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쉿 잡’(Bullshit Job)에서 탈출하기
서해(나이듦연구소)
회사 그만두고 싶은 병
IT버블이 한창이던 2000년대 초반, 나는 운이 좋게 작은 IT벤처기업의 초창기 멤버로 입사해 회사의 성장을 함께했다. 물론 실패와 고난도 있었지만,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통해 경험을 쌓으면서 업계에서 평판과 인지도를 높여갔다. 입사 후 10년쯤 되었을 때, 회사는 새로운 시류에 편승해 한 단계 더 도약했다. 그렇게 회사가 잘 나가기 시작할 무렵부터 나의 ‘회사 그만두고 싶은 병’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회사에 출근하는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흔히 말하는 매너리즘의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가 새롭게 마주한 세계는, 기존의 방식대로 차근차근 하나하나 조각을 맞추며 어떤 형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조각들 속에서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상상해 내는 일에 가까웠다. 그러자 함께 일했던 동료들 가운데에서도 손들고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 만난 고기처럼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자질을 드러내며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어정쩡한 관리자였다. 내가 우리의 작업 결과물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클라이언트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새로운 중간관리자가 채용되었다. 안팎으로 똑똑함이 드러나는 사람이었다. 그가 합류하자 팀의 분위기도 달라졌고 나는 더 위축되고 말았다. 내가 있을 자리는 없다고 느껴졌다.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이직하기에도 애매한 경력과 나이였다. 더구나 당시 나의 보스는 스마트하고 언변이 좋은, 그래서 PT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사람이었다. 빠르고 통찰력 있고 똑똑한 사람 앞에서 나는 더 초라하고 볼품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나의 멘토와 같은 상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고 그의 조언은 간단명료했다. “네가 왜 일을 다 하려고 하느냐, 다른 사람이 잘하는 일은 그 사람에게 맡겨라. 그리고 너는 네가 잘할 수 있는 일만 해라.” 또 다른 상사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그 사람(보스)에게 잘 보이려는 이유가 뭔데?”
나는 내가 일을 장악하지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인정욕구에 굶주려 있었다. 한꺼번에 두 가지가 모두 해결되었다. 이후 나는 새로 온 일잘러에게 그가 잘할 수 있는 일들을 맘 편히 맡길 수 있었고, 나의 보스에게 칭찬받고 싶다는 마음을 접으니, 그와 마주하는 시간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았다. 일잘러와 나는 다름을 이해하고 서로의 장점에 기대어 절친이 되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심리상담가를 소개해 주었고 당시에 내가 읽던 책 고미숙의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를 보고, 감이당이 회사에서 가까우니 한번 가보라고 권했다. 감이당과의 인연은 그때 시작되었다. 감이당에서의 사주명리학 기초를 시작으로 연간 프로그램까지 시도하게 되었고, 그 프로그램을 매년 지속하며 나처럼 직장생활을 하는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다. 그 결과 나는 심리상담을 그만 받아도 될 만큼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생겼다.
그런데 이건 불쉿 잡이었어!
다시 나에게 회사를 그만둘 이유가 생긴 건 그로부터 10년 정도 후이다. 감이당 친구들과 함께하는 책모임에서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불쉿 잡>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그레이버의 2018년 작으로 2013년 급진파 온라인 잡지인 <스트라이크(Strike!)>에 ‘불쉿 직업이라는 현상에 관하여(On the Phenomenon of Bullshit Jobs)’라는 글을 기고한 것을 바탕으로 다시 쓴 것이다. 이 글은 발표 후 많은 국가의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특히 화이트칼라 들의 고백과 댓글이 많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공감한 내용은 이런 것들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내심으로는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업무를 보느라 시간을 소모한다.”
“우리 사회에는 어떤 직업이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 확실할수록 정당한 보수를 받을 확률은 더 낮아진다는 일반 원칙이 있는 것 같다. 여기서도 객관적 척도는 찾기 힘들지만, 쉽게 알아내려면 다음과 같이 질문하면 된다. 그 직업 계급이 통째로 사라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간호사, 쓰레기 수거 요원, 정비공 같은 직종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그들이 만약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그 영향은 즉각적이고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다.”
