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1199 적, 내 미지의 친구들 적, 내 미지의 친구들 밀실 속의 환상 군 입대 첫날이 떠오른다. 흐릿한 기억들 가운데 유독 내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는 장면은, 처음으로 낯선 남자애들 20여 명과 같은 생활관에 남겨지게 되었을 때다. 짧은 몇 분의 정적이 흐르고, 다른 이들은 모두 행동을 개시했다. 서먹하고 적대적인 공기를 불식시키고 옆 자리에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익명의 빡빡머리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모두들 본능적으로 열심히 입을 놀려댔다. “이름이 뭐예요?”, “어디 살아요?”, “학교는 어디 다녀요?” 보충대에 머무는 고작 사흘 동안 볼 사람들끼리 뭐 그렇게 알아야 할 게 많다고. 내 눈에 그들의 행동은 낯선 곳에 떨어져 낯선 이들에 둘러싸인 상황을 견디지 못해 어떻게든 의지할 상대를 구하고자 하는 발버둥처럼 보였다. 그.. 2017. 9. 26. 신생아 돌보기 1탄 _ 우리에겐 아빠가 필요해!_엄마편 신생아 돌보기 1탄 _ 우리에겐 아빠가 필요해!부제 : 아빠들에게 30일간의 출산휴가를 허하라!, 아니 허해 주세요~ 내가 아기를 낳았던 신촌 세브란스병원은 자연분만의 경우 아기를 낳고 2박3일이면 퇴원을 시킨다. 나는 밤 9시가 다 되어서 아기를 낳았기 때문에 이틀밤을 있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만 하루하고 반나절 정도 병원에 있다가 집에 돌아온 거나 마찬가지. 퇴원할 때 아기와 함께 갈 줄 알았으나 신생아황달로 아기는 하루이틀 더 병원에 있어야 한다고 해서 아쉬운 마음으로 애아빠하고 둘이서만 집으로 돌아왔다(그 하루이틀이 딸이 우리에게 효도하려고 준 시간이었다는 걸 곧 알게 되었다).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고, 산후관리사 이모님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은 24시간 동안 .. 2017. 9. 22. 『어둠의 속도』 - 통조림 뚜껑을 따다 『어둠의 속도』 - 통조림 뚜껑을 따다 통조림 고등어는 기분이 어떨까. 비좁은 어둠 속에서 옴쭉달싹 못 한 채, 동그란 눈을 희번덕이고 싶어도 반사할 빛 한 점이 얻지 못한다는 것은. 단단하게 밀봉된 어둠 속에선 시간도 아주 느리게 흐를 것이다. 흐르는 용암이 굳어가는 속도로, 아주 느릿느릿. 단언컨대 나는 통조림 고등어의 기분을 안다. 필요한 앎을 박탈당한 채, 정보로부터 소외당한 채, 무지(無知)의 영토로 유폐되어 있었던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먹음직스럽게 조리된 고등어처럼, 우리는 무지한 채로 말끔히 처리되고 데쳐져서 깡통에 담겨 보존된다. 깡통을 흔들고 툭툭 건드리는 시그널들이 있게 마련이다. 어쩌면 통조림의 뚜껑을 열고 빛을 보여줄 작은 정보의 파편들이. 어둠 속에 갇힌 뇌는 미친.. 2017. 9. 20. 돈 드릴로, 『그레이트존스 거리』 ― 시장과 예술 돈 드릴로, 『그레이트존스 거리』 ― 시장과 예술 십여 년 전쯤 처음으로 『화이트 노이즈』를 읽으며 놀라움에 빠졌고 그로부터 몇 해 뒤 『코스모폴리스』를 읽으면서 ‘이건 뭐지?’를 반복했더랬다. 지난해에는 『그레이트존스 거리』라는 제목의 소설을 읽었는데 역시나 싶었다. 자본주의 사회를 초현실적 감각으로 조명하는 소설가 돈 드릴로의 세계를 보는 건 마치 일부러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골라 쓴 것 같은 체험을 선사한다. 그곳에서는 눈짓 한 번으로 수백만 달러를 이동시키는 남자가 비현실적인 그만큼 반자본주의 시위대의 퍼포먼스 또한 비현실적이다. 어떤 장소도 어떤 사람도 기댈 만한 것이 못 된다. 모두가 어딘가 일그러져 있고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장소, 그곳이 돈 드릴로가 보여주는 현대 도시다... 2017. 9. 19. 이전 1 ··· 185 186 187 188 189 190 191 ··· 30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