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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이야기 ▽214

[왕양명마이너리티리포트] 비열한 거리(distance), 북경에서 귀주까지; ‘나 뿐’ 놈들 전성시대 1 비열한 거리(distance), 북경에서 귀주까지- ‘나 뿐’ 놈들 전성시대 1 千聖皆過影(천성개과영), 良知乃吾師(양지내오사)“뭇 성인들이란 모두 지나가는 그림자일 뿐/ 양지가 곧 나의 스승이다” 시대와 나, 혹은 역사와 개인? 2019년, 이 땅은 언제나처럼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제법 찬바람이 뚜렷한 지금, 11월 중순에도, 여전히 뜨겁습니다. 이 땅이 언제 안 뜨거웠던 적이 있었던가 싶긴 합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말 그대로 한국의 근대 100년은 격동의 근대사 100년입니다. 어느 시기를 떼어 놓고 봐도 뜨겁지 않았던 시절이 없습니다. 농담처럼,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찰’ 만 합니다. 최근 몇 년만 해도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2016년과 2017년은 온통 .. 2020. 6. 17.
한무제, 제국의 여름을 보여주마! (3) – 1 한무제, 제국의 여름을 보여주마! (3) – 1흉노를 몰아내고 사방천리 영토의 주인이 되다! 외부로 향한 무제의 시선 『한서』에서 무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반고는 무제의 치세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본기와 열전파트에만 무려 50%에 달하는 비중을 할애했다. 이러한 한서의 구성은 마치 반고가 유독 무제를 편애한 것만 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것은 반고의 편애가 아니라 무제치세의 실제다. 실제로 무제치세의 한나라는 온 천하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듯, 영토는 크고 넓었으며 인물은 많았다. 게다가 공적은 또 어찌나 많았는지 ‘육경의 지위 확립, 교사정비, 정삭 개정, 역법 개정, 음률의 표준 지정 및 봉선제도 확립, 태학 확립, 백신에게 제사, 주(周)의 전통을 잇는 문장과 제도 정비’등 어지간한 황제 2.. 2020. 6. 10.
한무제, 제국의 여름을 보여주마! (2) – 유학은 어떻게 제국의 철학이 되었나? 1편 읽기한무제, 제국의 여름을 보여주마! (2)– 유학은 어떻게 제국의 철학이 되었나? 유학이 정착할 수 없는 형세 두태후가 붕어한 이듬해인 원광 1년, 한무제는 현량천거(추천제도)로 유학자인 동중서와 공손홍을 발탁했다. 무제는 이번에도 유학자였다. 주지하듯 무제가 처음 즉위하여 뽑은 인재들은 유학자였다. 그러나 무제 2년에 뽑은 당시 조관, 왕장 등의 유학자들은 두태후의 황로정치를 넘어서지 못하고 전원 침몰한 바 있었다. 당시 유학은 왜 황로정치를 넘어서지 못했던 것일까? 숙손통이 漢의 국가 예의를 제정하여 태상에 임명되었고 함께 제정에 참여한 여러 제자들은 모두 인재로 선발되었는데, 고조는 유학의 쇠퇴를 탄식하며 학문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전쟁이 계속되었고 천하가 완전 평정된 뒤에도 학.. 2020. 4. 1.
한무제, 제국의 여름을 보여주마! (1) 한무제, 제국의 여름을 보여주마!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무제(효무황제)다. 본명은 유철. 16세에 즉위하여 54년간 재위한 군주로 역사의 ‘역’자를 모르는 사람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중국 한나라의 유명한 황제다. 그는 무엇으로 유명해진 것일까? 한나라의 차서는 문경지치의 태평성대라 불리는 봄을 딛고 여름으로 향한다. 무제가 유명해진 것은 그가 한나라의 여름, 이른바 전성기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중국대륙에서 명멸했던 수많은 왕조의 전성기를 뒤로 하고, 유독 무제의 전성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제가 한나라의 여름을 이끌면서 보여준 강력한 황권중심의 리더십 때문이다. ‘황제라면 누구나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절대지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 2020.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