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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사기를 만나다

[청년 사기를 만나다] 역사는 질문이다

by 북드라망 2025. 5. 16.

역사는 질문이다

규창(고전비평공간 규문)

 


1. ‘열전(列傳)’, 미시적 욕망의 파노라마
여느 역사서가 그렇듯 사마천의 《사기(史記)》도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다룬다. 이 인간들의 이야기는 ‘본기(本紀)’, ‘세가(世家)’, ‘열전(列傳)’으로 분류된다. 제왕들의 이야기인 ‘본기’는 고대에서부터 사마천이 살았던 한(漢)나라 무제(武帝)에 이르기까지를 하나의 시간으로 연결했다. 제후들의 이야기인 ‘세가’는 ‘본기’가 포괄하지 못한 동시대를 공간적으로 확장했다. 독특한 것은 ‘열전’이다. 제왕이나 제후는 아니지만 그들만큼 중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고 할 수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왜 기록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열전’이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의 이야기는 ‘본기’, ‘세가’에서 다뤄졌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어떻게 다를까?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 인물들은 시대에 큰 영향을 끼쳤거나 후대까지 전해질 어떤 업적을 세웠다. 나라를 건국했다든지 엄청난 발명을 했다든지 혹은 정반대로 어마어마한 잘못된 행동을 했다든지 등등. 그런데 ‘열전’에 나오는 인물들은 기존의 역사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형상들이다. 유명한 사상가들부터 뛰어난 장군, 세상을 뒤흔든 유세가들, 충신과 간신처럼 익숙한 유형도 있지만, 권력자들을 비웃는 선비들이나 자객, 유능한 상인 등 딱히 ‘역사적으로’ 기록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만큼 낯선 유형들도 넘친다. 사마천의 ‘열전’을 읽다 보면, 기존에 알고 있던 역사가 조금씩 낯설게 느껴진다.

우선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는 세상을 좋게 만든 영웅들의 역사다. 영웅들은 혼란스러운 시대를 수습하여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기도 하고, 부패한 세력에 맞서 개혁을 단행하기도 하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모두를 지켜낸다. 이처럼 역사의 흐름은 대체로 난세의 영웅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반면 ‘영웅들의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영웅이 아닌 사람들은 그저 ‘민중’ 혹은 ‘시민’이란 모호한 집단으로 뭉뚱그려진다. 영웅의 결단이 있기 전까지 스스로 어떤 것도 하지 못하는 수동적 존재처럼 간주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혹은 민족이나 국가 같은 집단적 수준의 영향력이 없었다 해서 그들을 수동적 존재로 보는 것은 너무 부당한 일 아닐까? 오히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거시적으로 포착될 수 없는 미시적인 욕망과 발화들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사마천의 ‘열전’은 무척 흥미롭다. ‘열전’에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문제 상황들이면서, 인간의 욕망이 뻗어 나갈 수 있는 다양한 갈래이기도 하다. 우리는 ‘열전’을 통해 내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구체화할 수 있고, 아직 직면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역사를 서술할 수 있었을까?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방대한 사료 더미 속에서 보편적인 질문을 도출했기 때문이다. 거의 무한에 가까울 만큼 다양한 역사적인 증거들 속에서 사마천은 인간이 걸어온 길, 걸어가야 할 길, 걸어갈 수 있는 길을 사유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마천의 고민이 ‘열전’의 가장 첫 번째 〈백이열전(伯夷列傳)〉에 담겨 있다.

 

 


2. 달아나는 인물들, 회의하는 역사가
〈백이열전〉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열전’을 서술한 사마천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백이열전〉을 통해 우리는 나머지 ‘열전’을 관통하는 사마천의 근본적인 질문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는 우선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그러나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되는 인물들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태사공은 말하였다.

