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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용의 서경리뷰

[토용의 서경리뷰] 우임금이 구현한 상상 속의 천하

by 북드라망 2025. 9. 2.

우임금이 구현한 상상 속의 천하

 

토용(문탁 네트워크)

 

신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2019년 가을 한문강독 세미나는 중국 성도로 수학여행을 갔다. 그 때 갔던 곳 중 하나가 도강언이었다. 도강언은 2200여년 전 진(秦) 소왕(昭王) 때 이빙(李氷) 부자가 세운 수리 시설이다. 민강의 범람으로 살기 힘들었던 사천지역은 도강언 덕분에 곡창지대로 바뀌게 된다. 사천은 이로써 토지가 비옥하고 물산이 풍부한 지역을 뜻하는 천부지국(天府之國)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강 가운데에 있는 물고기 부리 모양 같이 생긴 어취(魚嘴)는 물을 외강(外江)과 내강(內江)으로 나누는 역할을 한다. 보기엔 그렇게 대단하게 보이지 않는데 이거 하나로 물줄기를 바꾸어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니 새삼 놀라웠다. 마침 당시 『서경書經』을 읽고 있던 중이어서인지 도강언을 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우(禹)임금의 치수를 떠올렸다.

홍수는 고대부터 이미 큰 걱정거리였고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에 치수는 정권의 가장 큰 숙제였다. 농경이 시작되기 전 북중국 대부분 지역은 온난 다습한 기후로 삼림이 울창하였고, 기원전 2000~1000년 당시 중국 동부의 대부분은 늪과 호수로 덮여있었다. 요(堯)임금은 ‘넘실대는 홍수가 바야흐로 해를 끼쳐, 넘쳐흘러 산을 품고 언덕을 올라타 질펀한 물이 하늘에 닿을 듯이 출렁거리므로’ 신하 곤(鯀)에게 치수를 맡겼으나 9년이 지나도록 성공하지 못했다. 이에 요를 이은 순(舜)임금은 우에게 그 일을 맡긴다. 우는 곤의 아들로 토목공사를 담당했던 사공(司空)의 직위에 있었다.

치수에 뛰어든 우는 결혼 후 겨우 4일 집에 있었고, 아들 계(啓)가 태어났어도 돌볼 틈이 없었다. 치수기간 동안 세 번이나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않았고, 손수 삼태기와 보습을 들고 일을 하여 정강이와 장딴지에 털이 다 닳을 정도였다. 우의 치수방법은 하천의 물을 터서 바다로 흘러들어가게 하는 것이었다. 앞서 치수에 실패한 곤의 방법과 반대였다. 곤이 인위적으로 물길을 막아서 홍수를 다스리려고 했다면 우는 물길대로 틔워주는 방법을 썼다.

홍수로 백성들이 혼란에 빠지자 우는 육지에서는 수레를 타고 물에서는 배를 타고 진흙길은 썰매를 타고 산길은 바닥에 쇠를 박은 신을 신고 다니면서 산을 따라 돌며 나무를 제거하였다. 9주의 하천을 터서 사해로 흘러가게 하였고, 밭도랑과 봇도랑을 깊이 파서 물이 하천으로 흘러들게 하였다. 익(益)과 함께 여러 가지 날로 먹을 수 있는 것을 나누어주었고, 직(稷)과 함께 파종하여 각 지역에 맞는 농작물을 재배하여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힘썼다. 그리고 쌓여 있는 재화들을 교역하여 만방이 두루 잘 다스려지게 했다. 이로써 13년에 걸친 치수가 완성되었다.

