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홍범, 다른 정치
토용(문탁 네트워크)
주나라의 길을 묻다
“헌법은 국민적 합의에 의해 제정된 국민생활의 최고 도덕규범이며 정치생활의 가치규범으로서 정치와 사회질서의 지침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사회에서는 헌법의 규범을 준수하고 그 권위를 보존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헌법재판소 1989.9.8. 선고 88헌가6 결정)
12.3 불법계엄 사태 이후 헌법을 읽고 필사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계엄이라는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 또 그것의 위법성을 알고 헌법에서 보장하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헌법은 도덕규범이자 가치규범의 지위를 가진다는 점에서 일반 법률 위에 존재하는 최고법이자 국가통치의 이념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헌법과 등치시킬 수는 없으나 고대에도 지금의 헌법과 같은 역할을 하는 정치원리가 있었다. 바로 『서경』에 나오는 ‘홍범(洪範)’이다. 홍은 크다(大), 범은 법의 뜻이다. 즉 홍범은 천하를 다스리는 큰 법이라는 의미이다.
상나라를 정벌한 무왕은 상제와 조상에게 승리를 고하고 만천하에 주나라의 시작을 알렸다. 상나라 제사의 웅장함과 호화로움, 수많은 희생제물과 제기들, 부유한 나라의 찬란한 제사문화. 그 속에는 인간제물까지 있었다. 신을 향한 숭배가 화려해질수록 잔혹함은 더해간다. 상나라 문화를 고대의 제사문화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고고학 유물은 순장과 인신공양 제사의 흔적을 너무 많이 보여준다. 과거 주나라는 이러한 상나라의 속국으로서 그들의 화려한 제사를 도왔다. 인신공양의 제물을 사냥해서 바치기까지 하면서.
천하를 가진 주나라는 마냥 안심하고 기뻐할 수 없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상나라의 몰락을 지켜본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천하를 통치할지 깊은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천명을 받았다’로 끝나서는 안 되었다. 천명은 언제든 옮겨갈 수 있기에 주나라도 상나라와 같은 처지가 될 수 있었다. 천명은 무상하다. 그런 위기의식이 무왕을 움직였다. 우선 상나라 유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민심을 통합해야 했고, 상나라와 다른 통치철학을 만들어야 했다.
무왕은 상나라의 현인 기자(箕子)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한다. 기자는 폭군 주왕의 작은아버지이다. 미자, 비간과 함께 상나라의 세 현인 중 한 사람으로 주왕의 폭정에 간언을 하다가 미친척하며 종이 되었다고 한다. 무왕이 조선에 봉해주었다는 『사기』의 기록 때문인지 기자조선의 시조라고 보기도 한다.(기자조선은 그 실체에 대해 논란이 많다.) 자신이 멸망시킨 상나라의 현인을 존중하며 자문을 구하는 무왕의 행위는 상나라 백성들을 위로하고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제스처였다.
무왕 : 아, 기자시여. 하늘이 묵묵히 백성들을 안정시켜 그들의 삶을 도와 화합하게 하시는데, 나는 그 이륜(彛倫)이 차례대로 펼쳐지게 된 까닭을 모르고 있습니다.
기자 : 옛날에 곤이 홍수를 잘못 막아 오행의 배열을 어지럽혀 놓자 상제가 진노하여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내려주지 않아 이륜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곤이 귀양 가서 죽고 우가 그를 이어 일어나자 하늘이 우에게 홍범구주를 내려주시니 이륜이 차례로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무왕의 질문은 한마디로 요순시대 같은 나라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 펼쳐지는 올바른 사회질서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기자는 옛날 우임금이 만든 홍범구주에 따라 통치하면 된다고 답한다. 곤은 우임금의 아버지로 우임금에 앞서 먼저 치수를 맡았었다. 그러나 실패하여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우임금이 그 뒤를 이어 홍수를 다스리고 농지를 개간하여 사람들이 제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 세상은 하늘이 우임금에게 내려준 ‘홍범구주’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만들어졌다. 홍범구주는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개의 큰 규범으로 이상적인 정치질서를 말한다.