“나는 기산(箕山)에 올라가본 적이 있었는데, 그 산 위에는 허유의 무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공자는 고래의 인인(仁人), 성인(聖人), 현인(賢人)들을 차례로 열거하면서 오 태백, 백이와 같은 사람에 대해서도 매우 상세하게 말하고 있다. 나도 들어서 허유와 무광의 절의(節義)가 지극히 고결하다고 느끼고 있지만, 《시(詩)》, 《서(書)》의 문사에는 조금도 그들에 관한 개략(槪略)이 나타나 있지 않으니, 이것은 어째서일까?” - 《사기(史記)》 〈백이열전(伯夷列傳)〉


‘본기’의 첫 번째 이야기인 〈오제본기(五帝本紀)〉에 따르면,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은 고대 중국의 유토피아를 이룩한 성인들이다. 이들은 혈통으로 이어진 자식에게 천하를 물려주기보다 천하를 다스릴 만한 인재를 찾아서 그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통치의 명분과 윤리를 중요하게 여긴 사람들이다. 이처럼 피로 이어지지 않은 현자에게 왕위를 주는 행위를 선양(禪讓)이라고 한다. 중국 역사상 ‘선양’이라는 권력 이양 모델을 발명했다는 점 때문에 요 임금과 순 임금은 이상적인 군주의 모델로 여겨진다. 〈오제본기〉는 요 임금이 순 임금을 ‘발굴’하기 위한 노력, 순 임금이 천하를 물려받기까지 어떤 시험들이 있었는지를 자세하게 기술한다. 그런데 전해지는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요 임금이 순 임금에게 선양하기 전 허유(許由)란 현자에게 먼저 양위를 제안했다고 한다. 그리고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허유는 통치자가 되는 것을 치욕으로 여겨 달아났다고 한다.

우리는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허유와 같은 인물들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야기한다는 사실이다. 허유처럼 권력으로부터 도주한 인물들은 시대마다 있었다. 상(商)나라 탕왕(湯王)이 하(夏)나라 걸왕(桀王)을 정벌했을 때는 변수(卞隨)와 무광(務光)이란 현자들이 있었고,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정벌할 때는 백이와 숙제라는 의인(義人)들이 있었다. 시대는 다르지만, 이들은 권력자들이 내세운 명분을 비판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물론 이 인물들도 실존 인물인지, 우리가 전해 들은 대로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런 인물들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까닭은 사람들이 이상적인 권력자들을 바라는 만큼 권력으로부터 도주하는 삶을 욕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는 허유와 변수ㆍ무광, 백이ㆍ숙제처럼 권력자들의 명분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역사에서 이런 사람들은 주목되지 않는다. 역사는 모름지기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승리를 부각시키기 위한 ‘대립자’의 투쟁으로 이루어진 역사의 서술구조에 허유 같은 사람들은 기록하기 애매하다. 겉보기에 권력자들을 비판했다는 점에서 그들과 대립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권력자들이 승리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승리자들에 반하지도, 그렇다고 도움이 되지도 않는 존재들이다. 승리와 패배, 옳음과 그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판단되지 않는 애매모호한 존재들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권력자들과 함께하거나 대립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므로. 근본적으로, 권력자들이 뒤집어엎고자 하는 ‘세상’과 사람들의 ‘세상’이 꼭 동일한 것은 아니다. 때때로 욕망과 목표가 겹치는 한에서 권력자들에게 동조할 뿐이다.

‘열전’은 ‘본기’나 ‘세가’를 관통하는 대의명분이 작동하지 않는 세계다. 즉, ‘열전’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일개 인간에 불과한 역사가에게는 시공을 초월해서 다른 사람을 온전하게 볼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따라서 누군가를 온전하게 복원할 능력도 없다. 문제는 바로 여기다. 역사가로서 주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상상’으로 펼쳐낼 수도, 파편적으로 기록을 나열할 수만도 없었을 것이다. 역사가로서 객관성을 견지해야 하지만, 어떻게 해야 ‘객관적’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사마천이 보여준 역사가의 객관성은 ‘확신하는 것’보다 ‘혼란스러움을 겪는 것’에 가깝다. 흔히 객관성은 주관성을 극복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여러 사람들의 판단이 충돌할 때 사실과 거짓이 혼란스럽게 뒤섞이는데, 이를 ‘누구에게나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시할 때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마천이 보여준 역사가의 객관성, 기록할 때 준수해야 할 윤리는 자신의 회의와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데 있었다. 이것이 내가 ‘열전’의 첫 번째 이야기 〈백이열전〉에서 말하고 싶은 것이다.