 



우의 공적으로 천하에 덕을 밝히는 순의 정치가 비로소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순은 제위를 우에게 물려준다. 하(夏)나라의 탄생이다. 경전에서는 하‧은‧주 삼대(三代)를 통칭해서 많이 거론되지만 역사책에서는 중국 고대 왕조의 시작을 은나라로부터 서술한다. 고고학상의 문화와 역사적 전설 속의 문화를 증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자자료에 있다. 그러나 하나라는 남아있는 문자자료가 없다. 다만 고대 문명 유적지인 얼리터우를 하나라가 있던 곳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라의 시조가 되는 우는 신화와 역사의 경계에 있는 인물이 된다. 치수신화의 주인공으로서 신화적 인물이자 중국 최초의 왕조국가를 세운 역사적 인물이다. 그리고 하의 건국과 함께 요에서 순으로, 순에서 우로의 선양은 끝나고 우의 아들이 제위를 물려받으며 세습 왕조가 시작된다.

우는 회계산에서 죽었다고 하는데 무덤이 현재 절강성 소흥시에 있다. 소흥은 루쉰의 고향으로 루쉰은 우의 치수신화를 소재로 『홍수를 막은 이야기』라는 소설을 썼다. 중국 각지에서는 수재해를 예방하는 신으로서 우의 동상과 사당을 세워 기리고 있다. 신화이자 역사로 우는 대우(大禹)로 불리며 경전 속 성왕으로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천하의 지리적 구획 - 9주(州)
『서경』 <우공禹貢>은 우의 치수사업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의 치수는 실제 순임금 때 있었던 일이고 그에 관한 기록이 이미 「우서虞書」에 보이기 때문에 「우서」에 있어야 맞다. 그런데 <우공>은 「우서」 다음에 나오는 「하서夏書」의 맨 처음에 있다. 그 이유는 우가 하나라의 시조이고, 치수사업의 성공으로 순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즉 <우공>은 신하를 천자로 만든 위대한 공업의 기록이다.

<우공>이라는 편명은 우임금의 공부(貢賦)제도, 즉 우가 제정한 세금제도를 뜻한다. 맹자는 공(貢)에 대해 몇 년 동안의 풍년과 흉년의 중간치를 비교하여 백성에게 취하는 일정한 조세제도이며, 하나라에서 공법(貢法)을 썼다고 말한다. 부(賦)는 토지세이고 공(貢)은 공물인데 부와 공의 내용이 모두 있는 <우공>에서 공만 쓴 이유는 맹자가 하나라 조세제도를 공법(貢法)이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한다.

교훈과 훈계로 가득한 『서경』에서 <우공>은 좀 독특하다. 우선 길이가 가장 길다. 서경 58편중에서 가장 길다. 「우서」와 「하서」에 있는 9편 중 <우공>의 분량이 삼분의 일이다. 그리고 내용도 굉장히 단순한데다 반복적이다. 천하를 9주(州)로 나누고 각 주마다 경계가 되는 산과 강을 나열한다. 그리고 토질을 나누어 토지세와 공물을 부과한다. 이 때문에 강독을 하는 내내 특별히 재밌지도 않은 중국 지리에 관해 장황한 설명을 듣는 것 같았다. 그래서 몇 달에 걸쳐 <우공>을 강독하고 끝냈을 때는 얼마나 후련하던지. 사실 <우공>의 본문 내용은 간략했다. 다만 채침의 주석이 길었기 때문에 오래 읽느라 지루했고, 어려운 한자가 많아 찾느라 시간도 많이 걸렸다. 어쨌든 이것으로 두 번 다시 <우공>은 안 볼 줄 알았다. 다른 책을 읽다가도 <우공>을 특별히 참고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람 일 한 치 앞도 모른다고 <우공>으로 글을 써야하는 날이 올 줄 어찌 알았으랴.

우가 치수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토지를 나누어 9주를 만든 것이다. 산의 형세에 따라 나무를 베어 길을 틔웠으며, 높은 산과 큰 강으로 주의 경계를 정하였다. 예를 들면 황하, 회수, 태산, 화산, 형산 등인데 지금도 이 곳은 중국의 주요 하천과 산이다. 현대 중국도 황하를 기준으로 하남성과 하북성으로 나누고, 태항산맥을 기준으로 산동성과 산서성을 나누고, 동정호를 사이에 두고 호남성과 호북성을 나누고 있다.