하늘은 우임금에게 홍범구주를 어떻게 내려주었을까. 『한서漢書』 「오행지五行志」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우가 홍수를 다스릴 적에 하늘이 낙서(洛書)를 내려주거늘 이것을 본받아 나열하였으니, 홍범이 바로 이것이다.”
낙수에서 거북이가 나왔는데, 이 거북이 등에 이상한 암호문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을 낙서라고 하는데, 낙서는 도형 같기도 하고 숫자 배열 같기도 한 기묘한 무늬로 하늘의 질서를 나타낸 것이다. 우임금이 그것을 보고 숫자를 차례로 나열해서 만든 것이 홍범구주이다.
기자는 당대 최고 지식인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자신이 가진 지혜와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무왕에게 통치원리를 전수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기자 한 사람의 생각이었을까? 아마도 기자로 대표되는 일군의 학자들이 그때까지의 정치사상을 종합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우임금을 선택했을까? 하나라 시조 우임금은 「우공」편에서 보듯 치수를 성공시켜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우임금의 치수는 중국 역사에서 하나의 분기점이 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주나라도 상나라와는 다른 문명 창조가 필요했다. 거기에 우임금의 낙서 신화는 안성맞춤이었다. 새로운 통치 질서를 만들고자 했던 주나라는 우임금의 권위를 빌려 ‘홍범’이라는 이후 역대 제국의 통치에 중요하게 활용이 되는 정치이론을 만들어내었다.

홍범 9조목의 내용
홍범의 아홉 조목은 무엇인가. 오행(五行), 오사(五事), 팔정(八政), 오기(五紀), 황극(皇極), 삼덕(三德), 계의(稽疑), 서징(庶徵), 오복(五福)・육극(六極)이다. ①오행은 수, 화, 목, 금, 토의 다섯 가지 물질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물질들이다. 이 순서대로 오행이 생겨났고, 각각 고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물의 경우 적시기도 하고 아래로 흘러가기도 한다. 맛으로 보면 짠맛이다. 불은 불꽃을 튀기기도 하고 위로 올라가기도 한다. 맛은 쓴맛이다. 나무, 쇠, 흙도 마찬가지로 각각의 성질이 있다. 오행은 맛뿐만 아니라 소리(聲)와 색(色)도 있다. 즉 오행의 작용이 오미(五味), 오색(五色), 오성(五聲)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②오사는 오행을 사람의 도덕적 태도와 연결한 것이다. 오사는 용모(貌), 언어(言), 봄(視), 들음(聽), 생각함(思)의 다섯 가지 일이다. 용모는 공손해야 하고 언어는 이치를 따라야한다. 밝게 보고, 분명하게 듣고, 슬기롭게 생각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태도인데, 특히 군주가 닦아야 하는 경건한 몸가짐에 대해 강조한 조목이다.
③팔정은 군주가 정치하는데 힘써야 하는 8가지 분야이다. 중요한 순서대로 나열하는데 첫 번째가 식량이다. 그 다음으로 재화와 제사이고 그 다음이 토지, 교육, 법, 외교 등을 담당하는 관리, 그리고 마지막이 군사이다. 민생, 외교, 국방 등 오늘날 대통령이 급선무로 삼아야 할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④오기는 해(歲), 달, 날, 별과 별자리, 역수(曆數)이다. 농업이 중요한 시대였기 때문에 하늘의 운행을 헤아려서 좋은 역법체계를 확립해야 했다.
오행, 오사, 팔정, 오기는 하늘과 사람의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다. 즉 오행과 오기는 하늘의 범주에, 오사와 팔정은 사람의 범주로 나뉜다. 사람의 일인 오사와 팔정은 하늘의 법칙인 오행과 오기에 합치되어야 한다. 군주가 이렇게 할 때 5번째 조목인 황극이 제대로 세워진다. ⑤황극은 임금이 자신의 몸으로 지극한 표준을 세우는 것이다. 극(표준)이 서는 것은 복이 모이는 것을 말한다. 군주가 복을 모은다는 것은 백성들에게 복을 베풀어 감화시키는 것이다. 황극은 왕의 의(義), 왕의 도(道), 왕의 길(路), 이 세 가지로 행해진다. 이 세 가지를 정도에 어긋나지 않게 해야 한다.