 

 

3. 자신의 올바름을 산다는 것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孤竹國)의 왕자들이다. 나라 이름부터가 절묘하다. ‘대나무처럼 절개를 지키며 고독하게 사는 나라’란 뜻이다. 이런 나라의 왕자답게 이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올바름을 위해 ‘임금’의 지위를 사양하고 도망쳤다. 그리고 ‘주나라 문왕이 노인 공경을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에게 의탁하러 가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 주나라 문왕은 이미 죽었고, 그의 아들인 무왕이 아버지의 위패를 마차에 싣고 폭군 은나라 주왕을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이끄는 중이었다. 백이와 숙제에게 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은나라 주왕이 잔혹무도한 폭군이라 할지라도 아버지의 장례를 다 마치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자식의 도리를 외면하는 것이고, 섬기는 군주를 폭력으로 몰아내는 것은 신하의 도리를 저버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이와 숙제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주나라 무왕의 정벌에 찬성했고, 주나라 군대가 승리한 뒤에는 주나라를 천하의 주인으로 인정한다. 백이와 숙제는 도리를 저버린 나라의 식량을 먹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서 수양산에 올라가 평생 고사리를 캐 먹다 굶어 죽는다.

 



어떻게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심지어 굶어 죽을 때까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지킬 수 있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산에서 내려오지 않은 백이와 숙제의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했다. 대표적으로 공자는 혼란스러운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믿음과 설령 자신의 뜻을 알아주지 않아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 인간의 도덕적 잠재력에 대한 믿음으로 백이와 숙제를 읽었다. 그렇기 때문에 “백이와 숙제는 과거의 원한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니 남을 원망하는 일이 드물었다(子曰 伯夷叔齊不念舊惡 怨是用希)”, “인(仁)을 좇아 ‘인’하게 살았으니, 또 무엇을 원망했겠는가?(求仁而得仁 又何怨)”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역사가 사마천은 공자의 평가에만 근거할 수 없었다. 사마천은 백이와 숙제가 남긴 시를 통해 다시 질문한다. “두 사람은 과연 원망했을까? 원망하지 않았을까?”

저 서산에 올라 산중의 고사리나 꺾자꾸나
포악한 것으로 포악한 것을 바꾸었으니
그 잘못을 알지 못하는구나
신농, 우, 하의 시대는 홀연히 지나가버렸으니
우리는 장차 어디로 돌아간다는 말인가?
아! 이제는 죽음뿐이로다
쇠잔한 우리의 운명이여


만약 백이와 숙제가 세상을 원망했다면, 주나라를 비롯해서 사람들이 내세운 명분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랬다면 중국을 떠나든 아니면 세계를 바로잡기 위한 어떤 행동을 했을 것이다. 반대로 원망하지 않았다면, 주나라의 행보에 반대할 필요가 없으니 수양산에서 굶어 죽을 때까지 머무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루쉰은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백이와 숙제를 “지나가는 아낙네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협한 올바름에 갇힌 자들(루쉰, 《고사신편》 〈고사리를 캔 이야기〉)”로 비판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야말로 백이와 숙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점이다.

나에게는 백이와 숙제가 질문을 놓지 않은 자들로 보인다. 백이와 숙제가 실제로 원망했는지, 원망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사람에 따라, 근거하는 자료에 따라 원망한 것으로 읽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굶어 죽을 때까지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과 그 시대에 그들에게 공감한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것이 그들의 고립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백이와 숙제가 보기에, 주나라 무왕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은나라 주왕을 살해했다. 그러나 뒤이어 천하가 주나라 무왕에게 복종한 것은, 주나라가 단순히 폭력으로 세상을 바꾼 게 아니라는 증거였다. 이때 백이와 숙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시대가 변했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고, 자신들의 도덕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안타까움도 느꼈을 것 같고, 모든 게 변하는 동안 변하지 않는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을 것 같다. 자신들이 옳고 세상이 잘못된 것인지, 반대로 자신들이 잘못됐고 세상이 옳은 것인지 답할 수 있었다면, 굶어 죽을 때까지 수양산에 머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수양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아니, 내려올 수 없었을 것이다. 답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었던 윤리부터 세계의 질서 등 ‘답 없는 질문’을 붙든 채 끊임없이 고뇌하면서 자신의 확신과 싸우고 있었던 게 아닐까.