땅을 구획하고 홍수를 다스린 후 우는 토질에 따라 세금을 부과했다. 토지를 크게 상중하 3등급으로 나누고, 각각의 등급을 다시 세분하여 9등급을 만들었다. 그에 따라 토지세도 9등급으로 나누었다. 기주(冀州)를 예로 들면 토질은 5등급인데 그에 따른 토지세는 풍년에는 1등급을 흉년에는 2등급을 내었다. 토질의 등급에 비해 세금의 등급이 높은 것은 땅이 넓고 사람이 밀집했기 때문이다.

토지세를 제정한 다음은 그 지역 특산물을 바치는 공물이다. 예를 들면 옻나무와 뽕나무가 잘 자라는 연주(兗州)의 경우는 옻칠과 생사를 바쳤다. 바닷가의 넓은 갯벌이 있는 청주(靑州)는 소금, 해산물이 공물이었다. 이밖에 옥, 금속, 상아, 가죽, 비단, 소금, 진주 등 각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물품을 바쳤다. 토지세와 공물의 운송경로는 수로이다. 천자가 있는 기주로 수송하는데 대부분 황하의 물길을 이용한다. 후대 왕조에서 조세를 수로로 운송하는 것이 기본이었는데, 그 시작을 여기 <우공>에서 볼 수 있다.


천하의 정치적 구획 - 5복(服)
<우공>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9주를 나누고 공부(貢賦)제도를 만든 것과 5복(五服)제도에 대한 부분이다. 9주가 자연지형에 따라 나눈 지리적 구획이라면 5복은 정치적 구획이라고 할 수 있다. 오복은 천자가 있는 왕기(王畿)를 중심으로 5개의 동심원으로 구성되며 토지와 성(姓)을 내려주어 제후로 세웠다. 500리마다 복을 두는데 전복(甸服), 후복(侯服), 수복(綏服), 요복(要服), 황복(荒服)이다. 왕성 밖 4면이 모두 500리씩이다. 복(服)은 정치적 의무를 뜻한다. 오복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정치적 지위를 가지고 의무를 담당한 것이다. 중앙과 가까울수록 중앙의 정치력이 강하게 미치고 중앙에서 멀어질수록 미약해진다.

전복은 천자가 직접 다스리는 지역으로 왕성(王城)과 가장 가깝다. 전복은 왕성의 식량을 담당하는 의무를 지닌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거리별로 운송하는 벼가 다르다는 점이었다. 백성들이 수송까지 직접 담당했기 때문이다. 전복 500리 중에서 왕성과 가장 가까운 100리는 밑동까지 온전한 벼 포기 전체를 바치고, 그 다음 100리는 밑동을 자르고 볏짚이 반쯤 달린 것을 바친다. 그 다음 100리는 짚의 거친 거죽을 제거한 것을 바치고, 그 다음 100리는 겉껍질을 벗기지 않은 알곡을 바치고, 그 다음 100리는 쌀을 바친다. 운반하는 노동력을 생각하여 지역의 원근에 따라 곡식의 무게까지 세세하게 구분을 한 점이 인상적이다.

