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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은퇴 이야기

[나의 은퇴 이야기] 나의 은퇴 이야기 – 연결하고 소통하는 삶

by 북드라망 2025. 8. 11.

나의 은퇴 이야기 – 연결하고 소통하는 삶

김태희(감이당 토요 대중지성)

 

나의 현역생활 – 몰아지경
2021년 4월 30일, 첫 회사에서 26년, 그리고 두번째 회사에서 6년, 합계 32년의 회사생활을 마감했다. 나의 직장생활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인정 투쟁이었다. 회사의 기준, 구체적으로는 상사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애쓴 삶이었다. 일이면 일, 회식이면 회식 무엇을 하든 상사의 마음에 들게,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잘 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것만 잘 하면 대단한 능력이나 업적이 없어도 부서장이 될 수 있었고 운이 좋으면 경영층 진입도 어렵지 않았다.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선배의 조언이 있다. “임원 승진을 하고 싶으면 영혼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살아 남으려면, 출세하려면 자신을 버려야 했다. 자존심, 체면, 상식, 애국심, 도덕과 윤리, 신앙심 등 그 어느 것도 회사의 이익이나 상사의 요구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면 빨리 회사 생활을 그만두려고 해야 하는데 난 그러지 않았다. 가끔씩 ‘이렇게 살아도 되나’하는 내면의 소리를 못 들은 척하면 회사 생활은 그럭저럭 견딜만 했기 때문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프로젝트의 성공, 승진이나 연봉 인상은 큰 성취감을 느끼게 해 주었고 주택구입/전세 대출, 학자금 지원, 하계 휴양소 이용 등 깨알같은 사원복지 혜택들 덕택에 때때로 가족들로부터 가장으로 인정받는 뿌듯함이 있었다. 두번째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도 다른 직장을 찾아 보는 것 이외의 대안은 없었다. 내게 회사는 결국 내쫓겼음에도 불구하고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되돌아가야 하는 그런 곳이 되어 있었다. 

 


고전공부를 만나다
두 번째 퇴직 후에는 나이도 있고 해서 서둘러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기보다는 당분간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을 다니면서 여유를 즐기려고 했는데 친구들과의 만남부터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부딪혔다. 허구헌 날 들판과 산길을 쏘다니고, 흙먼지 풀풀 날리는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뒹굴며, 가끔은 코피가 나도록 서로 주먹질도 하며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그 친구들은 놀랍게도 낯설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 행동, 욕망은 낯익은 회사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내가 만나고 싶었던 그 친구들이 아니었다. 맘 속에 깊이 감춰 둔 속사정까지 털어놓으며 어린 시절 우정을 다시 꽃피우리려던 나의 꿈과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옛 친구들을 만나고 달라진 그들의 모습에 낙담하면서 회사생활과 회사 안에서 맺는 인간관계를 내가 얼마나 싫어하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친구들과 만남이 뜸해지면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런 저런 책들을 읽고 유투브 강좌를 보면서 지내다가, 2022년 2월 조심스레 감이당 대중지성 세미나의 문을 두드렸다. 처음 접한 주역과 니체 공부는 예상과 달랐다. 고미숙 선생의 유투브 강의를 들으며 상상했던 고전공부의 즐거움은 찾아볼 수 없었고, 흡사 암호문같은 책 내용은 한 쪽, 한 쪽 읽어 나가는 것부터 힘들었다. 글짓기를 할 때 힘겨움은 배가 되었다. 읽기도 어려운 내용으로 글을 쓰자니 기껏해야 A4 용지로 두쪽 남짓한 짧은 글을 쓰는데도 한 달 가까이 끙끙거려야 했다. 딱 3개월만 버텨보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씀도 있고 이왕 시작한 거 최대한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필사하라면 필사하고 외우라면 외우면서 어떻게든 책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고전공부와 힘겨운 씨름을 하고 있는 동안 새로운 일자리를 탐색하는 일이 어느 사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뭘 하면서 살까’라는 질문 대신에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문제가 다시 나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공부길은 소풍길이 아니다
함께 공부하는 학인들의 공감과 응원, 그리고 늘 새로운 과제를 들이대며 쉴 틈을 주지 않는 담임선생님의 용의주도한(?) 지도에 힘입어 공부를 해 나가다 보니 고전이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가끔씩 머리를 때리고 가슴을 흔드는 문구들도 나타났다. 이에 비해 글쓰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근거도 논리도 엉성하기 짝이 없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상론, 도덕론을 베껴 쓴 듯한 글을 보면 이 따위 글을 쓰려고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공부가 해를 거듭해도 글짓기는 늘 그 자리였다. 내 고민을 들은 대중지성 세미나 담임 선생님의 권유와 배려로 감이당 연구실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와 삶을 연결하는 방법을 배우고, 이를 통해 글쓰기 수준을 향상시킬 좋은 기회를 얻은 것이다. 연구실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공부 욕심이 생겨 세미나를 추가로 신청했다. 그런데 공부의 즐거움보다는 피로감이 늘어갔다. 무엇보다 세미나를 만만하게 본 것이 탈이었다. 새로 신청한 세미나의 텍스트들도 제대로 공부하려면 대중지성에서 공부한 주역이나 니체 못지 않게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한번씩은 읽어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세미나 준비를 엉성하게 하다 보니 세미나의 재미도 반감되고 함께 공부하는 학인들에게도 죄스러웠다. 이렇게 공부하면 안 되는데 걱정하던 와중에 대중지성 담임선생님이 세미나를 직접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언젠가는 내 스스로 공부 모임을 꾸리리라는 생각은 어렴풋이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제안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더럭 겁부터 났다. 

