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서 무슨 일이
앤디 위어, 『아르테미스』, 남명성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21
영화 <마션>을 본 이래로, 앤디 위어는 나에게(다른 여러 사람들에게도) 몹시 중요한 작가가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작가’의 기준은 특별한 것은 아니고, 인터넷 서점의 ‘신간 알리미’가 신청되어 있는지 여부가 기준이다. 이 목록에 들어간 ‘작가’들은 몇 되지 않는다. 나의 경우 이 목록에는 꼭 소설가만 들어가 있다. 왜냐하면, 서점의 분류법을 기준으로 인문, 자연과학, 역사 등은 대체로 일주일에 두서너 번 정도는 꼭 들어가서 신간 또는 신간은 아니지만 미처 체크하지 못한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바구니가 늘 100권 정도의 ‘아직 사지 못한 책들’로 채워져 있곤 한다. 그 중에는 아마 끝까지 사지 않을 책들도 있을 테고, 언젠가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배송을 기다릴 책들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런 이유로 ‘소설’은 관심작가 등록을 꼭 해둘 필요가 있다. ‘소설/시/희곡 분야에 들어가 보는 건 거의 달에 한두 번이 될까 말까 하니 말이다. 어째서 거기에 잘 들어가지 않는가 하면, 일단은 신간이 너무 많기도 하고, 게다가 세부 분야도 나라별, 장르별, 테마별 등등 분류도 복잡해서 하나씩 들어가 보다가는 장바구니가 터져나갈 지경이 될 게 뻔하다. 그 중에는 읽지도 않으면서 ‘언젠가는 읽겠지’ 하는 마음으로, 요컨대 ‘충동’에 힘입어 사게 될 책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가뜩이나 그렇게 사 모은 책이 산더미인데 더는 늘릴 수 없다는 심정으로 거의 들어가질 않는 셈이다.
그래도, 그렇게 책을 사 모으는 습관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게, ‘앤디 위어 신간 알림 신청’을 하게 된 것도 그의 첫 장편작품 『마션』을 그렇게 구입했기 때문이다. 어느날 무심코 들어간 ‘소설/시/희곡’ 분야에서 말이다. 기왕에 영화를 재미있게 봤으니 ‘원작’이 궁금해지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아마 나는 영화를 지루하게 봤어도, 영화에 복수하는 심정으로 원작을 샀겠지. 그러나 이 경우엔, 원작도, 아니 원작이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이건 재미의 ‘양’과 관련된 문제인데, 영화는 러닝타임이 고작 두 시간 반쯤 밖에 안 되지만, 이 재미있는 소설은 아무리 빨리 읽어도 열 시간쯤은 끝내주는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거의 같은 이야기임에도 말이다. 소설이 너무 재미있었던 고로, 그 다음 작품 『아르테미스』를 ‘샀고’, 그 다음에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또 샀다. 그러고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먼저 읽었다. 이 역시, 아니, 나는 엔디 위어의 세 장편 중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제껏 내가 읽은 SF소설 중에, 아니 소설 중에 최소한 탑5 안에 무조건 들어간다. 그만큼 대단한 작품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아르테미스』는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두 번의 엄청난 감동 이후에 읽게 될 세번째 작품이 혹시라도 실망스러우면, 이미 광팬이 되어 버린 나는 어쩐단 말인가? 요컨대 이것은 팬의 두려움이다. 이와 비슷한 감정을 밴드 오아시스가 해체되고 난 후, 노엘 갤러거의 첫번째 솔로앨범을 기다릴 때 느꼈었다.
그러던 중에 내가 만든 스트레스를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어느 날, 어떻게든 다른 생각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아르테미스』를 집어 들었다. 그러니까 ‘될 대로 돼라?’ 매우 다행스럽게도 소설은 다른 두 작품 같은 강렬한 임팩트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충분했다. 도대체 ‘살아남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등등. 앤디 위어 특유의 ‘우정 선호’가 이 작품 안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이 ‘우정’은 막 엄청나게 끈적하고 뜨겁고 막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조금 차가운 것이 오래간다’, ‘진정한 우정은 성공한 동업에서 찾을 수 있다’ 같은, 약간 차가우면서도 ‘확실한’ 우정의 모습들을 보여 준다.
배경은, 제목처럼 ‘달’이다. 정확하게는 ‘달 개척지’의 도시 ‘아르테미스’다. 주인공 재즈 바샤라의 직업은 ‘포터’로, 말하자면 ‘짐꾼’이다. 물론, 부동산 가격이 엄청난 달의 도시에서 그녀는 지하의, 지하의 아주 작은 캡슐에서 생활한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높은 곳, 좀 더 넓은 공간에서 살 수 있을까? 그리하여 재즈에게는 부업이 있다. ‘밀수’다. 자,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주인공이 어떤 캐릭터인지, 대략 어디서 어떻게 일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요컨대 앤디 위어는 꽤나 뻔하게 흐를 이야기를 잡아서, 솜씨 좋게 특별한 이야기로 만드는, 말하자면 기술적으로 매우 숙련된 소설가다. 아르테미스가 꼭 그렇다. 『마션』처럼 처절하지도 않고, 『프로젝트 헤일메리』처럼 감동의 폭풍이 몰아치지는 않지만, 『아르테미스』는 그것대로, ‘오늘 내가 한 일들’, ‘나의 업무’, ‘나의 역할’ 따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노엘 갤러거의 새 앨범(지금은 안 나오고 있지만)을 누군가에게 굳이 권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앤디 위어의 소설들도 그렇다. 이미 읽을 사람은 다 읽었을 작품이니까. 그런데, 아직도 영화 <마션>만 보고 소설 『마션』을 읽지 않은 ‘극소수’임에 분명한(!) 분이 있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나와는 다르게, 일단 『아르테미스』부터, 그리고 『마션』을, 그리고 마지막에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다 읽고 난 다음엔 뭘 해야 할까? 서점에 가서 ‘신간 알리미’를 신청하면 된다. 그리고 목을 빼자. 앤디 위어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며.
글_정승연(문탁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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