전복 다음은 후복이다. 후복은 500리를 세 등급으로 나누었다. 가장 안쪽 100리는 경대부에게 나누어준 채읍으로 그들의 녹봉에 해당한다. 그 다음 100리는 왕의 일에 종사하는 소국을 두었고, 그 다음 300리는 제후국의 봉토인 대국을 배치하였다. 제후국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다. 후복 다음 수복은 왕성으로부터 먼 거리에 있지만 천자의 통치가 직접 미치는 곳이다. 안쪽 300리는 문(文)으로 교화하고 바깥쪽 200리는 무(武)로 다스렸는데 국토를 수호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수복 다음은 요복이다. 300리는 오랑캐(夷)의 땅이고, 나머지 200리는 유배지이다. 다음 황복도 요복과 마찬가지이다. 안쪽 300리는 오랑캐(蠻)가 나머지 200리는 추방당한 죄인이 사는 곳이다. 요복과 황복은 천자의 통치를 직접 받지 않지만 매여 있는 지역이고, 죄의 경중에 따라 원근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관념 속의 천하를 실제로 구현하다
하나라 유적지라고 추정되는 얼리터우는 낙양 부근이다. 맹자는 은나라와 주나라가 흥성했을 시기에도 땅이 천리가 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실제 하나라 통치력이 미치는 범위도 그렇게 넓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9주의 강역은 넓다. 사방 5000천리나 되는 땅은 제국의 영토에 맞먹는다. 실제 우임금 당시에 통치구역을 이렇게 획정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런 인식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공자가 『서』를 편찬했다고 하는데, 공자의 천하관념이 <우공>에 반영된 것일까? 만약 『서경』이 전국시대 관념의 산물이라면 당시 유가 지식인들이 주나라의 제도를 이상적으로 여겨 우임금의 치수를 통해 관념상의 통치지역이었던 천하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라 생각한다. 천하에 왕의 땅이 아닌 것이 없다는 인식하에 9주라는 지리적 구획과 오복이라는 정치적 구획을 통해 관념상의 천하를 실제 천자의 통치력이 미치는 천하로 만들어낸 것이다.

우가 익과 함께 산천을 정비하자 민생이 안정될 수 있었다. 식량의 공급이 원활해지면서 저장도 가능해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지역과 교역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치수의 일차 목적은 백성들의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토질과 생산물에 따라 적절한 세금을 부과하여 생활을 안정시키고 국가재정을 확보하는데 있었다. 거기에 궁극적 목적은 천자의 위엄과 교화가 천하에 구현되는 정치공동체를 만드는데 있다. <우공> 마지막은 우가 순에게 치수의 성공과 5복의 제정으로 교화가 만방에 퍼졌음을 보고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9주의 구획은 통치력의 확대과정이다. 각지에서 바치는 토지세와 공물을 규정함으로써 9주의 실체를 보다 구체화한다. 9주가 지리적인 원근에 따른 친소관계를 나타낸다면 5복은 혈연관계에 바탕을 둔 정치적인 원근을 나타낸다. 차등적인 정치적 의무를 지닌 각 복은 중앙과 지방, 즉 왕과 제후의 관계를 보여준다. 땅을 나누어 토질에 맞게 세금을 부과하고 공물을 바치게 한 것, 천자와의 친소관계에 따라 5복으로 나누어 제후를 분봉한 것 등은 주나라 봉건제도의 원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번에 <우공>을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보였던 부분은 이민족과 관계를 맺는 부분이었다. 천자의 통치력이 직접 미치는 수복을 경계로 요복과 황복은 이민족들이 사는 곳이다. 천하 안에 이민족을 포함함으로써 그들은 이민족을 적대적인 외부가 아니라 교화의 대상으로서 함께 사는 사람들로 포용했다. 삼묘는 순임금에게 내쫓겨 귀양을 갔던 지역의 물이 빠져 집을 짓고 살게 되자 마음을 잡고 복종하였다. 이밖에도 <우공>에는 도이(島夷), 우이(嵎夷), 래이(萊夷), 회이(淮夷), 화이(和夷) 등 다양한 이민족이 등장하여 일통(一統)의 천하체계 속 하나의 구성원으로 자리하고 있다. 공자도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했는데, 이적들은 함께 사는 존재였지 배척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훗날 화이(華夷)의 명확한 구분으로 장성을 쌓아 경계를 분명히 하는 것은 <우공>에서 보여주는 천하의 관념과는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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