백이와 숙제가 끝내 수양산에서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주나라 무왕의 정벌에 대해 끊임없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과연 무왕의 명분은 옳은 것인가? 백이와 숙제는 그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구시대의 유물에 불과한 것일까? 백이와 숙제가 세상과 거리를 뒀기 때문에, 백이와 숙제를 보는 사람들도 ‘세상’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백이와 숙제의 존재는 세상에서 당연하게 여겨진 명분, 가치 등을 낯설게 만드는 질문 자체다.

백이와 숙제가 보여준 회의, 혹은 타협하지 않음이야말로 역사가가 본받아야 할 ‘역사의 객관성’ 아닐까? 역사가는 자칫하면 독선적이기 쉽다. 방대한 자료 속에서 특정한 것을 선별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확신이 필요하고, 무언가를 후대에 전한다는 의무로부터 나름대로 ‘객관성’이라는 기준을 준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마천이 보여준 역사가의 객관성은 무엇인가가 옳다는 확신이 아니라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를 오가는 우왕좌왕 가운데 있었다. 가치의 혼란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그 혼란스러움 속에서 기존의 믿음과 투쟁하는 것이 ‘객관적’이라는 것이다. 사마천은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서 혼란스러움을 안고 있었을 수양산을 역사가의 자리로 삼았다.

 


4. 수양산에 오르자!
이제야 왜 〈백이열전〉이 ‘열전’의 가장 첫 번째에 놓였어야 했는지를 알 듯하다. 〈백이열전〉은 백이와 숙제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질문을 품고 ‘세상’으로부터 거리를 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백이열전〉에서 사마천은 “천도(天道)는 옳은 것인가, 잘못된 것인가?(天道是邪非邪)”라는 질문을 던졌다. 고대 중국인들은 사물들의 본성부터 왕조의 흥망성쇠까지 모든 것이 ‘천도’를 따른다고 생각했다. 가을에 접어든 나무가 무성한 잎을 떨어뜨리는 것이 자연의 운행인 것처럼, 무언가가 쇠약해지고 망하는 것도 모두 천도의 운행이다. 하지만 사마천이 묻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천도’가 아니다. 그는 ‘천도를 질문할 수밖에 없는 어떤 처지’를 보고자 했다.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 올라 자신들의 옳음과 천하의 옳음 등을 다시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가치 판단 기준을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남들이 옳다고 얘기하는 것을 그대로 따를까, 아니면 그래도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따를까? 알 수 없다. 다만 사마천은 중심에서 벗어난 다양한 삶들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들은 권력자들을 거스르다 죽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순응하기도 하고, 다른 어떤 사람들은 아예 무관하게 살기도 했다. 사마천은 이 중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인지 평가하지도 않고, 천도에 부합하는 삶이 무엇인지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시대와 어긋났다고 생각하는 그 자리에서 자기 삶을 산 다양한 유형들을 보여줄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삶들을 통해 어떤 삶이 올바른 삶인지 확신할 수 없으나 최소한 어떤 삶만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편협함으로부터 탈출할 수는 있다.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사마천이 다양한 삶을 포착하는 태도를 배운다. 내가 하는 공부는 어떤 결과물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열심히 한다고 어떤 보상이 약속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공부한다고 인생의 역경을 지혜롭게 헤쳐나갈 역량도 쌓이는 것 같지 않다.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무언가를 아는 게 아니라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의 견고한 앎을 의심할 수 있는 유일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앎을 의심할까? 사마천은 역사가의 자리가 혼란스러움을 겪는 한복판에 있다고 생각했다. 공부하는 나의 자리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것처럼, 사마천이 역사를 통해 자기만의 수양산에 올랐던 것처럼, 나도 공부를 통해 나만의 수양산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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