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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77

[노론백수 1세대 김창협] 앵무새같은 글쓰기는 이제 그만! 문장에 ‘생기’(生氣)를 불어넣기! 글쓰기, 어떻게 쓸 것인가? 농암 김창협에게는 ‘독서와 글쓰기’가 가장 중요한 생업이었다. 백수 선비로서 자신을 살리고,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독서와 글쓰기’ 외에 다른 뾰족한 대책이 있을 리 없었다. 농사나 장사를 해서 생업에 종사한다면 모를까,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지식인으로 살려면 책을 읽고 글 쓰는 일 말고 그 무엇으로 존재를 증명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농암이 부지런히 공부하고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는 조선시대 지식인 선비로서 유난스럽게 대서특필할 사안은 아니다. 농암 말고도 뜻을 품은 선비라면 대부분 독서와 글쓰기를 전업으로 삼았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농암의 독서와 글쓰기에 대해 특별히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농암이 ‘어떻게 .. 2014. 5. 13.
[근대소설극장] “내 한몸 없어졌다고 누가 코나 찡그리겠는가" 한국근대소설, 등장인물소개로 맛보기 ③ 맛볼 소설 : 최서해, 「전아사」(餞迓辭), 동광(東光), 1927년 1월호 *전아사: 작별하고 맞으며 새로 하는 말 시놉시스 1926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 주인공 변기운은 외사촌이지만 친형처럼 지내왔던 인갑 형님께 자신이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라오게 된 사연을 담은 편지를 쓴다. 인갑 형님은 똑똑했던 동생이 서울에서 구두닦이를 하며 어렵게 지내는 것을 알고 나서, 본인도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임에도 기운에게 고향으로 돌아오라며 어렵게 여비를 마련해 돈과 함께 편지를 보내왔고, 이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기운이 쓰는 편지다. 면소 서기로 근무하던 변기운이 극진히 모시던 홀어머니마저 버리고 떠났던 속내와 5년간의 팍팍한 서울살이에서 겪은 일들을 이 편지에 풀어 놓는데….. 2014. 4. 11.
18세기 조선지식인(이라 쓰고 백수라 부르는), 그들이 찾아왔다! 조선의 18세기, 백수들이 펼치는 지성의 향연 연암과 다산의 계보를 찾아서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은 18세기 지성사의 큰 별이다. 이들의 빛은 아주 밝고 영롱하다. 연암과 다산이 자신들만의 고유하고도 찬연한 궤적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동시대를 비추던 선배, 동료라는 여러 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마다 하나의 빛으로 서로 각축하며 연암과 다산을 앞서 이끌었던 별들이 있었으니, 바로 이들이다. 연암의 선배요 지기였던 농암 김창협(1651~1708)과 담헌 홍대용(1731~1783), 다산의 스승이며 선배였던 성호 이익(1681~1763)과 혜환 이용휴(1708~1782)! 시작은 그랬다. 연암과 다산의 인생궤적, 문체와 세계관, 사상과 윤리 등을 계보학적으로 해명하기 위해서 그들의 .. 2014. 3. 18.
바람처럼 다가온 2편의 소설-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나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風の歌を聽け)』 | 무라카미 하루키 |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내가 세 번째로 잤던 여자는 내 페니스를 “당신의 레종 데트르(존재 이유)”라고 불렀다. …… 타인에게 전할 뭔가가 있는 한, 나는 확실히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피운 담배 개비의 수나 올라간 계단의 수나 내 페니스의 크기에 대해서 누구 한 사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는 자신의 레종 데트르를 상실하고 외톨이가 되었다. (91쪽)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실로 간단하다. 갑자기 무언가가 쓰고 싶어졌다. 그뿐이다. 정말 불현듯 쓰고 싶어졌다.....“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대학생 때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작가는 내게 이렇.. 2014.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