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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노래

[지금, 이 노래] 완전히 대중화된 ‘힙합’ - 코르티스(CORTIS) - GO!

by 북드라망 2025. 11. 21.

완전히 대중화된 ‘힙합’ - 코르티스(CORTIS) - GO!

송우현(문탁네트워크)

 



오늘 소개할 음악은 지난 8월에 데뷔한 케이팝 보이그룹 ‘코르티스(CORTIS)’의 데뷔앨범, <COLOR OUTSIDE THE LINES>다. 지금의 BTS를 만든 프로듀서 방시혁이 직접 제작한 그룹으로, 초창기 BTS와 비슷하게 힙합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표방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초창기 BTS가 아이돌임에도 직접 가사를 쓴다거나, 래퍼들이 추구하는 마초적인 느낌을 차용했다면, 코르티스는 보다 세련되고 힙합을 기반으로 하우스나 락 등 다양한 장르들을 접목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요즘 먹히는 세련된 힙합’이자 ‘미국 10대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나아가 전 세계의 10대들도)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이틀 곡인 <GO!>는 힙합을 기반으로 한 ‘하우스’(House, 일렉트로닉 장르 중 하나)와 팝, 더블 타이틀 곡인 <What You Want>에서는 ‘이모-락’(EMO-Rock, 힙합과 락을 결합시킨 하위 장르 중 하나), 수록곡 <FaSHioN>에서는 ‘트랩’(Trap, 힙합 하위 장르 중 하나)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트렌디한 해외 아티스트들의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특히 해외 팬들은 표절에 가깝다며 그들의 과도한 모방을 지적하기도 한다. 많은 대중들이 세련되었다고 느끼는, 그러니까 이미 성공한 사례의 사운드와 곡 구성을 적극적으로 가져온다는 점에서 비판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아니겠는가. 나는 코르티스를 갓 데뷔한 뮤지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훌륭한 퀄리티로, 그리고 나름의 변주를 더해서 힙합이라는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딱 그 지점에서 내 머리가 살짝 아파 왔다. 만약 내가 코르티스의 음악을 ‘디깅’(Digging,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들을 탐색하는 행위)하다 발견한 것이라면, 분명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갓 데뷔한 신인(래퍼)이 이렇게 높은 퀄리티로 음악을 뽑아내다니! 심지어 살짝 변주를 준 것도 (멤버들이 10대인 것을 생각하면) 귀여워!”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하이브’라는 대형 기획사의, 그것도 케이팝 분야에서 거의 최대의 자본을 지녔다고 봐도 무방한 회사에서 공들여 만들어낸 보이그룹이다. 요컨대 케이팝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대형 기획사에서 현재 힙합 문화의 최전선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한 셈이다.

  사실 힙합 장르가 팝과 케이팝으로 포섭된 것은 하루 이틀 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느낀 코르티스의 차별점은 기획뿐 아니라 멤버들에게 모두 힙합 문화에 대한 이해가 뿌리 깊게 내려져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랩을 뱉는 느낌, 패션, 무대에서의 매너, 모두 ‘잘 기획되었다’고 보기에는 그들의 ‘힙합스러움’이 너무나 자연스럽기도 하다. 이는 최근 YG 산하의 혼성 아이돌 그룹 ‘ALL DAY PROJECT’(이하 올데프)도 마찬가지다. 특히 그중에서도 ‘타잔’이라는 멤버는 무대에서도 ‘콘로우’ 스타일(주로 흑인 래퍼들이 많이 하는 헤어 스타일)을 하고 새깅(주로 흑인 래퍼들이 많이 하는 패션 스타일)을 한다. 심지어 무대 도중 ‘그릴즈’(주로 래퍼들이 착용하는 치아 장신구)를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아이돌 그룹의 특성상 대부분 기획된 바이겠지만, 그럼에도 그런 행위를 하는 이들에게 전혀 어색함을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단순히 장르적으로 케이팝이 힙합 사운드를 흡수한 정도가 아니라, 현재 세계적으로 10대들 사이에서는 더 깊은 차원에서의 흑인 문화가 대중화되는 과정인 것처럼 보인다. 

다시 코르티스로 돌아와서, 코르티스가 표방하는 사운드가 ‘미국 10대들이 좋아할 법한 음악’이었다는 걸 상기하자. 그들은 스스로를 ‘힙합 전사’라거나 ‘REAL’ 래퍼라고 포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 기반과 패션 스타일, 나아가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삶의 스타일 전반에는 모두 (주로 흑인들의) ‘힙합’이 깊게 깔려있다.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나는 이 현상을 ‘힙합의 완전한 대중화’라고 해석하고 싶다. 단순히 음악적 양식을 넘어서, 흑인들로부터 발생한 삶의 양식 전반이 전 세계적으로 ‘멋있는 것’으로 비춰지기 시작했고, 단순히 그것을 모방하고 따라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그런 문화를 보고 듣고 자란 세대들이 스스로의 내면을 그 문화와 동일시하는 단계까지 왔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 아니라 한국, 케이팝 보이그룹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힙합이 얼마나 깊게 대중화되었는지 보여준다. 또한 이는 더 이상 문화적 특이성이 한 지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계화되기 쉬워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 쓰다보니 이야기가 중구난방이 되었지만, 아무튼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내가 코르티스의 음악을 굉장히 잘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코르티스 음악에 반감을 가진다면, 이는 그들이 ‘힙합을 훔쳤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은 ‘전 세계적으로 힙합이 완전한 대중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앞으로 대중화된 힙합 문화는 어디로 나아갈까? 완전히 대중문화에 녹아 들어 그 특이성까지 잃어버리게 될까? 아니면 ‘새로운 래퍼’들의 등장으로 힙합 그 자체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할 수도 있을까? 오히려 아이돌 그룹을 통해, 다음 세대 래퍼들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는 내 모습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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