6조목에서 9조목까지는 황극이 세워진 후 행해지는 구체적인 정치실천이다. ⑥삼덕은 신민을 다스리는 세 가지 방식이다. 이 방식을 잘 운용하는 것이 황극의 작용이자 덕이다. 세 가지 방식은 정직한 방법, 강경한 방법, 유순한 방법인데, 때에 따라 맞는 방법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 ⑦계의는 거북점과 시초점을 쳐서 의심스러움을 살피는 일이다. 거북의 배딱지에 나타난 조짐을 오행으로 설명한다. 군주가 의심을 해결하고 결단하는 방법이다.
⑧서징은 비가 오고, 햇볕이 나고, 따뜻하고, 춥고, 바람 부는 것 등 농사와 직결되는 기후의 전조를 아는 것이다. 징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서징도 오행과 연결이 되어 질서에 맞게 인간사에 작용해야 한다. 서징은 또한 오사와도 연관되는데, 군주의 다섯 가지 일상생활의 상태와 기상현상을 연결시켜서 군주의 행위가 규범에 맞지 않으면 기후가 비정상적으로 변한다고 설명한다. ⑨마지막은 백성들이 받는 행복과 불행에 관한 것이다. 정치가 올바르면 백성들이 오래 살고 편안하게 죽는 등의 오복을 받는다. 반대로 정치가 그릇되면 질병, 가난 등의 육극을 받는다.

홍범은 어떻게 활용 되었나
주나라는 하늘과 인간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했다. 상나라의 상제를 존숭하는 종교문화는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점차 신을 인간과 분리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바꿔나갔다. 정치는 제사를 통한 군주와 신의 소통이 아니라 제도와 규범을 바탕으로 했다. 그 이념을 잘 드러낸 것이 바로 홍범이었다. 홍범의 제1조목 오행은 구체적 물질의 자연 원소이면서 근원적인 사상범주이기도 하다. 오행을 통해 자연의 변화와 인간사를 해석하였고, 이것에 근거하여 자연과 인간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었다. 주나라는 이 시스템에 의해 윤리규범과 정치질서를 만들고 유지해갔다.
주나라 건국이라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탄생한 홍범은 이후 다른 시대 다른 정치를 상상할 때 자주 소환되었다. 거기다가 우임금이 하늘로부터 받은 홍범에 따라 통치를 했다는 신화는 홍범에 역사적 권위와 정당성을 부여했다. 무왕이 홍범을 받아들여 새로운 통치의 길을 열었듯, 새로운 왕조를 열어 사회를 안정시켜야 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통치자는 홍범을 이용했다. 홍범의 내용은 같았지만 활용법은 시대마다 달랐다. 홍범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나라는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한나라였다. 기자가 무왕에게 통치이론을 제공했듯이 복생, 유향, 반고 등 한나라의 지식인들은 홍범해설서를 지어 황제에게 바쳤다.
『서경』은 제왕학의 교과서라 불린다. 한나라 초기 아직 황제지배체제가 견고하지 못했을 때 유가 지식인들은 홍범에 주목했다. 한나라 문제 때 『서경』은 『상서』라는 이름으로 복원이 되었다. 이 때 『상서』를 복원한 복생은 홍범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홍범의 오행을 해설한 「홍범오행전洪範五行傳」을 지었다. 「홍범오행전」은 오사에 황극을 더한 여섯 항목이 적절하게 행해지지 않는 경우에 생기는 재이(災異)를 분류하여 기술하고 그 원인을 오행간의 불화로 설명했다.