(데이비드 그레이버, <불쉿 잡>, 민음사)
IT업계에서 마케팅에 관련된 서비스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나에게도 이 책의 내용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책에는 다섯 종류의 불쉿 잡이 소개된다. 1) 제복 입은 하인(Flunkies), 상사의 권위를 과시하거나, 상사가 중요해 보이도록 돕는 역할, 리셉셔니스트나 수행비서 등, 2) 깡패(Goons), 외부 경쟁자나 대중을 상대로 위협하거나 조작하기 위한 직무, 군대가 대표적이며 홍보전문가, 로비스트, 텔레마케터, 기업변호사 등, 3) 임시 땜질꾼(Duct Tapers), 조직 내의 구조적 결함이나 비효율을 일시적으로 땜질하는 역할, 즉 존재하지 말아야 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된 사람들, 4) 형식적 서류작성 지원(Box Tickers), 규정, 평가지표, 체크리스트 상의 요건을 만족시키기 위한 직무, 형식적인 보고서 작성자, 평가표 작성 업무 담당자 등, 5) 작업 반장(Taskmasters), 실제 일은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관리자, 업무를 배당하거나 불쉿 잡 업무를 만들어내고 감독해 내는 불쉿 생성자가 여기에 속한다. 나의 회사 생활 20년 중 이 다섯 개의 직무에 해당하지 않은 적이 있었나 싶었다.
퇴사전 마지막으로 맡았던 업무는 이를테면 ‘작업반장’이었다. 하지만 매출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고 클라이언트를 응대하고 팀원들의 업무능력을 챙기고 때로는 누군가를 해고해야하는 일까지, 나름의 스트레스가 있었다. 나는 내 연봉이 그런 스트레스를 견디는 값이라는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또한 내가 믿고 의지하는 상사와 좋은 동료와 후배들이 있었기에 회사에 다닐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회의감이 컸다. 마케팅이란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 상품을 더 많이 팔리게 하거나 세상에 없던 필요를 만들어 소비를 추동하는 일이니까.
더구나 회사는 이제 더 이상 내가 생각하는 그런 회사가 아니었다. 상장 준비를 하면서 새로운 인력이 많이 충원되었고, 회사의 이름도 바뀌었다. 회사의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졌다. 나를 비롯한 회사의 ‘고인물’들에게는 슬슬 이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과거의 시도와 실패에서 얻은 경험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으로 비춰지고, 오직 혁신만이 중요해졌다. 때마침 회사는 물갈이 조직개편이 진행되었고 나는 살아남았지만 의욕은 사라졌다. 퇴사하기에 이보다 더 적당한 시기는 없어 보였다. 12월에 대표와 면담을 하고 인수인계를 고려한 퇴사일이 정해졌다. 그리고 드디어 그 애정을 담은 출근부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날이 왔다. 주변 사람 들의 부러움 속에서 21년 6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불쉿 잡, 시즌2
그렇게 영원히 회사를 탈출할 수 있었다면, 나는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덜 성숙한 사람으로 늙어버렸을 것이 틀림없다. 퇴사 5개월이 채 되지 않아 찾아온 우리집의 경제적인 위기는 나에게 재취업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직장생활과 나의 모습을 경험하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가장 좋았던 것은 아침에 일어나 읽기 괴로운 메일을 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퇴사 후 일주일 정도에 걸쳐 내 연락처 중에서 비즈니스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지웠고 수많은 명함들도 없앴다. 그런데 그 정글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니. 하지만 검게 변해버린 남편의 얼굴을 보고는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퇴직 후 7개월 만에 지인의 소개로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회사에 다시 취업하게 되었다. 면접을 볼 때만 해도 나는 자신감이 있었다. 업의 분야는 다르지만 하는 일은 비슷하니까 그렇게 믿고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참담했다. 다른 업계에서 온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결코 협조적이지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 새로운 팀을 만들기 위한 인력을 충원하려고 공고도 하고 개인적인 네트워크도 동원해 보았지만 잘되지 않았다. 기존 인력 들과도 합이 맞지 않았다. 더구나 모든 의사결정은 상명하달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회사였다. 모두 대표 한 사람만을 위해 일하며 서로를 견제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내가 속한 팀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 내 일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 수 없는 명백한 불쉿 잡이었다. 한 달이 되기도 전에 숨이 막혔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3개월이 지났을 때 남편에게 도저히 못 다니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남편이 정색하며 안된다고 말리지 않았다면 그때 그만두었을 것이다. 남편의 상황이 나아질 무렵까지 겨우겨우 8개월을 버티다가 회사를 그만두었다.
