도 하지만 ‘퇴직 방황의 끝은 공부다’라는 확신을 전해주고 싶은 것이다. 나이 들어 시작한 공부의 맛이 얼마나 달콤한지, 공부하며 얻게 된 삶의 변화를 알려주고 기꺼이 이것을나누는 역할이 나에게 주어진 ‘물러나서 펼치는 도’라고 생각한다. 이 사회에 존재하는 정년 백수들에게 인생실험은 매일 매일 진행중이라고 그러므로 遯의 시기를 함께 아름답게 통과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인생의 응축 시기 肥遯은 无不利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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