한나라는 홍범을 당시 유행하던 음양오행과 연결시켜 천인감응의 이론으로 구성했다. 홍범이 음양오행과 연결될 수 있었던 까닭은 홍범의 첫 조목이 바로 오행이기 때문이다. 군주는 천과 직접 감응하는 존재로 군주의 마음가짐이나 행동에 따라 천이 내리는 재이가 따른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홍범구주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오복육극의 해석이다. 오복과 육극을 내리는 주체가 천이므로 군주의 행위와 몸가짐을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주의 몸가짐을 나타내는 항목이 바로 용모와 말, 보고 들음, 생각의 오사인데, 이 오사는 오행에 근거한 것이므로 천이 감응하여 상벌을 내린다고 생각했다.
한나라가 오행을 중심으로 천인관계와 재이설을 주장했다면, 송나라는 천과 인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천이 내린 재이보다 인의 정치행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중앙집권적 관료사회에서 그 정점에 있는 군주의 능력은 왕조유지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 관료이자 유학자인 사대부들은 군주의 역할과 책무를 강조했다. 군주는 최고 통치자로서 유교적 질서의 정점에 서서 통치의 표준이 되어야 했다. 따라서 송나라의 홍범 해석은 황극을 강조하여 군주의 정치행위에 중점을 두었다. 홍범에서 중앙은 황극이다. 황극은 정치적 원리를 실현하는 중심을 상징하고, 그 중심은 바로 군주가 된다. 황극은 표준으로서 만인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도덕적인 책임감을 지닌 존재가 된다. 이러한 원리의 근거는 우주의 운행질서, 즉 천도(天道)이다. 인격적 덕성을 지닌 주체가 천도를 구현할 수 있고, 그것이 곧 왕도정치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군주는 정치행위를 통해 스스로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군주가 표준을 잘 세우면 백성이 정치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치우침이 없고 편을 가름이 없으면 왕의 길이 광활해질 것이고, 편을 가름이 없고 치우침이 없으면 왕의 길이 평탄해질 것이다.”(無偏無黨 王道蕩蕩 無黨無偏 王道平平)
홍범에서 유래한 ‘탕탕평평蕩蕩平平’은 영조가 실시한 탕평책의 어원이다. 탕평책은 공평한 인재등용을 가리키는데, 원래 홍범에서의 의미는 성인의 왕도정치가 제대로 구현된 상황을 형용한 말이다. 왕도정치가 제대로 펼쳐지려면 군주는 당파를 초월하여 중립적이어야 한다. 좋아하고 미워하는 생각을 가지고 사사로운 감정으로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정도를 잃지 않는 왕의 길이 바로 탕평이다.
다시 읽는 홍범
『서경』을 강독할 때 「우공」편 다음으로 어렵고 재미없던 편이 「홍범」이었다. 마음 같아선 글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이 두 편이 『서경』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이라 빼놓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이번에 글을 쓰면서 홍범이 왜 중요한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홍범은 문명의 전환기에서 그 문명의 토대가 되는 사유를 구축했고, 시대를 흘러가면서 황제 중심의 통치에 정당성과 논리적 근거를 제공했다. 전근대사회에서는 통치자가 중요했기 때문에 제왕학으로서 홍범이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대통령제를 가진 우리도 통치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내란 사태를 겪으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아울러 제왕적 대통령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권력구조에 관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많았다. 그런데 탄핵이 인용되고 조기 대선이 시작되면서 개헌에 관한 논의는 지지부진해진 듯하다. 더구나 내란 재판과 유력 대통령 후보의 사법리스크 문제 등 이런 저런 이슈들이 쟁점이 되면서 개헌이라는 말은 쏙 들어갔다.
무왕이 기자를 찾아간 이유는 백성들의 편안한 삶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홍범을 얻었다. 지금 우리에게도 홍범이 필요하다. 분열과 배척의 정치적 혼란을 종식시키고, 기득권 세력의 권력다툼이 아닌 광장의 목소리를 담아낸 개혁이 필요하다. 광장의 평범한 사람들이 기자이다. 그들에게 묻고, 그들의 다양한 요구들을 담은 새로운 ‘큰 법’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홍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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