내가 새로운 곳에서 아무것도 바꿀 수 없겠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실패’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그 시공간을 통째로 내 인생에서 날려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생 불면증을 겪어본 적이 없었는데 분노와 화 때문에 잠이 안 오는 날이 생겼다. 그때 사적으로 만났던 모든 친구들에게 나는 나의 실패담을 털어놓곤 했다. 그렇게 계속 나의 허접함을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 순간 실패라는 것이 받아들여졌다. 나는 실패자다. 하지만 어떤가? 누구나 실패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모든 실패는 교훈을 남긴다. 불쉿 잡 시즌2는 내가 얼마나 오만했었나를 깨닫게 하는 한편 내면적으로는 조금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게 했다. 내가 자신했던 리더십,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결과물, 모두 나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전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모든 사람들, 회사의 영향력, 그리고 운 좋게 만났던 클라이언트들까지... 그들이 없이 나는 홀로 존재할 수 없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빚지고 살아왔는가를 비로소 알게되었다. 나를 빛나게 했던 사람들, 나를 괴롭히던 사람들이 모두 지금의 나를 만든 사람들이었다.
불쉿 잡이라는 단어를 쓰다 보니, 나와 함께 일했던 친구들이 떠오른다. 내가 몸담았던 업계나 사람들을 싸잡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그 안에는 정말 애정으로 자기 일에 힘을 쏟고 좋은 결과에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감히 할 수 없는 말이다.
취약한 몸들의 연대와 돌봄사회
불쉿 잡 시즌2에서 3개월째 허덕이고 있을 무렵, 한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문탁네트워크에서 하는 1년짜리 양생프로그램 링크였는데 제목이 ‘취약한 몸들의 연대와 돌봄사회’였다. 친구는 “너 돌봄에 관심 있다고 해서”라며 한번 보라고 했다. ‘돌봄’ 그것은 내가 은퇴 후 경험해 보고 싶었던 분야였다. 다행히 수업은 토요일이었고 뭐라도 해야 회사를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아 일단 등록했다. 책을 읽고 질문을 올리고 토론하는 방식의 공부는 쉽지 않았다. 더구나 아주 생소한 학자들의 텍스트였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 낸시 폴브레, 주디스 버틀러까지. 내가 관심이 있었던 건 ‘돌봄’이었는데 이렇게 어려운 것을 공부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나의 직장생활에서 공부는 나에게 구원이 되었다.
그해 6월 말 다시 회사에서 탈출하면서 문탁네트워크와 좀 더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이를테면 3개월마다 열리는 100일 장이나 특강, 혹은 연대활동 같은 것들이었다. 아마도 그런 행사 날의 하루였을 게다. 문탁선생님이 나를 보고 “회사 그만두었다며?”라면서 선생님이 진행하고 있는 K장녀돌봄말하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실무자가 필요한데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평소 “생각해 보고 말씀드릴게요”라는 말을 잘 못하는 나는 그 일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고 당장 “좋아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어쩌다’ 나이듦연구소의 일원이 되었다. 네 명의 멋진 언니들 사이에서 나는 무지렁이다. 공부해야 할 것도 많고, 수련해야 할 것도 많다. 지금도 글쓰기가 너무 괴롭고 어려운데, 처음에는 글 한 편 쓰면 빨간펜선생님같은 수정지를 받기도 했다. 잘 못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은 있지만 기분 나쁘진 않다. 누군가 나에게 조언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이듦연구소는 함께 공부하고 돌보며 각자의 다른 노년을 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녹색평론』 187호(2024년 여름)에는 ‘초고령사회,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라는 좌담회에 관한 내용이 실렸다. 사회학자 김찬호, 시인 이문재, 그리고 나이듦연구소의 문탁선생님이 참여했다. 초고령사회에서 바람직한 노년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문탁선생님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각각의 다른 노년의 모습이 발명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경제적인 것, 주거 형태, 돌봄과 관련해서도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어요. 제 화두는 생물학적 소멸에 맞춰 어떻게 실존적으로 후퇴할 것인가입니다.”라고 답변했다.
나는 ‘생물학적 소멸에 맞춘 실존적 후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내가 불쉿 잡을 탈출했을 때, 결심한 것은 앞으로는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정체성을 서포터라고 여긴다. 기획자나 실행가보다는 그들 옆에서 그 일이 잘되도록 살피고 돕는 것이다. 그런 성향이 나에게 돌봄 분야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던 것 같다. 퇴사 후에, 치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레이키를 배웠고, 그다음에는 장애인활동지원사 교육을 받았다. 앞으로 더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는 호스피스 도우미, 요양보호사, 장례지도사 같은 것들이다. 이제 내가 무엇을 하든 이전보다 더 잘하거나 열심히 하거나 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을 다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 나의 소중한 사람들의 곁에서, 혹은 알지 못했지만 인연이 되는 사람들 옆에서 힘을 보태다가 사라지고 싶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실존적 후퇴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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