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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 이야기 ▽/북드라망의 책들

『여성철학자의 철학 이야기』 지은이 김애령, 김은주 선생님 인터뷰

by 북드라망 2026. 2. 4.

『여성철학자의 철학 이야기』 지은이 김애령, 김은주 선생님 인터뷰


1. 선생님께 ‘철학’(-함)은 어떤 의미인가요?
【김애령】 나에게 철학은 ‘깊은 사유의 길’ 같은 것입니다. 그 여정을 이끄는 것은 늘 물음들입니다. 매번의 물음에 답이 주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답은 또 새로운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대부분 (거의 언제나) 답은 조심스럽게 시도되지만, 부족합니다. 그것은 곧 다른 물음으로 열리고, 이렇게 이어지는 물음들이 사유의 길을 계속 따라가게 합니다. 
더러 ‘철학공부를 선택하게 된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철학공부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 싶다는 막연한 열망의 출발점은 ‘재미’였습니다. 구체적인 사건, 에피소드, 고민, 갈등, 불만, 분노 같은 것에서 출발하지만, 그에 대해서 어느 만큼은 거리를 두고 ‘거미줄을 짜듯’ 생각을 굴려 가는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사유의 힘’에서 느끼는 자유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공부를 하면서 철학적 사유를 계속 밀고 나가게 하는 동력은,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사유가 주는 자유가 아니라 ‘이’ 세계에서 만나는 복수의 구체적인 ‘텍스트들과 신체들’, 혹은 ‘텍스트의 신체들’, ‘신체라는 텍스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게 철학(함)은, 이 세계의 구체적인 문제상황들로부터 출발하는, 그치지 않는 물음으로 이끌리는, 아마도 끝이 없을, 깊고 복잡하게 얽힌 사유의 길 같은 것입니다. 

【김은주】 삶과 사유를 근접하게 함의 기쁨이나 항구에 도달했다고 믿는 순간 바다 한가운데로 다시 뒤던지는 풍랑 그러나 위로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으나 효과로서 위로를 선사하는 효능감이 저에게 ‘철학’(-함)의 의미입니다. 

 




2. 한나 아렌트는 귄터 가우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철학계’에 속하지 않는다면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철학을 남성적인 직업으로 생각한다”고, 하지만 철학이 남성적인 직업으로 남을 필요는 없다고, “언젠가는 여성이 철학자가 되는 일도 전적으로 가능해질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이 책에 실린 김애령 선생님의 글 안에서도 이 부분이 언급되어 있기도 한데요.) 선생님께서는 ‘여성철학자’라는 명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애령】 나는 ‘여성 철학자’에 대해 쓰거나 인용할 때, ‘그녀’라고 씁니다. 한글에는 ‘그녀’라는 성별화된 3인칭 대명사는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에 걸맞게 ‘그녀’가 없는 글을 읽습니다. 그러나 나는, 망설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를 씁니다. 그 이유는, (여성)철학자의 이름이 남성(철학자의 것)으로 패싱(passing)할 것에 대한 염려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철학이 그것을 하는 구체적인 신체의 경험, 속한 역사나 사회적 맥락과 분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부적절할 뿐 아니라 위험한 선택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여성’이라는 성별 특정이 언제나 주변화된 자리를 고정화하고 ‘차별적으로’ 표식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닙니다. 
나는, 전통적인 학제 안에서 철학이 ‘일자’인 ‘철학자’만이 아닌 ‘타자들’의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표시하기 위해 ‘여성 철학자’라는 말을 쓰겠지만, 그것은 유보적인 방식으로만 그렇게 할 것입니다. 때마침 더 이상 ‘여성’이 아닌 ‘여성철학자’ 폴 B. 프레시아도가 쓴 『천왕성에 집 한 채』(2025, 문학동네)를 읽고 있습니다. 프레시아도는 호르몬 치료를 통해 성별 이동 중인 철학자이자 예술가입니다. 그/녀의 고민과 불안, 불만과 분노와 물음이 담긴 그/녀의 사유를 따라가면서, ‘여성 철학자’라는 말을 쓰면서 동시에 해체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성 철학자’라는 말이 유보적으로, ‘남성’으로 표식된 ‘일자’ 철학의 바깥에 있는 철학의 타자들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쓰였으면 합니다. “하나는 너무 적고 둘은 너무 많다”는 것, 그리고 또 “타자됨은 다양해지는 것, 분명한 경계가 없는 것, 너덜너덜해지는 것, 실체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요.(도나 해러웨이,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자연의 재발명』, 황의선·임옥희 역, 아르떼, 2023, 321쪽.)

【김은주】 여성철학자라는 단어는 젠더를 철학자 앞에 붙임으로써 우리 세계의 문제와 한계를 드러내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대의 시공간에서 ‘여성철학자’라는 지칭은 여성이 사유한다는 것, 철학을 수행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공표하고, 철학의 타자로서 존재해고, 기존의 철학으로만 환원될 수 없는 여성철학의 독자성 그리고 ‘사유’ 그리고 ‘철학’을 갱신하면서도 쇄신하는 ‘철학’으로서 ‘여성철학’의 위상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여성철학자라는 명칭이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나 아렌트



3. 독자들께 선생님이 전공한 철학자의 한 문장을 전해 주세요. 그리고 그 문장을 선택하신 이유도 함께 말씀해 주세요.

【김애령】  “철학의 임무는 원을 닫고 지식을 중심화하거나 총체화하는 것이 아니라 담론의 환원 불가능한 복수성(複數性)을 계속해서 열어 놓는 것이다. 상이한 담론들이 어떻게 상호 관련되거나 교차되는지 보여주는 것이 본질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담론들을 동일한 것, 같은 것으로 만들려는 유혹에 저항해야만 한다.”(리처드 커니,『현대 사상가들과의 대화』, 김재인 역, 한나래, 1998, 310쪽.) 리처드 커니와의 인터뷰에서 폴 리쾨르가 한 이 말이, 나를 리쾨르의 철학, 그의 철학함의 에토스, 그의 철학하는 방법과 이어줍니다. 복수성을 열어두는 것, 담론들을 동일한 것, 같은 것으로 만들려는 유혹에 저항하는 것, 그것은 나의 철학함의 에토스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김은주】 "긍정의 윤리학에서 타자에게 내가 해를 가하면 힘, 긍정성의 손실, 관계의 능력 즉 자유의 손실이라는 점에서 나 자신에게 해를 미치는 것으로서 되돌아 온다. (로지 브라이도티, 『긍정, 고통 그리고 임파워먼트, 글로벌 아시아의 이주와 젠더』, 이화여자대학교아시아여성학센터, 2011, 64쪽)" 이 문장을 알리고 싶은 이유는 이것이 브라이도티의 긍정의 윤리학의 핵심 문장인 동시에, 브라이도티가 들뢰즈의 행동학의 계보에 서 있는 것을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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