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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용의 서경리뷰

[토용의 서경리뷰] 주공, 통치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by 북드라망 2026. 4. 8.

주공, 통치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토용(문탁 네트워크)

 


천명은 변한다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무왕은 하늘과 땅의 신에게 제사를 올려 주나라가 승리했음을 고한다. 주나라의 탄생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사에서 왕을 비롯해 많은 주나라 귀족과 신하들은 감격과 흥분을 느꼈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낯빛을 드러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주공이다. 주공은 승리에 도취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웅장하고 화려한 제사를 올렸던 상나라의 고귀한 귀족들이 주나라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자리에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다. 천명이 바뀐 결과이다. 그것을 본 주공은 아찔했다. 지금 주나라가 천명의 주인이 되었지만 언제든 주나라도 상나라처럼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천명은 영원하지 않다. 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나라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천명을 잃어버리지 않고 주나라를 대대손손 장구히 존속시킬 수 있을까?

 

주공은 천명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천명은 언제든 하늘이 거두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나라가 천명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답은 상나라의 멸망 원인에서 찾아야 했다. “상나라를 거울삼기를 큰 명은 지키기 쉽지 않네.”(『시경』 <문왕>) 주공은 상나라를 교훈으로 삼아 대비했다. 상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紂)는 주지육림(酒池肉林)으로 유명했다. 주지육림은 후대에 사치스러운 향락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는데, 당시에 상나라가 호화로운 인신공양제사를 많이 지냈기 때문에 나온 말인 것 같다. 상나라, 주나라의 청동기 유물을 보면 예기(禮器) 중에 상나라는 주기(酒器)가 많고 주나라는 식기(食器)가 많았다고 한다. 이것으로 미루어보면 상나라의 지배계층이 술을 많이 마시고 정사에 안일했음은 분명한 것 같다.

이를 반증하듯 <주고酒誥>는 술을 경계하라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상나라가 멸망한 이유는 술에 있다. 술은 백성의 덕을 잃게 하고 나라를 망하게 한다. 그러니 제사에만 술을 써야 하고, 술을 마실 때에도 덕으로 마음을 다잡아서 취해서는 안 된다. 주왕은 술에 빠져 안일했고, 음탕하여 죄를 쌓았다. 술에 빠져 스스로 죄를 불렀기 때문에 하늘이 상나라를 멸망시킨 것이다.” 비록 상나라가 스스로의 잘못으로 망했다고 하지만, 상나라의 멸망을 교훈 삼아 천명 앞에 엄중해야 했다.

천명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안정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사태는 주공의 뜻대로 흐르지 않았다. 상나라 정벌 후 무왕이 오래 통치를 했으면 천하가 빠르게 안정이 되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무왕은 일찍 죽는다. 새로 왕위에 오른 조카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공이 섭정을 하게 된다. 그 사이에 상나라 잔존세력과 주공의 형제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등 주나라 건국 초기는 여러모로 혼란스럽고 불안했다. 이러한 반란은 민심이 완전히 주나라에 있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혁명의 정당성은 천명을 받은 것으로 증명했다. 그러나 민심을 얻는 것은 천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천하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주공의 근심은 깊어만 갔다.

주나라를 반석에 올려놓기 위한 주공의 헌신과 노력은 끊임없었다. 현자를 등용하기 위해서라면 밥 한 번 먹는 동안에 세 번이나 미처 삼키지도 못하고 뱉어낸 후 뛰쳐나가기도 했고, 머리를 감다가도 세 번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맞이하러 나갔다. 여기에서 유래된 말이 토포악발(吐哺握髮)이다. 민심을 살피고 정무에 힘쓰는데 잠시도 편안함이 없음을 뜻한다. 이러한 주공의 노력으로 동쪽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이 진압되고 나라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 그럼에도 주공은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었는데, 동생 소공이 정치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다. <군석君奭>은 주공이 그런 소공을 말리면서 설득하는 내용이다. 주공은 천하를 안정되게 다스리기 위해서는 왕 옆에 보필하는 신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공이 자신과 함께 그 역할을 해왔는데 은퇴하겠다고 하니 안 될 말이었다.

석은 소공의 이름이고 앞에 군은 존칭이다. 소공을 설득하는 긴긴 말 첫머리에 주공은 다정하게 군석이라 부르면서 시작한다. “천명을 받았지만 보전하기 쉽지 않다. 천명의 실추는 보필하는 어진 신하가 없어 선왕의 밝은 덕을 계승하지 못해서이다. 상나라의 탕임금 옆에는 이윤이 있었다. 문왕이 천명을 받은 것은 문왕 자신의 덕성도 출중했지만 문왕을 보좌하는 뛰어난 현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큰 냇물을 헤엄쳐가는 것처럼 걱정되고 두렵다. 성왕을 잘 보필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나는 그대와 함께 협심해서 어려운 정국을 구제하고 왕업을 이루고 싶다. 그대에게 나의 진심을 말한다. 우리 두 사람이 협력해서 백성들이 큰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하자.” 주나라를 위한 주공의 걱정이 절절하다. 『서경』을 강독할 때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주공의 인간적인 고뇌와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주공에 대해서 공자가 흠모한 사람이라 성인으로 추존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서경』을 통해 비로소 주공을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대우정(大盂鼎)과 명문.

