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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용의 서경리뷰

[토용의 서경리뷰] 무엇으로 혁명은 정당화 되는가

by 북드라망 2025. 10. 13.

무엇으로 혁명은 정당화 되는가

토용(문탁 네트워크)

 


선양과 방벌 - 왕조교체의 두 가지 형식
보통 하夏・상商・주周를 중국의 고대왕조라 한다. 하는 문자기록이 없어 실제 존재했던 나라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지만 기원전 1900~1600년경 유적으로 추정되는 얼리터우 문화를 하의 유적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문자기록으로 증명하지 못해 중국 최초 왕조라는 전승으로만 남아 있는 하와는 달리 상은 갑골문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탕湯은 기원전 1554년 하를 정벌하고 박亳땅에 상을 건국한다. 이후 여러 왕들이 자연환경이나 정치적인 이유로 다섯 번이나 천도를 하는데 마지막으로 천도한 곳이 은殷이다. 그래서 상 또는 은이라고 불린다.

주의 시조는 후직后稷으로 이름이 기棄다. 순임금의 신하로 농업을 관장했다. 주는 상의 서쪽 지역에 터를 잡고 살면서 점차 세력이 커졌다. 문왕 때 위수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고 서백西伯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주는 자신의 조상은 물론이고 상의 선조까지 숭배할 만큼 제후국으로서 상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기원전 1045년 문왕의 아들 무왕은 서부지역의 세력을 결집하여 상을 정벌한다. 이 전쟁(목야전투)을 기록한 명문에 의하면 아침에 시작한 전투는 다음 날 밤까지 계속되었으며 사흘째 아침에 주의 승리로 끝났다. 역사에서는 이 전쟁을 ‘중국 서부의 산맥과 계곡에 살던 부족 및 공동체의 연합세력과 그에 대항한 동부 평원의 상 및 상에 우호적인 집단 간에 이루어진 중대한 결전’이었다고 말한다.

유가에서는 바람직한 정권교체의 두 가지 경우로 선양禪讓과 방벌放伐을 든다. 선양은 혈연세습이 아닌 덕 있는 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으로 요에서 순, 순에서 우로 단 두 번 있었다. 유가의 왕도정치에서 가장 바람직한 권력 이동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방벌은 맹자에서 비롯된다. 전국시대 제 선왕이 맹자에게 묻는다.

“탕이 걸桀을 유배하여 가둬놓고(放), 무왕이 주紂를 정벌(伐)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는 이에 대해 신하의 쿠데타가 아닌 천명에 의한 정당한 행위였다고 대답한다. 맹자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서경』에 있다. 『서경』에서는 천자가 민심을 잃으면 한낱 독부獨夫로 전락할 뿐 더 이상 천자로서의 권위는 없다고 말한다. 이를 근거로 맹자는 방벌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탕과 무왕의 전쟁을 옹호한다.

『서경』에서 탕의 하 정벌을 기록하고 있는 편명은 <탕서湯誓>, <중훼지고仲虺之誥>, <탕고湯誥>이고, 무왕의 상 정벌은 <태서泰誓>, <목서牧誓>, <무성武成>이다. ‘~서誓’는 『서경』에 쓰이는 문체 중 하나로 보통 출정 전에 군사들을 모아놓고 전쟁의 당위성과 승리를 맹세하는 담화문이다. 탕은 <탕서>에서, 무왕은 <태서>, <목서>에서 정벌의 정당성을 웅변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논리인가?

 


탕왕, 걸을 추방하다
상의 시조는 반인반신의 신비로운 인물 설挈이다. 그는 순임금의 신하로 우의 치수를 돕고 사도가 되어 백성들의 교화를 담당했다. 그 공적으로 상은 제후국이 되었고 14대째 군주가 바로 탕이다. 탕은 하를 정벌하기 전에 이미 주변 부족들에게 덕이 있는 군주로 칭송을 받고 있었다. 주변 부족 백성들은 서로 먼저 탕의 지배를 받기 원했다. 따라서 탕이 주변 부족을 통합하는 과정은 무력에 의한 세력 확장이 아니라 자발적 복속이었다. 하의 마지막 왕인 걸에게서 돌아선 제후들이 탕에게 몰려들자 탕은 병사를 이끌고 걸을 토벌한다.

「상서商書」는 탕이 하를 정벌하기 위해 출정을 앞두고 발표한 맹세의 말로 시작한다. 탕은 왜 이러한 맹세를 했을까? 자국 사람들이 정벌을 꺼렸기 때문이다. 이유는 포악하다는 걸의 죄가 자신들의 삶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탕은 걸을 공격하기 전 먼저 두 명의 제후를 정벌했다. 하나는 갈葛로서 그 군주 갈백葛伯이 신에 대한 제사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였다. 다른 하나는 포악한 정치를 하고 방탕함에 빠진 걸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곤오昆吾였다. 탕은 곤오를 내란죄로 정벌했다. 그런데 천자인 걸을 정벌하는 것은 이들의 정벌과는 성격이 분명히 다르다. 탕은 걸의 신하로서 질서를 수호하고 천자를 보좌할 의무가 있다. 탕이 천자를 공격한다면 곤오를 정벌한 명분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 모순과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탕의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자신이 하늘의 명을 받은 관리 즉 천리天吏임을 주장한다.

