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3520 [기린의 걷다보면] 걷기, 로망에서 리츄얼로 걷기, 로망에서 리츄얼로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 2024. 7. 3. [북-포토로그] 나혜석과 김일엽의 자취가 서린 수덕여관 나혜석과 김일엽의 자취가 서린 수덕여관 충남 예산에는 수덕사가 있습니다. 백제 시대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로, 수덕사의 대웅전은 고려시대에 지어진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 하나라고 하네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배흘림기둥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건축물입니다. 그런데 수덕사 일주문 바로 왼쪽에는 특이하게도 여관이 하나 자리잡고 있습니다. ‘수덕여관’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관인데요. 지금은 여관으로 쓰이지 않지만, 예전에는 절에 참배를 온 이들이 실제로 묵었던 곳입니다. 이곳에 묵었던 이들 중에는 이혼 후에 조선 사회의 이중성에 지쳐 친구 김일엽을 찾아온 나혜석도 있었습니다. 걸출한 작가이자 여성운동가였던 김일엽은 이미 출가하여 수덕사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나혜석이 자신도 출가를 하겠다며 .. 2024. 7. 2. [이여민의 진료실 인문학] 심장이 두근대요! 심장이 두근대요! L은 몇 년째 인문학 공부를 같이하고 있는 50대 중년 남성이다. L은 몇 년 전 건강 검진에서 고지혈증과 고혈압 진단을 받았지만, 약을 먹지 않았다. 평소 108배와 명상, 등산을 통해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L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뻐근한 증상이 나타나 나를 찾아왔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느낀 나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바로 가기를 권했다. 다행히 L은 심장 근육에 피를 공급하는 혈관이 막혀있는 것을 늦기 전에 발견해 큰 사고를 막았다. 혈관 수술 후 L은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었다. 또 다른 경우! 최근 완경이 된 친구가 차를 타고 터널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가슴이 두근대고 답답해서 차에서 내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녀는 최근 건강 검진에서 심혈관에는 이.. 2024. 7. 1. [북-포토로그] 문어발… 드시지 마세요, 만드세요! 문어발… 드시지 마세요, 만드세요! 이런 얘기가 좀 갑작스럽긴 합니다만, 저는 실패를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뭔가 잘 안 되겠다 싶으면 “아이고, 됐다! 무슨 부귀영화를 본다고…” 하면서, 애초에 시작을 아니 하였었지요(이런 저인데 사주에 목 기운이 진짜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요 +.+). 광장시장 한복 장인을 꿈꾸던 시절도 있었지만(흠흠), 실상 저 같은 성향의 사람으로서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었답니다. 침선이란 재단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 것인데, 옷감을 마르는 일에서부터 어긋나면 시작부터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맞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다 만난 것이 뜨개였습니다. 뜨개를 하면서도 숱하게 망해 왔지만, 그래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분노와 자책과 시간과 체력을 감수하면 틀려도 .. 2024. 6. 28. 이전 1 ··· 57 58 59 60 61 62 63 ··· 88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