주나라 강왕이 귀족 우(盂)에게 남긴 말을 새긴 청동 솥으로 술을 경계하라는 내용이 솥 내벽에 새겨져 있다.

(출처-위키백과)

 

 

 
민심을 얻으려면 덕으로 다스려라
『서경』에서 「주서周書」의 분량은 책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주서」에는 모두 32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주공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편은 「주서」의 3분의 2에 달한다. 「주서」의 내용 중 대부분이 주나라 건국 초 무왕부터 성왕 때까지의 기록이며, 이 시기 주공은 실질적인 권력자였기 때문이다. 주공이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금등金縢>을 비롯해서 동쪽의 반란을 정벌하기 위해 출정하면서 진압의 정당성을 알린 <대고大誥>, 새로운 행정수도인 낙읍을 건설하고 상나라 유민을 이주시킨 기록인 <소고召誥>, <낙고洛誥>, <다사多士>, 인재등용과 행정조직에 관련된 <입정立政>, <주관周官> 등 「주서」의 대부분은 주공이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애쓴 노력의 기록들이다. 천명을 보전하고 덕을 공경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거의 모든 편에 들어있는데, 그 중 <강고康誥>, <주고酒誥>, <재재梓材>에서 주공의 정치철학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세 편은 주공의 동생인 강숙(康叔)을 위(衛)나라 제후로 봉하면서 당부한 말이다. 위나라 지역은 상나라의 본거지로서 많은 유민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통치에 특별히 신중해야 했다. 주공은 명덕(明德)과 신벌(愼罰)로 다스릴 것을 강조한다.

하늘은 천명을 내려주지만 천하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은 민심이 결정한다. 수성의 험난함은 민심을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주공은 민심을 얻는 통치방법으로 덕을 생각했다. 주나라는 덕이 있었기 때문에 천명을 받았다. 반면 상나라는 덕을 공경(敬德)하지 못했기 때문에 천명을 잃게 되었다. 주공은 문왕의 아름다운 덕을 이어서 덕정을 베풀어야 천명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왕은 덕을 밝히고 형벌을 신중하게 하셨으며 감히 홀아비와 과부를 업신여기지 않으셨다.” 문왕이 천명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명덕신벌에 있었다. 문왕은 홀아비, 과부처럼 소홀하기 쉬운 약자들까지 살폈고, 공경해야할 사람을 공경했다. 유가에서는 정치를 말할 때 항상 ‘호소할 곳 없는 자들’을 먼저 말한다. 정치의 기본은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이 잘살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이에 대한 기본 관념은 『서경』에서부터 시작한다.

천명이 유지될 수 있느냐의 여부는 통치자의 덕의 유무에 있다. “덕을 공경히 닦지 않으면 천명을 실추한다.” 이 때 덕은 단순히 내면의 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덕은 정치적 행위이자 덕의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군주는 마치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것처럼 백성을 보호해야 한다. 보민(保民)은 명덕의 중요한 실천이다. 백성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겨 경건하게 다스려야 한다. 무사안일 하지 않으며 백성을 화합시키고 편안히 보호해야 한다.

명덕과 함께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형벌에 대한 신중함이다. <강고>에서는 신벌을 명덕에 비해 자세하게 말한다. “형벌을 경건히 밝혀라. 형벌과 사형은 신중하게 해라. 고의로 지은 죄는 아무리 작은 죄라도 처벌해라. 과실인 경우는 숨김없이 다 밝힐 경우 용서해라. 하늘이 죄 지은 자를 벌준다. 군주 맘대로 벌을 주거나 죽이지 않는다.” 군주에게 처벌권이 있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함을 의미한다. 과오로 지은 죄는 너그럽게 용서하되 사사로운 감정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형벌을 신중하게 한다는 것은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는 것이고, 이 또한 정치의 기본이 된다.

위나라는 상나라 유민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관리가 필요했다. 상나라 사람들을 안정시키고 화합하는 것이 강숙의 임무였다. 그런데 관습과 법률이 달랐던 상나라 유민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그 방법에 대해 주공은 이렇게 말한다. “상나라의 법률을 적용해라.” 상나라의 형벌 중에 질서 있는 것을 겸해서 쓰라는 것이다. 종족마다 다른 법률을 포용하는 관대함이 보인다. 무엇보다 처벌을 결정하기 전에 여러 번 심사숙고해야 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형벌을 적용하고 사형을 집행해서는 안 된다. 주공은 강숙에게 명덕신벌의 가치를 강조했다.