탕은 하늘이 자신에게 걸을 죽이라는 명을 내렸다고 말한다. 자신은 상제의 명령이 두렵기 때문에 걸을 벌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벌에 대한 정당성의 근거를 하늘 즉 천명에 둔 것이다. 그렇다면 걸이 하늘의 벌을 받을 정도로 지은 죄는 무엇인가? 걸은 자신의 나라 백성들에게 힘든 노역을 시키는 등 학정이 심했다.

“저 해는 어느 때나 없어질 것인가? 우리는 너와 함께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시경』, 『맹자』 등에도 나오는 이 구절은 당시 하나라 백성들이 불렀던 노래이다. 걸은 자신이 천하를 가진 것이 마치 하늘이 해를 가진 것과 같으니, 해가 없어지면 내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백성들이 이런 노래를 불렀으니 얼마나 사는 게 고달팠으면 차라리 같이 죽는 게 낫다고 했을까.

탕의 정벌은 실제로 곤오가 걸의 악행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천명에 있다. 천자에 대한 생사여탈은 하늘에 있고 하늘은 백성들에게 덕을 베풀지 못하는 군주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다. 그 임무를 하늘이 직접 신하에게 내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탕은 하늘의 명을 받은 천리로서 걸을 정벌한 것이므로 반역이라 할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천명은 쿠데타가 아닌 혁명이 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탕은 남소로 도망간 걸을 그대로 그곳에 방치해둔다. 비록 걸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탕의 마음은 상쾌하지 않았다. 상 이전까지 왕권계승은 선양에 의한 것이었다. 요는 순에게, 순은 우에게 선양하였고, 우는 하의 첫 번째 왕이 되었다. 그런데 탕은 정벌로 한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개창한 것이다. 탕은 스스로 덕이 요, 순, 우에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며 후세에 사람들이 자신을 빌미로 구실을 삼을까 두렵다고 속내를 밝힌다. 사실 전설상의 왕이었던 요, 순, 우를 제외하고 역사시대에 왕조교체가 선양으로 이루어진 경우는 거의 없다. 모두 피를 동반한 전쟁 위에 새 왕조가 세워졌기 때문에 탕의 이런 고백은 탕의 덕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라고 보여진다.

 



탕의 반성에 신하 중훼는 하나라 멸망의 당위성을 논증하며 탕을 위로한다. 아울러 탕을 성인으로 만들고 혁명의 정당성을 밝히는 여론을 형성한다. 아마도 당시 걸의 우호세력을 중심으로 탕에 대한 비난이 있었을 것이고 정치적 혼란도 심했을 것이다. 중훼는 바로 이런 비판과 탕의 근심을 해결하기 위한 해결사를 자처했다. 중훼의 논리는 한마디로 탕이 하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푼 구세주라는 것이다. “군주는 백성들의 삶을 평온하게 해주어야 한다.” “하나라 백성이 도탄에 빠진 것은 그런 군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늘이 탕에게 용맹과 지혜를 주어 대업을 이룬 것이다.” 이처럼 걸의 포악한 정사에 하나라 백성들이 천지신명에게 하소연하였으니 탕은 천명을 받들어 따랐던 것이다.

중훼는 덧붙여 천자가 하늘의 상도常道를 존숭한다면 천명을 영원히 보존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이 말은 천명이 한 왕조에 영원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서경』에는 이와 관련하여 천명불상天命不常을 강조하는 내용이 곳곳에 있다. 하늘이 하를 버리고 상으로 옮겨갔듯 군주가 제대로 정치를 하지 못하면 언제든 천명은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의 도를 어기지 않겠다는 탕의 다짐은 “너희 만방이 죄가 있는 것은 나 한 사람에게 책임이 있고, 나 한 사람에게 죄가 있는 것은 너희 만방과는 무관한 일이다.”라는 말에 잘 드러난다. 정치지도자로서의 이런 마음가짐은 천명을 받은 자의 책임의식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무왕, 주를 죽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의 출전은 어디일까? 바로 <목서>이다. 무왕은 상을 정벌하기 위해 목야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담화문을 발표한다. “암탉은 새벽을 알리지 말아야 하니, 암탉이 새벽을 알리면 집안이 위축된다.” 여기서 암탉은 상의 마지막 왕인 주의 부인 달기를 말한다. 달기에 빠진 주는 달기가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달기 웃는거 한 번 보자고 구리기둥에 기름칠 하고 그 아래에 숯불을 피워놓은 후 죄인을 구리기둥에 걸어가게 하다가 숯불 속으로 떨어져 죽게 했다는 포락형炮烙刑과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고사는 유명하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주왕의 포악함은 <태서>에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겨울 아침에 물을 건너가는 사람의 정강이를 쪼개서 그 단단함을 살펴보고, 어진 신하 비간의 배를 갈랐다는 이야기부터 술과 여색에 빠져 음탕하게 놀고 즐기며 하늘에 제사도 지내지 않는 등 상도常道를 어지럽힌 일이 자세하다.