 

내겐 어설프게 다른 사람들 흉내를 내다가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기독교 모태 신앙인이지만 교회 다니는 일이 진정한 신앙의 의미로 다가온 건 20대 초반이었다. 당시 함께 교회를 다니던 내 또래들로부터 자신들이 겪은 놀라운 체험을 접할 때마다 난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왜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거지? 열심히 하면 될까 하는 생각에 신앙심으로 가득한 그들의 표정과 몸짓을 흉내 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결국은 실패하고 교회를 떠났다. 지난 해 12월, ‘비전 2024’라는 감이당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공통 감각’이라는 말을 접했다. ‘공통 감각’은 ‘도심에서 유목하기 ∙ 세속에서 출가하기 ∙ 일상에서 혁명하기 ∙ 글쓰기로 수련하기’라는 감이당의 비전을 공유하고 ‘의역학’의 이치를 배우고 익혀 그 지혜와 비전을 세상 곳곳에 전파하는 ‘인문의역학’의 길을 함께 가고자 하는 것이다. ‘공통 감각’이라는 그 단어는 힘겨웠던 20대 초반의 교회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연구실에서 지내다 보니 ‘공통 감각’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튜터 선생님들은 세미나를 직접 이끌 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의 세미나에도 참여한다. 세미나 이외에도 선생님들은 공부 공동체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많은 일을 한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얼마 못 가 과로로 쓰러질 만한 업무량을 거뜬히 소화하고 있다. 내게 세미나를 직접 만든다는 일의 의미는 세미나를 일회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튜터 선생님들이 가는 길을 따라 가는, 큰 그림 속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으로 여겨졌다. 언젠가는 그 ‘공통 감각’의 문제에 반드시 부딪힐 수밖에 없을텐데 과연 내가 감당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결국 좌절하고 말 것 같은 불안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감각 기르기는 책읽기부터
올해 난 연결과 소통의 감각을 얻는 것을 공부의 목표로 정했다. ‘공통 감각’까지는 아니더라도 공부를 시작하면서 부쩍 의식하게 된 내 무딘 감각의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MBTI를 예로 들어 말하자면 난 공감능력 부재로 알려진 T 타입이다. 여기에 오랜 회사생활을 통해 몸에 배인 자기과시 및 인정욕구, 60대 꼰대 기질까지 갖추고 있으니 가히 공감능력 마비상태라고 할 만하다. 공감능력이 없으면 타인과의 소통은 물론 천지만물의 생성과 순환과정에 동참할 수 없고, ‘늙고 병들고 죽는(노병사)’ 데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는 지혜를 얻을 수 없다. 열심히 공부해야 말짱 헛일인 것이다. 그런데 한 해의 반 이상이 지나도록 난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7월초 어느 날, 감이당으로 가는 길에 튜터 선생님 중 한 분을 만났다. 그 선생님이 하고 계신 엄청난 공부나 일을 생각하면 바쁘지도 힘들 것도 없는 처지라 말을 꺼내기가 부끄러웠지만 공부에 관한 내 고민을 말씀드렸다. ”이 공부가 원래 힘들다. 나아지는지 어떤지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향상감을 느끼기 위해 외국어 공부를 병행하시는 분도 있다”며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다. 공부 방법에 대해서도 팁을 주셨는데 “독서량을 욕심내지 말고 책 한 권을 보더라도, 저자와 교감하려 애써 보라”고 하셨다. 생각해 보니 공부 방법은 당연히 그래야 했다. 더구나 고전공부를 통해 사람들과 만나고 있으니 독서의 방법은 연결과 소통의 감각을 키우는데 중심적인 수단이 되어야 한다. 선생님의 조언은 ‘책 따로 사람 따로, 세미나 따로 모임 따로’의 어정쩡한 공부 태도도 되돌아보게 해 주었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책의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 보다 집중하고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한 쪽을 읽더라도 자신의 의견과 질문을 만들어내려 애쓰는 것, 그런 내 느낌과 생각을 함께 공부하는 학인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 이러한 공부의 기본을 다지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공부의 힘!
은퇴 이후 시작한 고전공부는 이제 생활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고 삶에 대한 물음은 ‘뭘 하면서 살까’에서 ‘어떻게 살까’로 달라졌다. 물론 나는 첫 걸음을 떼고 있는 중이다. 첫 걸음은 ‘소통과 연결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소통과 연결은 중요한 문제였다. 이익극대화가 목표인 회사에게도, 사장이 목표인 나에게도. 그 때의 소통과 연결은 돈과 출세의 도구였다. 지금은 내 삶 그 자체다. 잘 연결하고 잘 소통하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 우연히 만난 공부길이 내게 가르쳐준 지혜다. 은퇴를 하고 공부를 만난 건 내겐 행운이랄 수밖에 없다. 살아가다 보면 새로운 막힘과 단절의 상황을 만날 것이다. 그 고비를 넘어서는 것은 더 이상 행운일 수 없다. 앞으로 계속해 나갈 ‘소통하고 연결하는’ 공부의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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