“황천은 특별히 친근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어 오직 덕이 있는 사람을 도와주시며, 민심은 일정하게 좋아하는 대상이 없어 오직 은혜를 베푸는 이를 그리워한다.” 천명이 영원하기를 바라고 오래도록 안정된 나라를 원한다면 반드시 군주 자신이 덕을 공경하고 백성들을 덕으로 인도하여야 한다. 군주가 덕의 정치로 백성에게 은혜를 베푼다면 민심을 얻을 수 있고, “백성들이 원하는 바를 하늘은 반드시 따르신다.” 군주에 대한 하늘의 평가는 백성들의 평가에 의해 결정된다. 민심을 얻어야 천심을 얻는다. 명덕신벌은 주공이 남긴 정치 유산으로 공자에게로 이어져 덕치의 주요 개념이 된다.
  

새로운 통치질서-예악제도
공자는 대부 계손씨의 집에서 행해진 천자의 의례를 본 후 주공의 예악이 무너진 것에 대해 탄식했다. 주공은 공자에게 이상적인 인간상이자 정치적 모델이었다. 공자의 주공에 대한 각별한 존숭은 바로 주공이 만든 예악제도에 있었다. 공자가 주공을 흠모하고 주나라를 따르겠다는 말은 주공의 정치사회제도라고 할 수 있는 예악제도를 혼란스러운 시대에 다시 부활시키고자 한 의지였다.

보통 주공이 ‘제례작악(制禮作樂)’, 즉 예악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서경』에는 주공이 예악을 만들었다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기록이 없다. 예악은 주나라 이전에도 있었다. 상나라에는 사치스럽고 화려한 제사가 있었다. 종교적 의례였던 예를 주공은 도덕적 규범체계로 재탄생시켰다. 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에 맞는 규범적 행위가 뒤따라야 했다. 상나라의 문화와 다른 완전히 새로운 질서원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본다면 『서경』의 주공과 관련된 대부분의 기록은 예악에 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공은 예악을 단순히 신과 인간을 소통시키는 제례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제도, 의례 등 인간사회를 규범화하는 문화로 바꾸었다. 예는 이제 사회·문화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도덕질서를 의미하게 되었다.

새로운 주나라는 넓어진 땅과 많은 종족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했을까? 특별한 통치조직이 필요했고 그에 따라 봉건제도를 만들었다. 봉건은 아들, 동생, 친척들을 전략적 요충지에 파견하여 그 지역을 지키고 상호간 긴밀히 지원하는 정치제도이다. 혈연뿐만 아니라 유능한 사람에게도 땅을 나누어 주었다. 주공의 노(魯), 강숙의 위(衛)등 직계 혈통의 동성제후국이 있었고, 강태공의 제(齊), 상나라 주왕의 서형(庶兄)인 미자의 송(宋) 등 이성제후국이 있었다. 또한 순임금의 후손에게는 진(陳)을, 우임금의 후손에게는 기(杞)를 봉국으로 주었다. 이 봉국들은 천하의 울타리가 되어 주나라를 지켰고, 경제적으로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혈연 중심의 통치 네트워크에 필요한 윤리는 친척 사이를 화목하게 만드는 효였다. 주나라의 통치구조와 작동원리는 효라는 덕목에 뿌리를 두었다. 여기에 체계적인 예의 등급과 의식으로 질서를 유지했다. 예를 들면 군신, 부자, 부부, 형제와 같은 신분과 지위가 있었고, 부모는 자애롭고 자식은 효성스러워야 한다는 윤리적인 의무를 가졌다. 이를 예악제도라고 하는데, 예악은 당시의 정치와 문화를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었다.

“크게 악한 자는 크게 미워하는 법인데, 하물며 효도하지 않고 우애하지 않는 자야 오죽하겠는가. 이들이 벌을 받지 않는다면 하늘이 우리 인간에게 준 법도가 크게 혼란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문왕이 정한 벌을 내려 이들을 처벌하고 용서하지 말라.”


주공은 효제(孝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데서 혼란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 근본적인 윤리질서가 공동체를 해칠 때에는 단호하게 벌을 줄 것을 강조했다. 이는 바로 효제가 예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질서의 근본이 됨을 말한다. 주공은 혈연공동체의 효제를 봉건국가의 사회적 윤리이자 통치체도의 근간으로 삼은 것이다.

주공은 이전의 통치제도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했다. 덕으로 다스리라는 명덕의 개념은 이미 요순의 정치에도 있었다. 주공의 정치는 요순의 덕의 연속성에 있고, 유가의 덕치 개념으로 완성된다. 신화 속 덕치를 주공은 실제 제도로 구현해냈다. 덕을 표현하는 구체적 형식으로서의 예가 곧 예악제도이다. 예악제도는 이전 상나라의 제사문화중심의 정치에서 인간이 가진 도덕적 이성을 보편성으로 하는 인간중심의 정치질서로 바꾼 결과였다. 공자 이후 유학자들은 예를 국가와 인간 사회를 다스리는 근본 도구로 생각했다. 이러한 사유의 바탕은 주공이 새롭게 창조한 예악문화에서 비롯된다. 감히 말한다면 중국의 역사는 주공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주공은 정치,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 걸쳐 이전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변화를 창조했다. 이것이 바로 주공이 성왕의 반열에 나란히 설 수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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