새벽을 알리는 것은 수탉의 일이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다. 그런데 그것을 거스르고 암탉이 울어댄다. 주는 달기의 말만 들었고 조정의 상벌도 달기 마음대로였다. 달기의 손에 무고한 사람들의 생사가 달렸다. 달기의 정치참여는 암탉이 우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자연질서에 어긋나는 것임을 강조하며 정치질서를 자연질서와 합일시켜 바로잡고자 하는 의도를 보인다.

이런 명분을 가지고 무왕은 우방들과 연합하여 상을 멸망시킨다. <무성>에는 전투의 참혹함이 기록된 부분이 있다. 주가 많은 군대를 이끌고 왔으나 상의 군사들이 주와 전쟁을 할 뜻이 없어 오히려 자신들의 창끝을 거꾸로 돌려서 뒤에 있는 자기편을 공격하였고, 그 결과 절굿공이가 떠다닐 정도로 피가 흘렀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상 군사들이 주紂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터뜨려 서로 죽이는 도륙잔치를 벌였고 무왕의 군대는 칼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는 말로 읽힌다. 무왕의 정벌을 정당화하는 또 하나의 스토리로 보이지만 실제 그러했을 것이라 믿기는 어렵다.

무왕의 정벌은 신하의 나라가 천자의 나라를 멸망시킨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로서는 이 정벌의 정당성을 밝히는 일이 급선무였다. 주의 명분은 탕 때처럼 한마디로 천명이었다. “천자는 백성들의 부모인데 상나라 왕인 주가 포악하여 백성을 해치고 있다.” “주는 스스로 반성하지 않고 백성과 천명을 소유하였다며 오만하게 굴고 있다.” “하늘이 명하여 주를 벌하게 하셨으니 하늘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다.” 재밌는 것은 탕 스스로 자신의 행동이 후대에 빌미가 될까 우려했는데, 무왕이 바로 탕의 정벌을 본보기로 삼았다는 데 있다. 자신도 탕처럼 하늘과 백성에게 죄 지은 자를 정벌하고 천하를 안정시켰음을 강조한다.

「주서周書」에는 무왕의 정벌에 대한 정당성을 밝히는 말이 곳곳에 있다. “천명은 어길 수 없다.” “주왕이 술에 빠져 덕을 상실해서 하늘이 재앙을 내렸다.” “하늘이 은나라를 사랑하지 않으신 것은 주왕이 방종하고 안일했기 때문이다.” 비록 하늘의 명으로 대업을 이루었지만 천명이 항상 주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에서 상으로 또 상에서 주로의 왕조교체는 천명이 고정불변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주는 이 점을 잘 알았다. 그래서 「주서」 곳곳에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밝히면서도 천명이 다른 곳으로 갈까 경계하는 말도 많이 나온다. “왕이 덕을 공경히 닦지 않으면 천명을 잃어버린다.” 즉 천명은 항상하지 않으며 덕이 있는 자에게로 언제든 옮겨갈 수 있다.

 



걸과 주는 일개 필부다
역사에서는 탕의 정벌과 무왕의 정벌을 ‘탕무혁명’이라 부른다. 유혈을 동반한 왕조교체가 혁명의 이름을 얻은 데에는 유가 경전인 『서경』의 권위도 있었지만 맹자의 역할이 컸다. 앞서 탕이 정권찬탈의 빌미가 될 것을 우려했듯이 신하로서 자신이 모시던 군주를 시해한 것은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는 왕도정치를 이상으로 삼는 유가에게 있어서 반드시 풀고 가야할 문제였다. 앞서 제 선왕이 맹자에게 한 질문도 이런 의미를 담고 있었다. 탕무혁명은 사실 쿠데타가 아니냐고.

“인仁을 해치는 것을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것을 잔殘이라 하며 잔적殘賊한 사람을 일개 필부라 한다. 일개 필부인 주紂를 베었다는 말은 들었어도 군주를 시해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맹자의 대답은 군주가 되어서 잔적한 짓을 한다면 군주라 할 수 없으니 일개 필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하로서 군주를 시해한 것이 아니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맹자는 천명을 받은 천자가 학정으로 민심을 잃으면 이미 천자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라는 사실을 ‘일부一夫라는 한 마디로 단언하고 있다. 폭군이 이제 더 이상 천자가 아니라 일부로 전락했기 때문에 신하인 제후가 그를 공격하는 일은 시해나 찬탈이 아닌 정당한 방벌이 되는 것이다.

맹자의 방벌론은 인의로써 왕도정치를 구현하는 군주는 대대로 왕조가 유지되지만 포악한 패도의 정치를 수행하는 군주는 신하의 방벌에 의해 왕조가 바뀐다는 역성혁명 이론을 제공한다. 그 바탕에는 “하늘은 백성이 보고 듣는 것으로 보고 듣고”, “백성들이 원하는 바를 하늘은 반드시 따르기” 때문에 민심이 곧 천심이며 천명은 영원하지 않다는 인식이 있다. 이러한 맹자의 논리는 유가에서 정치권력의 탄생과 유지의 궁극적 정당성을 민심에 두는 이론의 근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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